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똥을 싸다’와 ‘똥을 누다’의 차이에 관해 길게 쓴 적이 있다. 결론은 ‘싸다’라고 표현하는 젊은이들의 언어 행태는 잘못된 것이고, “똥을 누다.”라고 해야 맞는다는 말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오는 것을 ‘싸다’라고 하고, 자신의 의지에 의해 자세를 잡고 화장실에서 제대로 볼일을 보는 것을 ‘누다’라고 한다. 물론 ‘지리다’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개념상 차이가 있다. ‘지리다’는 는 ‘참지 못하고 조금 싸다’는 뜻으로 “태호는 요즘 수술 후유증으로 소변을 조금 지린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신문에서는 ‘누다’와 ‘싸다’를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언론의 역할은 정확한 내용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정확한 어휘를 사용해야 한다. 요즘 많은 언론인들이 관공서에서 나누어주는 보도 자료를 오자(誤字)까지 그대로 신문에 싣는 것을 본다. 며칠 전에 나온 신문 기사의 제목을 보면 ‘센강에 똥을 싸자’라는 말로 장식되어 있었다. 파리의 어른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똥을 싸는 철부지들이라는 말인가? 파리 사람들은 도대체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없이 똥을 싸는 정신병자들이라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필자가 프랑스어에 약한 관계로 파파고의 힘을 빌어 그날의 기사를 찾아 번역한 것을 살펴 보았다.(신문에 있는 것을 그대로 복하여 붙인 것이다)
JeChieDansLaSeineLe23Juin =>6월 23일 라 센 강에서 지치
I Chie In The Seine June 23rd(영문) 6月23日 齐齐河(중국어 간체)
6月23日 齊齊河(중국어 번체)
이런 번역을 보면 파파고도 아직은 갈 길이 먼 것은 틀림없다. 중요한 것은 기자들의 자세가 문제다. 원문을 보고 베끼든 번역을 하든 간에 우리말의 어법에는 맞게 써야 한다. 아마도 원문에는 ‘아이들처럼 강에 똥을 싸서 오염시켜버리자’는 의미가 강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싸다’와 ‘누다’의 구분이 명확하게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쓴다고 해서 그대로 써서야 되겠는가?
요즘 손주의 재롱을 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황금색 똥을 싸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이 맛에 할아버지들이 자기 자식보다 손주들을 더 이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이(아들과 딸)들이 클 때는 삶에 지쳐 어떻게 크는가도 모르고 지나갔는데, 손주의 재롱은 밥 달라고 보채는 것까지 귀엽다. 하지만 나이 먹은 할머니가 똥을 싸고 누워있다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냄새가 독하고 지저분할 것인지 상상하기도 싫다. 이와 같이 아이가 싸는 똥은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어른이 싸는 똥은 더럽기 짝이 없다. 자신의 의지에 의해 화장실에 가서 얌전하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 나이에 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요즘 우리 학생들의 99%는 ‘똥을 싸고 왔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확실하게 잘못된 표현이다. 물론 서울 사는 교양인들이 그렇게 말하면 언젠가는 표준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나, 아직은 그렇게 표현하면 절대로 안 된다. 어른은 어른에 알맞은 어휘가 있다. 그래서 ‘똥을 누고 왔어요.’라고 해야 한다. 장난을 좋아하고, 아이들과 거리낌 없이 대화하는 필자지만 이런 것은 명확하게 구분해 준다. 특히 외국인이 많은 학과이기 때문에 정확한 어휘를 구사해야 하는 것은 필수다.
아마도 처음에는 장난으로 ‘똥을 싸다’라고 시작했을 것이다. 그것이 재미있어서 그런 것인지, 몰라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언어 생활에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고 있다.
곁에 있는 예쁜 애인이 앉아서 똥을 싸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절대로 그렇게 표현하면 안 된다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오호,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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