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다. 나는 2015년 제주제2공항이 발표되고, 2017년 제주로 돌아온 이후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조만간 내가 나고 자란 조그마한 고향에 커다란 소행성이 충돌할 것이라는 사실이라도 들은 듯 불안했기 때문이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계획은 그러한 위협이고 그러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이미 개발로 인해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주변 환경의 모습들이 보였고, 매년 들려오던 생명의 소리들이 멀어지고 있었다. 마을에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서로 멀어져갔다. 안타까움으로 시작한 작은 활동은 어느덧 나의 삶의 과제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물어왔다. "제주제2공항은 진짜 들어오는 거야?", "국가사업인데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
과연 그럴까?
작년 하반기에 이래저래 몸이 고장이 났고, 결국 번아웃이 찾아와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게 되었다. 휴식을 위해 독일에 있는 친구 J를 만나러 갔다. J는 내게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자드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곳의 이야기를 들은 J는 나보다 더욱 신이 나서는 그동안 불어를 공부한 보람이 있겠다며 기꺼이 자드에 동행해주겠다고 했다. 자드(ZAD)는 '지켜야할 땅'이라는 뜻으로, 본래는 '개발 예정지(Zone d’amenagement differe)'인 것을 활동가들이 'Zone a defendere(지켜야할 땅)'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한데서 유래되었다. 프랑스 낭트에 추진 중이던 신공항 예정지에도 자드와 사람들이 있었다.
2018년 겨울, 동료 활동가 강은 신공항 프로젝트 백지화를 이루어낸 프랑스 낭트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내가 자드에 대해 듣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강은 한 달을 자드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때부터 자드라는 공간은 언제나 나의 책상 서랍 안에 힌트 카드처럼 놓여 있었던 것 같다. '그곳에 가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낭트에 도착하자, F가 우리를 데리러 나왔다. F는 강의 오랜 친구로, 몇 년 전 성산에 방문했을 때 함께 시간을 보냈었다. 이후 F와 강을 통해 자드 사람들과 성산 사람들이 연대하는 줌미팅을 하기도 했었고, 연대의 선물로 연이나 한국의 먹거리를 보내기도 했었다. 오랜만에 만난 F는 우리에게 저녁을 대접했다. 농담을 좋아하는 F는 이제는 선생을 그만두고 예술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의 행색을 한번 훑어보더니 "이러고 자드에 가겠다는 거야?" 하며 이마를 짚었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F는 무릎까지 오는 장화와 우비, 그리고 손전등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현금을 챙겨가라고 조언했다. 준비물을 챙겨주며 잘 살아 돌아오라는 F의 농담에 살짝 긴장이 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밤이 되자 F는 우리를 자드까지 데려다주었다. 어둠이 내린 꽤 넓은 도로 주변에는 차도 얼마 없었고, 빛도 보이질 않았다. 장난기 많은 그가 이번엔 내게 진지하게 물었다. "제2공항 프로젝트가 백지화 될 것이라고 얼마나 확신하지?" 나는 머릿속에서 마땅한 답을 찾기 시작했다. 이 대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내게 던진 질문이 실제로 공항이 들어올 확률이 얼마냐가 궁금했던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무언가 던지고 싶었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제주에서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나는 많이 지쳐있었으므로.
