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내 딸 장미가 맞구나"
7일 광주 남구 충현원에서는 네덜란드 입양인 김장미씨(58)가 54년만에 어머니를 만났다.
일곱살의 나이에 네덜란드로 입양된 김장미씨는 30년 동안 가족을 찾았다. 네덜란드 사회단체의 도움을 받았지만 정보가 부족해 가족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동안 세 차례나 한국을 방문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이번에는 광주를 방문한 김씨는 고아원인 충현원에서 우연히 어머니 이름이 '김맹임'으로 기록된 서류를 발견했다.
김씨는 충현원장 제안으로 경찰에 신고, 지난 1일 경찰서를 찾아 신원 조회를 요청했다. 경찰은 실종 자녀 이름이 동일하고 어머니 성명만 조금 다른 충북 청주시에 사는 80대 여성을 찾았다.
김명임씨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017년에 DNA를 등록해 둔 것이었다. 흔한 이름이 아니었기에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 것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는 딸 이름을 연속극에 나온 이름이 마음에 들어 장미로 정했다고 한다.
지난 6일 오전 사진과 화상통화를 통해 서로를 확인한 모녀는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하고 이날 오전 10시 광주 충현원에서 54년만에 극적으로 상봉하게 됐다.
김장미씨의 어머니 김명임씨(80)는 사진을 보자마자 '내 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DNA 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번 상봉에 도움을 준 경찰의 도움으로 이날 유전자 검사 업체를 섭외해 일치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모녀 관계를 확인하는 유전자 검사 결과는 금요일에 나올 예정이다.
김명임씨 등에 따르면 딸 장미씨가 2살 때 아버지가 농기계를 몰다 크게 다쳐 목숨을 잃었고, 자식 4명을 데리고 생계를 이어갈 수 없던 김명임씨는 현재의 나주댐 수몰지역에 있던 어머니집에 아이들을 맡기고 생업에 나섰다.
1970년 5월 당시 4살이었던 셋째 김장미씨는 어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 외할머니와 그 친구의 손에 이끌려 광주 동구 동명동에서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된다. 이어 넷째 김청주씨 역시 광주 소재 고아원에 맡겨졌다.
이후 김씨는 임시보호소에 맡겨졌다가, 2달 후 고아인 남구 충현원에 입소했다. 그곳에서 3년을 지낸 김씨는 네덜란드의 한 가족에 입양됐다.
김장미씨를 입양한 부모는 먼저 입양한 오빠도 한국에서 입양했다.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한 김씨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김씨는 자신의 뿌리를 잊을 수 없었다.
먼저 도착한 김장미씨 가족은 들뜬 분위기였다. 김씨의 둘째 아들 티모군(16)은 서툰 한글 솜씨로 가족의 이름을 한자 한자 신중하게 적었다.
김씨의 남편인 렘코씨(55)는 "아내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며 "한국 여행에서 아이들에게 엄마의 고향에 대해 좋은 기억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가족을 만난 것 자체가 놀랍다"고 기뻐했다.
잠시 후 어머니 김명임씨(80)와 맏아들 A씨(62·남)와 둘째 B씨(60·여) 내외가 만남 장소인 충현원 보육관에 들어왔다.
어머니 가족은 눈시울을 붉히며 김씨의 두 손을 꽉 잡았다. 김씨가 안경을 벗자 A씨는 외할머니와 꼭 닮았다며 탄성을 질렀다.
B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서 어렵게 살았다"며 "동생이 홀로 네덜란드 가서 고생했을 걸 생각하니 이틀을 눈물로 보냈다"고 글썽였다.
김명임씨도 "적십자회 보호시설에 장미 생일 때 들러서 보니 딸이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며 "찾았지만 데려올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 밭일이며 공사장 나가서 돌짐을 지고 객지를 떠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들 가족의 이날 짧은 만남은 경찰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기다리자며 약속하고 마무리됐다. 경찰은 김장미씨와 어머니의 머리카락과 구강상피세포를 채취해 갔다. 보통 일주일이 소요되는 유전자 검사이지만 사흘 후 결과를 전화로 먼저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김명임씨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고 있는 넷째 딸 김청주씨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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