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20도 날씨에 난방이 되지 않는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 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유족 측 법률 대리인은 유족과 상의해 항소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9단독 조영기 부장판사는 지난 29일 속헹 씨의 유족(부모 눈 이엠과 난 님)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외국인 근로자도 주거권, 건강권 등이 국내 근로자와 동일하게 인정되고, 국가배상법상의 국가 책임을 판단하는 것도 동일한 잣대로 위법사항, 불법행위 법리에 따라 판단하는 게 타당하다"면서도 "이 사건에서 망인의 사인으로 확인된 증거자료 내용과 당시 기숙사 내부 상황 등의 제반요소를 종합해 보면,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 망인의 사망과 원고가 주장하는 국가의 부작위·의무위반 간의 인과관계가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속헹 씨는 지난 2020년 12월 20일 전기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난방이 끊긴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간경화로 인한 식도정맥류 파열이다. 간경변이 있던 노동자가 한겨울 난방이 끊긴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피를 토하며 사망한 것이다.
이주노동·인권단체들은 열악한 주거환경과 추위로 속헹 씨의 질병이 악화했다며 지난 2021년 12월 산업재해를 신청했고, 근로복지공단은 이듬해 5월 속헹 씨의 산재를 승인했다. 그리고 속헹 씨의 유족은 같은 해 9월 국가를 상대로 1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민주사회를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이주노동팀장으로 유족을 대리하고 있는 최정규 변호사는 30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모든 사업장이 철저하게 근로감독이 되어야 한다"며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국가가 내국인 노동자를 보호할 의무보다 외국인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법 자체에 더 강화해 놨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특히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의 경우 사업장을 옮기고 싶어도 정부가 허가해야 옮길 수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이 국가(또는 한국 정부)에 종속되어 있다"며 "한국 정부가 (속헹 씨에게) 지정알선한 해당 사업장이 근로기준법, 산업안전기본법 등 노동법령을 준수하지 않았다. 본인이 간경화에 걸렸다는 것도 확인하지 못한 채 사실상 추운 숙소에서 사망했다면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한국 정부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이번 판결은 한국에 이주노동자를 송출하는 17개 국가, 더 나아가 전 세계 시민들의 공분을 살 것"이라며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한국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를 계속 문제삼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최 변호사는 "캄보디아에 있는 유족들과 상의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해당 사건은 민변이 지정한 공익변론 사건으로, 민변이 변론과 소송 비용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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