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경제민주화 논의가 사라졌다."
박창규 노회찬비전포럼 운영위원장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노회찬 6주기 추모 심포지엄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故) 노회찬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생전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제19대 국회는 '경제민주화 국회'라고 불렸다. 그 정도로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 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국회에서 해당 논의는 사라졌다. 다만 경제 민주화로 해결하려 했던 경제사회적 불평등 문제는 우리 사회에 여전하다. 이날 국회에서 '노회찬'이 다시 소환된 이유다.
노회찬재단과 노동당·녹색당·정의당 등 진보정당은 이날까지 이틀간 노회찬 6주기 추모 심포지엄을 국회에서 열고, '한국 민주주의 질적 전환을 위한 개혁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했다. 기후정치, 경제민주화, 대의제 혁신 등 노 전 대표가 의회 안팎에서 던졌던 정치적 의제들이 제22대 국회, 2024년의 현 정치 지형에 맞추어 다시 논의됐다.
경제 민주화 부문 발제를 맡은 박 위원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불평등은 이미 오래된 미래"라며 이 같은 의제들의 현재성을 강조했다. 노 전 대표는 19대 국회 입성 당시 '국회의 핵심 과제는 무엇인가' 묻는 언론의 질문에 "경제민주화"라고 답을 내린 바 있다. 박 위원장은 해당 답변의 의도가 "제도 하나 고치는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경제 불평등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서 교육, 사회갈등, 저출생 문제 등 이런 문제들까지 야기시키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모두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핵심적인 정치적 과제로 꼽히는 요소들이다.
박 위원장은 "이러한 경제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선 노회찬 의원이 의정활동에서 보여주었듯이 대자본과 보수정치에 의한 '반동적 레토릭'에 적극 대응하는 '경제민주화 정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정치세력화가 미흡하고, 보수정치 세력은 경제 불평등 극복에 무관심하며, 결국 "진보정치 세력의 미진한 정치세력화는 경제 불평등이 구조적인 사회갈등 요인이자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구체적으론 △노동시장에서의 1차 분배 및 재분배 정책 △적극적 통화정책 △시장구조 개혁정책 등의 경제민주화 정책과제를 제기했다. 특히 노동소득분배율 개선, 최저임금 및 단체교섭 확대 등 노동시장 1차 분배와 노동자들의 교육 및 훈련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추진을 의미하는 재분배는 '성과공유제'가 아닌 '대-중소기업 초과이윤공유제'를 법제화하려 노력했던 노 전 대표의 생전 행보와도 맞닿아 있는 정책과제다.
토론회에선 이른바 '87년 체제' 이후의 민주주의를 위한 대의제 민주주의 개혁 방안도 논의됐다. 서현수 한국교원대 교수는 발제문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은 단 1표만 더 얻어도 모든 권력을 차지하는 승자독식 정치를 민주주의의 근본 규범으로 내면화하면서 대립적 진영 정치와 정치 양극화가 계속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정치구조를 바꾸기 위해 헌법·선거제도·의회·참정권·지방자치거버넌스 등 다방면에서의 대의제 제도개혁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정치에 대한 "시민 참여를 확대·심화함으로써 전통적인 대의제 정치를 쇄신·재구성하기 위한 제도, 과정, 운동"을 의미하는 '민주적 혁신'을 대의제 개혁의 키워드로 제시했다. 이미 일례로 잘 알려진 참여예산제, 21세기 타운홀미팅 등 열린 민회 등 "시민들의 의사소통적 토의를 통해 합당한 의사결정에 도달하는 다양한 숙의적 미니공중(mini-public)"이 민주적 혁신의 대표적 유형이다.
서 교수는 "민주적 혁신 기제들이 표준적인 대의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정치적 대표의 개념과 기제들은 앞으로 더욱 쌍방향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으로 새롭게 재구성돼 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치공동체 발전을 위해선 대표, 참여, 숙의라는 민주주의 핵심원칙들이 "배타적이기보다 상보적"으로 연계돼야 한다는 게 서 교수의 지적이다.
심포지엄 첫날인 10일엔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연구소' 소장이 '기후정치의 진단과 과제'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기후위기 시대 정치의 역할과 전망을 되돌아보고 현 시대 한국의 기후정치를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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