낭트의 신공항 프로젝트는 1970년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민들의 강경한 투쟁이 있었고, 한번 철회되었으나 50년 가까이 계획은 살아있었다. 2000년부터 2009년 사이에는 환경 연구자, 법조인, 조종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이슈들을 공론화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신공항 예정지는 중요한 자연환경이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정부에서 주장하는 활주로의 문제 등은 조종사들의 의해 반박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열띤 토론은 저녁 시간에 200, 300명씩 모여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지주들에게 공시지가 보다 20%가 넘는 가격을 제안하여 사업 착수 전까지는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주민들을 회유했다. 또한 2011년 '방씨'라는 건설사가 결정이 되었는데, 본격적인 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되자마자 80프로가 땅과 집을 팔고 떠났다. 2000년대에는 반대의 명확한 논리가 있어서 희망이 있었으나, 건설사가 결정된 2011년 이후에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2012년 프랑스 정부가 남아있는 20%의 주민을 강제로 쫓아내는 철거작전이 들이닥치자 주민들은 단식 저항을 시작했다. 저항의 구호는 법적 절차가 마무리 될 때까지 쫓아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때의 행정대집행 이후 4만 명의 시민들이 연대하여 자드에 모이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찬반을 둘러싼 주민 투표가 있었다. 주민투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긴 했으나 정부가 밀어붙여 추진하게 되었다. 주민투표의 대상은 낭트시보다는 큰 단위인 데파트멍 주민들 사이에서 진행이 되었는데, 찬성 53% 대 반대 47%로 투표에서 찬성이 높게 나왔다. 그럼에도 2년 뒤에 백지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환경적 이슈, 국가재정 악화 등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정부의 공식 입장은 주민들의 갈등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50년에 걸쳐 마침내 신공항 프로젝트 백지화가 이루어졌을 때 주민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당시 반대위원장을 맡았던 한 농민은 백지화 하루 전까지만 해도 승리할 것이라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난개발로부터 땅을 지켜내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늘 있었다고 한다. 자드 도서관에 한 쪽 벽면에는 자드의 미래에 대한 합의문이 걸려있다. 이 글은 총 여섯 가지 항목으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신공항 계획이 백지화 되고 난 후 그 땅의 미래를 고민하기 위해 일 년 동안 토론을 거쳐 작성됐다고 한다.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지역의 자연 경관, 주민들, 다양성, 식물, 동물, 그리고 공유되는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고 돌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거주자들의 거주에 대한 권리 회복, 농부들의 경작 권리 회복, 새로운 주민들의 생활 방식 수용, 토지 사용에 관한 사항, 갈등해결을 위한 다양 존중과 단합에 대한 결의에 대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신공항프로젝트 백지화 이후 자드에는 환경운동가, 페미니스트, 예술가들, 목축업자, 농부들, 디자이너, 건축가, 캠페이너, 언론인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남아 다양한 삶의 형태로 대안적 사회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양을 키우고, 어떤 이들은 갈렛(밀가루 전)을 만들고, 어떤 이들은 농사를 짓고, 어떤 이들은 집을 짓는다. 공동체마다 순환 가능한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고, 각 공동체에서는 공동으로 활동을 하며 각자가 추구하는 일들을 한다. 삶의 방식과 가치가 다른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 있지만,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인 토론을 거치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회의를 열며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나가고 있었다. 50년 투쟁의 끝, 백지화를 이루어낸 프랑스 낭트 자드의 모습이다.
2015년 국토부는 성산읍 일대에 제주제2공항 건설을 발표했다. 이후 사전타당성 검토, 기본계획안, 전략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치는 동안 제주제2공항 건설로 인해 제주가 처하게 될 문제와 공항건설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져가고 있다. 환경부는 자신들이 세 번이나 반려했던 국토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해 결국 조건부 동의를 내렸다. 전략환경영향평가의 검토기관들이 보완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낸 것을 무시하고서 말이다. 숨골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숨골의 기준은 무엇인지, 법정보호종 서식지에 대한 보전방안은 무엇인지, 홍수나 지하수 고갈 등 주변 지역에 어떠한 피해를 주게 될지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다. 국토부는 작년 말까지 고시를 하겠다고 했으나 6월 중순인 현재, 기재부와의 협의에서 계속 지연되고 있다.
9년이 지났다. 2025년에 건설 예정이던 제주제2공항은 현재까지 고시도 못하고 있다. 2021년 찬반 여론조사에서는 제주도민은 반대로 결정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와 땀들이 모여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수산봉 정상에서 제2공항 예정 후보지를 바라보며 상상 해본다. 성산 자드에 사람들이 모인다면, 백지화 이후의 미래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게 될까? 제주제2공항을 막아내어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성산, 제주의 미래는 무엇일까? 위기에 직면하고서야 발견한 소중한 가치들, 우리가 구하고 지켜내기 위해 애쓰던 존재들, 농민들이 마음껏 농사지을 수 있는 땅, 뭇 생명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터전, 모두가 손을 잡아 다 함께 위기의 시대를 넘어설 수 있는 연대 등등등.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한줄 한줄 써내려갈 그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글쓴이 김현지 : 제주제2공항 건설에 대한 발표가 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제주제2공항 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장마철인 요즘, 아침에는 새를 보고 비가 오면 맹꽁이를 찾아 나섭니다.
이 글은 생태적 지혜 연구소, <제주투데이>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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