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어느 정도 한국어에 능통(토픽 6급 정도)하게 되면, 한자어에 관심을 갖는다. 예전에 우리 학교에 근무하는 외국인 교수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는데, 한국어를 곧잘 하던 모 교수가 한자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같이 공부하기는 어려워 나머지 공부(?)하면서 특별지도를 하였다. 확실히 한자어를 함께 학습하니 그의 한국어 실력이 일취월장 발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른 학교로 갔지만 한국어를 특별히 사랑하던 그의 모습이 가끔 떠오르곤 한다.
한자어를 가르치면 의미 확장을 지도하는 데는 탁월한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손 수(手) 자를 가르쳐주면, 수공예, 수제품, 수건, 수화 등의 단어로 확장하면서 그 의미를 쉽게 이해시킬 수 있다. 요즘 월요일 아침마다 SNS로 순우리말을 보내는데, 오히려 순우리말이 더 어렵다는 반응이 많이 올라온다. 예를 들면 ‘감돌이’, ‘감때사납다’, ‘감벼락’, ‘감장’, ‘갓밝이’, ‘띠앗머리’, ‘씨알머리’, ‘강파르다’, ‘갖바치’ 등의 단어를 풀어서 보냈더니, 한두 개밖에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말이 오히려 외국어 같다고 하면서 순우리말이 사라지고 있음을 아쉬워하였다.
한자어를 통해 우리말 명사를 가르쳐서 의미 확장에 도움을 받았다면 오늘의 경우는 오히려 헷갈리게 만든 예를 들어 보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생전(生前)’과 ‘생시(生時)’의 경우다. 먼저 각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보자. ‘생전’은 “살아 있는 동안”이라는 말이다. 날 생(生)자에 앞 전(前)를 쓴다. 그렇다면 ‘태어나기 전’이라든가 ‘살아 있기 전’이라는 의미로 써야 하는데, 왜 ‘사는 동안’이냐고 물으면 대답이 군색해진다. ‘생전’의 예문으로는
시인의 가족들은 시인이 생전에 남긴 글을 모아 유고집을 발간하였다.
와 같이 나타나 있고, 반의어로는 사후(死後 : 죽고 난 후)라고 되어 있다. 이럴 경우에는 참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사후(死後)가 ‘죽고 난 후’라면 생전(生前)은 ‘태어나기 전’이라고 해야 어법에 맞기 때문이다. 유사어로는 ‘생시(生時 “자지 않고 깨어 있을 때, 태어난 시간, 살아 있는 동안)’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는 ‘살아 있는 동안’의 의미와 유사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이게 꿈이냐 생시냐.(자지 않고 깨어 있는 동안)
부모님 생시에 효도하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스럽다.(살아 있는 동안)
사주에서는 생시가 중요해.(태어난 시간)
등과 같다. 그러니까 생전과 생시가 유사하다고 하여 ‘살아 있는 동안’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생전(生前)은 ‘살아생전’과 붙어 다니면서 생존 기간을 의미한다. 가끔은 부사로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태호는 술에 취해 생전 하지 않던 첫사랑 얘기를 늘어 놓았다.
와 같다. 이 경우는 ‘지금까지 살면서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음’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다. 이와 같이 한자어가 때에 따라 원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전달되는 것도 많이 있다.
우리말로는 ‘감사(感謝)’라고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감언(感言 : 깜언)’, 중국에서는 ‘謝謝(사사 : 세세)라고 하는 것과 비교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한자어라고 해서 그 의미가 늘 그대로 통한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가끔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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