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가 성교육을 학교가 아닌 각 가정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이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딥페이크와 같은 성범죄 예방을 위해서라도 국가교육과정에 성교육이 확대돼야 한다"며, 안 후보자의 인식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2일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실에 따르면, 안 후보자는 최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에서 '성교육을 어느 연령 때부터 누가 어떤 내용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부모가 자기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라 자녀를 교육함이 상당하다"고 답했다.
안 후보자는 "존 스튜어트 밀은 국가에 의한 획일적 교육을 반대하고, 간디는 진정한 교육은 오직 부모에 의해서 주어진다고 했다"면서 "많은 학자들은 종교 교육, 윤리 교육, 성교육과 같은 자녀의 가치관과 세계관과 관계되는 교육은 부모가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에 대한 성교육이 필요하다면, 학교에서 부모에게 성교육 관련 사항을 전달하고, 부모가 자기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라 자녀를 교육함이 상당하다"고 했다.
안 후보자의 주장과 달리 다수 전문가들은 성교육이야말로 공교육에서 비중 있게 다뤄야 할 영역으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사회 문제로 대두된 청소년 디지털 성범죄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성교육이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안 후보자의 이같은 인식은 사회적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는 이날 <프레시안>에 "성교육의 핵심은 '내 몸만 잘 알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어떻게 바람직한 성 문화를 만들 것인가'"라며 "어떤 학생이 가정에서 성교육을 잘 받아서 안다 해도, 또 다른 학생이 성교육 접근 기회가 없어 딥페이크 음란물을 뿌리고 다니면 소용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모두가 함께 안전할 수 있도록 공교육을 통해 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국영수보다 성교육이야말로 공교육에서 가장 잘 다뤄야 할 영역"이라고 말했다.
김엘리 성공회대학교 교수도 "성교육은 시민으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교육"이라며 "개별의 가정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교육의 차원에서 시민의 덕, 시민의 태도, 사회적 책임으로 실시되어야 한다"고 했다.
성교육에 대한 안 후보자의 이같은 인식은 성을 금기시하는 보수 기독교 세계관과 일맥상통한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각 초·중·고교에 비치된 성교육 도서를 음란‧유해 도서로 규정하고 각 시·도교육청에 폐기를 요구해 논란이 인 바 있다.
안 후보자는 헌법재판관 재임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 결정문에 성경 문구를 인용할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안 후보자는 동성애에 대한 차별 금지를 명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반대해왔으며, 진화론을 배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활동가는 "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배울 수 있는 장을 없애면 아이들은 이른바 '야동'으로 성을 배우고 성폭력은 더 커진다. '성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것은 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정정해 줄 기회를 오히려 차단하는 것"이라며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야말로 딥페이크 문제를 양산한 장본인들"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강 의원은 "안 후보자가 공직 후보자가 여러 전문가들의 연구와 논의를 거쳐 만들어진 국가교육과정의 취지와 내용을 전면 부정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 매우 우려된다"며 "이미 특정 세력이 폭력까지 써가며 방해한 공청회 등을 거치며 국가교육과정의 성교육이 크게 퇴보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인권을 가장 앞장서서 보호해야 할 인권위원장이 오히려 인권을 퇴보하는 데 앞장설까 봐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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