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7.23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어진 당권주자들 간 신경전의 키워드가 '배신의 정치'에서 '공한증'으로 옮겨가고 있는 양상이다. 한동훈 후보 측의 프레임 전환 시도에 따른 것으로, 결과적으로 한 후보 측에 유리한 변화로 보인다. 다만 당권 레이스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질 '배신·분열 프레임' 공세 극복 방안은 여전히 한 후보 측에 남겨진 숙제다.
한 후보 측 정광재 대변인은 30일 논평에서 "아무리 '공한증(恐韓症)'에 시달린다 해도 협박과 분열의 정치는 안 된다"며 "사실상 아무런 준비 없이 뒤늦게 나선 후보는 물론, '덧셈의 정치'를 외치던 후보 등 모든 당권주자들이 한동훈 후보를 향해 '배신' 운운하며 약속한 듯이 인신공격성 공세를 펼치고 있다"고 상대 후보들을 겨냥해 역공했다.
정 대변인은 "발생할 가능성이 전무한 대통령 탈당을 입에 올리는가 하면, 탄핵 시나리오를 언급하며 전당대회를 공포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이는 당원과 국민에 대한 협박 정치이자 공포 마케팅"이라며 "상대를 향해 어떻게든 씌우려는 악의적 '배신 프레임'은 분명 당원과 국민의 심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정 대변인의 지적처럼, 한 후보는 지난주 내내 원희룡·나경원·윤상현 후보 측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라는 공격을 받았다. 지난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간의 갈등 사례를 연상시키는 공세로,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와 마찬가지로 현재 한 후보가 '여당 내 대통령에 대한 반대파'의 위치에 있음을 부각시킨 것이었다. (☞관련 기사 : 원희룡, 한동훈에 "배신의 정치"…박근혜-유승민 데자뷰?)
원 후보는 지난 28일자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배신의 정치, 계산의 정치가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고 했고, 윤 후보도 26일자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절윤(絶尹)'이 된 배신의 정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나 후보도 29일 이명박 전 대통령 예방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특정인에 대한 배신이 국민을 위한 배신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이해될 수 있지만, 사익을 위한 배신이라면 그것은 다른 차원"이라고 가세했다.
나 후보는 전날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난 후 보도자료와 SNS 글 등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이 "나라가 지금 어려울 때라, 소수당인 여당은 힘을 모아야 한다. 당정이 힘을 모아야지, 분열되면 안 된다"고 당부한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나 후보는 "전당대회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계시는 이 전 대통령께서는 누구보다도 당의 분열을 깊이 걱정하셨다"며 "개인 욕심을 위해 국민을 파는 것도, 개인 욕심을 위해 대통령을 파는 것도, 모두 당원과 국민을 위한 진정성 있는 정치가 아니다. 사심의 정치가 바로 배신의 정치"라고 했다.
한 후보 측은 이에 대항해, 원·나·윤 후보 측이 한 후보를 '배신' 프레임에 가두려는 것은 한동훈이 두렵기 때문이라며 '공한증'이라는 신조어를 동원해 프레임 전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이 배신자인가 아닌가'라는 공방은 결론과 무관하게 그 존재 자체로 '윤-한 갈등'을 부각시킨다는 면에서 한 후보 측에 득될 것이 없기 때문.
'공한증'은 원래 국가대표팀 축구경기(A매치)에서 중국팀이 유독 한국에 약한 증세를 보인 것을 한·중 양국 축구팬과 언론이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지만, 한 후보 측은 '한국'의 한(韓)자가 한 후보의 성씨와 같다는 점을 이용해 의미 전용을 시도했다.
한 후보 측의 이같은 시도는 일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원 후보는 이날 SNS에 쓴 글에서 "공한증 맞다! 어둡고 험한 길을 가는데, 길도 제대로 모르는 초보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을까 무섭고 두렵다"고 한 후보 측의 반격 공세에 직접 대응했다.
나 후보 측도 김민수 캠프 대변인 논평을 통해 "공한증의 다른 이름은 보수 분열에 대한 공포"라며 "보수를 사랑하는 당원과 국민은 두렵다. 한(韓) 개인의 적개심이 우리 보수의 아픈 역사를 되돌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배신의 정치' 공방이 그 자체로 한 후보 측에 불리한 의제임과 마찬가지로, '공한증'이라는 말은 이른바 '한동훈 대세론'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면에서 언급되는 것 자체가 다른 후보들에게 손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캠프의 역공을 무시하거나 흘려내지 않고 후보 본인(원희룡)이나 대변인(나경원)이 정면 대응한 것은 그런 면에서 실책이 될 수 있다.
韓 '배신·분열' 프레임 극복 방안은?
다만 원희룡·나경원 후보 측은 이른바 '윤-한 갈등'이라는 한 후보의 최대 약점을 지속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원 후보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집권 여당이다.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즉 국민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서는 당내는 단합해야 하고 당정관계는 소통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원 후보는 그러면서 "한 후보에게는 소통·신뢰가 없다. 총선이 4월 10일에 끝나고 출마선언을 한 6월 20일까지 70여 일 동안 대통령과 전화 한 통, 문자 한 번, 또는 만나서 총선을 함께 복기하고 앞으로 당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단 한 번이라도 대화한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저는 (그런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 후보를 다시 겨냥했다.
원 후보는 "비대위원장 임명 후 총선이 끝난 4월 10일까지 저희는 충돌이 있어도 약속대련인 줄 알았다. 20여 년 동안 수사와 가족 간에도 식사뿐 아니라 넥타이도 챙길 정도의 친분관계, 현직 검사이면서도 가족들과 카톡을 무수히 주고받은 관계 아니냐"면서 "그런데 나중에 한 후보와 대화해 봤더니 사실상 의미 있는 (대통령과의) 소통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가 알았던 한 후보와 대통령의 신뢰 관계가 그게 아니라는 것을 당원들도 알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나 후보 측도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탈당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출당당했다. 오직 이명박, 문재인 대통령만이 끝까지 당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당원들은 탈당을 넘어 또다시 우리 대통령을 출당시키는 것이 아닌지 두려워한다. 당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내쳤던 장면을 잊지 못했다"(김민수 대변인)고 '배신의 정치' 프레임 연장을 시도했다.
한 후보는 이날 공개 일정을 소화하지 않았다. 한 후보 측근인 장동혁 최고위원 후보는 원 후보의 '비대위원장 시절 대통령실과 소통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 "의미 있는 소통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밥 먹는 게 의미있는 소통이냐"며 "민심, 당의 역할, 대통령실·정부는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소통했다"고 반박했다.
장 후보는 "소통이라고 하는 것은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며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소통이 없었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다만 그는 "소통의 전제조건은 서로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변화할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며 "앞으로 소통을 더 늘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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