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세계사에 뒤처져(우리 탓은 아니다.) 1968년에 혁명을 겪지 못한 한국 사회의 2000년대는, 일종의 68혁명을 우리 식으로 겪은 게 아닐까.
2차대전 후 한계에 봉착한 마샬 플랜과 미진한 파시즘 청산, 냉전과 베트남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68운동은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깨고 상상력에 권력을 부여한 서구의 자유주의 혁명이었다. 그 속에서 흑인 민권 운동과 페미니즘이 부상했고, 억압받던 모든 이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는 모토를 앞세운 68 세대는 좋든 싫든 세계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68운동의 배경을 한국 사회에 대입해 볼 수 있겠다. 한국의 2000년대는 '독재 타도'의 기치 아래, 이식된 서구 사회주의 이론으로 무장한 80년대식 학생운동이 지나간 후 다양성에 대한 갈증이 폭발한 시대였다. 기성 세대와 신세대간 갈등이 표면 위로 드러난 시대. 70년대에 태어난 '신(新)베이비부머'들이 경제 발전에 따른 보편적 대학 교육의 세례를 받고 20~30대의 나이에 현실 정치에 본격적으로 '참여'(앙가주망) 하기 시작한 시대. 신자유주의 질서의 확장에 대한 마지막 윤리적 반항의 시대. 2002년 월드컵과 대규모 반미 시위(여중생 미군 장갑차 압사 사건, 평택 미군기지 문제, 한미 FTA 반대)가 교차했고, 이라크 파병 논란에 따른 '반전 문제'가 사회의 중심 화두가 됐던 시대. 부의 양극화와 노동 시장 재편, 양심적 병역거부와 페미니즘, 호주제 논란과 장애인 문제 등이 주목받고 한국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시대였다. 심지어 그것들은 메인스트림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터넷의 확산으로 인한 정치 참여 방식의 변화와 '정치 시장'의 폭발적 성장 속에 태어난 최초의 '스타 대통령' 노무현이 나왔다. 한국은 매우 한국답게도 서구의 68혁명까지도 속성으로 초고속 학습한 것은 아닐까.
독재 시절 이념적 논쟁은 지하에서 벌어졌다. 좌파들과 자유주의자들은 지상에서 '대의(반독재)'의 옷으로 갈아 입고 반독재 투쟁을 위해 뭉쳤다. 그때 한국의 주류 정치는 독재에 대항하기 위해 '제왕적 야당 총재'를 만들어냈고, 이념보다는 의리로 뭉쳤다. 어쩌면 이론과 현실이 이원화된 시대가 80년대였겠다. 90년대는 달랐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와 제도적 민주화 쟁취로 시작된 시대, 독재 시절 억압됐던 다양한 욕구들이 임계점을 지나고 있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자리에 시민운동이 싹트던 시대였다. 그때 새로운 시대를 알리며 지식인 논객들이 대중 앞에 등장한다.
SBS에서 33년간 기자로 재직했던 윤춘호 작가가 쓴 <강준만의 투쟁>(개마고원)은 마치 강준만 평전처럼 읽히지만, 당시 가장 '핫'했던 논객 강준만을 중심에 놓고 그의 말과 글을 따라가며 대한민국의 정치사를 훑어내는 사회과학 서적 같은 느낌을 준다. 2000년대, 진보와 보수를 두고 진영간 치열하게 맞붙었던 정치, 사회적 논쟁들이 어떻게 지금 퇴색되었는지, 진보적 열망이 어떻게 세속적 욕망으로 뒤바뀌었는지 세상과 끊임없이 '불화'했던 강준만이라는 지식인을 중심에 두고 연구하듯 써내려간다.
2000년대 초 혼돈의 시기에 진보 진영이 주도한 '사회 개혁론'은 제도적으론 실패했을지 몰라도, 진보 의제가 다른 의제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 윤춘호는 "1990년대는 불온한 행동이 허용되고 불온한 도발이 예찬받는 시대였다"고 회상한다. 그때 "어느날 난데없이 화염병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처럼 튀어 나온 강준만은 '글을 써도 잡혀가지 않는 시대'에 최초의 스타 지식인이었다. 운동권 출신도 아니고, 학부는 경영학, 학연도 없고, "1인 봉쇄 수도원의 수도사" 처럼 생활하면서 '실명 비판'을 처음으로 시도했으며 온갖 성역을 부수기 시작했다. 강준만에 환호한 젊은 지식인들이 앞다퉈 정치 사회 논쟁에 대거 뛰어들었다.
"성역으로 여겨지던 곳에 난입했고, 금기라고 하면 더 덤벼들었다. 거칠게 선빵을 날렸다... 실명 비판 대상에는 진보, 보수와 좌 우의 구별이 없었지만 진보, 좌파,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을 더 문제삼았다. 백낙청, 김우창, 이어령, 김용옥, 유홍준, 이문열, 김동길 등이 이 젊은 검투사형 지식인 앞에서 목을 길게 늘여야 했고, 조선일보, 서울대, 창작과 비평, 참여연대, 한겨레가 강준만에게 잘근잘근 씹혔다."
대중 참여 정치의 욕구가 분출하던 시대에 나타난 강준만은 1995년 <김대중 죽이기>를 통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전라도'와 '빨갱이' 프레임에 갇혀 있던 노회한 정치인 김대중을 1990년대식 감각으로 분석한 이 책은 모르긴 몰라도 김대중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후 강준만은 노무현을 공개 지지하면서 PC통신과 인터넷의 태동기에 정치 논쟁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한국 역사상 처음 경험해 보는 가히 논객의 시대였다. 만인의, 만인에 의한 논쟁이 벌어지고, 대중이 정치인을 '선택'하는 과정이 축제처럼, 혹은 카니발처럼 벌어졌다.
