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까지만 '온실가스 감축목표 비율'을 규정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시민단체·청소년·영유아 등이 제기한 탄소중립기본법 8조1항에 대해 재판관 9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사법부가 국가 탄소 감축 정책의 위헌성을 인정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탄소중립기본법 8조1항은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담은 조항으로,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의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한다'는 내용이다.
헌재는 NDC가 2030년까지만 설계돼 있어 그 이후의 구체적 감축 목표가 없다는 청구인들의 지적을 받아들였다.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 비율만 정하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 19년간 감축목표에 관해 어떤 형태의 정량적인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2050년 탄소중립의 목표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 미래에 과도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목표를 규율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다만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를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으로 정한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3조1항이 "불충분하다"는 청구인들의 헌법소원 제기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기본권 보호 의무 위반'까지는 아니라는 취지다.
중장기 감축 목표 중 정부가 설정한 산업 부문별·연도별 감축 목표에 대해서는 재판관들 간 의견이 엇갈려 찬성 요건인 6인을 채우지 못해 기각됐다.
재판관 5명(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형식)은 부문별·연도별 감축목표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봤다. 이들은 "부문별·연도별 감축목표가 배출량의 목표치 산정 방식 관점에서 탄소중립기본법의 문언과 체계, 입법 목적에 어긋날 뿐 아니라 제도적 실효성 측면에서도 위험 상황의 보호 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머지 재판관 4명(이종석·이은애·이영진·김형두)은 "부문별·연도별 감축목표는 원칙적으로 정부의 권한과 책임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고, 중장기 목표를 달성할 수 없도록 설계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며 기각했다.
헌재가 탄소중립기본법 8조1항을 손질해야 한다고 판단함에 따라 국회는 해당 조항을 오는 2026년 2월 말까지 개정해야 한다. 후속 입법이 될 때까지는 해당 조항이 유지된다.
환경부는 이날 헌재 선고 직후 "정부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며, 후속 조치를 충실히 이행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논평을 내고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은 여전히 낙제"라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재수립하라"고 했다. 다만 탄소중립기본법 8조1항 외 다른 조항은 기각·각하한 데 대해 "정부와 법률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국제 사회와 기후과학계가 제시하는 '지구 평균 기온 1.5℃ 상승 제한 목표' 달성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라며 유감을 표했다.
이어 "헌재의 이번 결정이 정부의 불충분하고 불확실한 기후위기 대응 정책의 면죄부가 돼선 안 된다"며 "세부적인 목표치와 정책 수단에 대해서는 정부의 역할과 책임이 더 커졌다고 해석해야 한다. 결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 미래를 보장하는 '정치'의 역할은 최종적으로 헌재가 아니라 정부와 국회에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기후 소송에는 청소년 환경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이 2020년 3월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후 시민과 영유아를 포함해 총 255명이 참여했다. 청구인들은 헌재 재판에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지나치게 낮은 탓에 현 세대와 미래세대의 기본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급격한 탄소 감축은 오히려 현 세대의 삶의 질을 위협할 수 있다며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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