하지만 '낭만'의 시대는 오래 가지 않았다. 윤춘호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새천년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서 내상을 입은 채 스스로 '퇴장'하는 과정과, 그 이후의 강준만에 더 주목한다.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진보 반동의 시대'를 키워드로, 한 지식인이 남긴 300여 권의 책과 수많은 인터뷰를 따라간다. 새천년 사회 변혁기에 가장 '핫'했던 지식인이 변해가는 과정을 꼼꼼히 관찰하며 질문들을 던진다. 그의 강준만에 대한 애정은 '드라이'하다. 그리고 강준만을 '진보 반동의 시대'의 '사회적 거울'로 설정한다. 2000년대 초 진보 담론 우위의 시대에 강준만이 어떻게 이탈했는지, 이후 지식인 사회와 주류 정치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은 강준만이 어떻게 '분투'했는지 따라가다보면, 지금 소위 '진보 진영'이 어떻게 위기에 처했는지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진보 의제와 담론은 중요하되, 그걸 다루는 이들이 그 당위성을 훼손한 시대, 필자가 이해한 윤춘호의 '진보 반동의 시대'는 그러하다. '내로남불' 진보 정치인이나 진보 논객이 말하는 '진보 담론'은 (그것이 조선일보 등 기득권 족벌 언론의 프레임에 의해서든, '친일 독재 후예'로 매도된 '보수 참칭' 세력들의 농간과 음모, 공작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진보 진영 내부에서 스스로 자신들이 자부하던 윤리적 우위를 무너뜨렸든 간에) 이제 더 이상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사회는 점점 냉소적이 돼 간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 일베의 탄생과 같은 현상 속에서 '진보 반동의 시대'라는 불편한 규정에 동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들은 기득권화됐고, '참여'는 '팬덤'으로 흘렀다. 혹자는 이걸 새로운 대중의 탄생과 민주주의의 바람직한 변화로 여기지만, 또 다른 이들은 이를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여기기도 한다.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윤춘호는 '진보 반동의 시대' 규정을 강준만의 글과 행보를 통해 설명한다. <아웃사이더 콤플렉스>(2008년), <강남좌파>(2011)에 이은 <강남좌파2>(2019), <싸가지 없는 진보>(2014)에 이은 <싸가지 없는 정치>(2020), <부족국가 대한민국>(2021) 등. 그의 책 제목만 나열해도 감이 잡히지 않는가? 필자에게 강준만의 30여년(1995년 <김대중 죽이기>부터 2024년까지)은, 한국 사회 30년, 특히 한국 '진보'의 30년을 비추는 거울이자 도구로 읽힌다.
윤춘호는 강준만을 다룬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한 지식인의 30년이 훨씬 넘는 노정에 대해서 한 사회가 마땅히 표해야 될 예우가 있다. 강준만의 생각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1인 봉괘수도원의 수도사'처럼 살고 있다. 돈 앞에서 무릎걸음을 하지 않았고 권력 앞에서 굴신하지 않고고립을 피해 연대를 구하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감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지만 내 자리가 왜 이리 작고 초라한 것이냐고 투덜대지 않는다. (…) 누군가는 이 사람의 이야기를 정리할 법도 하건만 제대로 모양을 갖춘 '강준만론'이 없다. 변명이든, 비판이든, 예찬이든 강준만의 삶은 기록되고 정리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야 마땅할 듯한데 그런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 특히 지식인 사회가 참 야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딘 붓을 가진 사람이 먼저 나서기로 했다."
'인터넷 매체'의 기자로서 필자에게 2000년대는 각별하다. 인터넷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민중의 소리,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이 탄생하고 수많은 정파 매체들이 명멸을 반복하던 시대에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지식과 논쟁의 소유권을 대중에게 돌려준 데 있다고 본다. 과거엔 신문에 칼럼을 쓰는 게 지식인들의 '특권'이었다. 신문은 그 '특권'을 부여하는 '특특권'을 누렸다. 지면에 글을 싣고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신문사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지금은 '통합 뉴스룸'이니 하는 개혁 작업들이 요란하지만, 당시 <조선닷컴>이니 하는 '닷컴 언론사'들은 신문 지면의 기사를 온라인에 옮기는 역할, 온라인용 가십 기사를 생산하는 역할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신생 매체들은 달랐다. 신문에 지면을 얻지 못한 소장파 학자들이 너도 나도 '열린 인터넷 매체'에 글을 실을 수 있었고, 이름없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스타가 탄생했다. 인터넷 언론은 바야흐로 신문 등 몇몇 주류 언론의 '발언권 독점'을 깨부쉈다. 누구도 글을 발표하기 위해 유력 미디어에 굽신거릴 필요가 없었다. 그 토양 위에서 2000년대 '대 논객의 시대'가 열리고 '상상력에 권력을' 부여하는 진보의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그러나 2010년대 부터는 소셜미디어의 발전으로 논쟁의 장이 옮겨갔고, 지금 언론사들은 모두 고군분투중이다. 이 또한 필연적 변화일 것이다.
그간 2000년대 논객들이 당시를 회상하며 쓴 책들은 꽤 있었다.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라든지 <안티조선운동사>와 같은 책들이 일종의 '기록 목적'이라면 <강준만의 투쟁>은 2000년 대를 관통하는 우리 시대를 조망하는 책이다. 20대 시절 강준만과 고종석, 유시민 등을 열독하며 밤새 토론했던 기억을 불러 일으킨다. 저자는 이른바 86세대에 해당하지만, 이 책은 70년대생 X세대가 읽으면 좋을 책이다. 그 이후 세대가 읽으면서 2000년대의 격변기를 새롭게 해석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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