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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가야시대 왕성·도성 연구 아직은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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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가야시대 왕성·도성 연구 아직은 부족"

이동희 인제대 교수 "지금까지 확인된 가야 왕성보다 앞으로 밝혀야 할 것이 더 많아"

"가야시대 왕성(王城)과 도성(都城)의 실체를 파악하기까지는 아직은 부족한 듯 합니다."

이동희 인제대 교수는 14일 '2024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에서 이같이 피력했다.

이 교수는 "가야가 도성을 조영하는 시기인 5∼6세기대에는 백제와 가야는 긴밀한 교섭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삼국시대에 중국 남조와 가장 교섭을 많이 했던 나라가 백제라는 점에서 가야는 백제를 통해 중국 도성에 대한 간접적인 정보를 얻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백제도 중국 도성을 그대로 구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서 "백제보다 영역과 국력이 훨씬 약한 가야 여러 나라가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2024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에 김우락 김해문화원장(왼쪽 여섯번째)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조민규)

그러면서 "가야 여러 나라가 백제와 중국 남조 도성에 대한 직·간접적인 인식을 했더라도 그 수용 여부는 현지사정에 따라 달랐을 것이기에 남조의 도성이 가야의 도성에 반영되었을 가능성은 미약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교수는 "가야는 백제와 같이 200년 이상 도성을 조영한 경험을 쌓지 않았다"며 "가야가 직·간접적으로 중국 남조의 도성을 인지하였더라도 그것은 전체적인 모습이 아닌 부분적인 속성만 변용된 채 채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즉 가야에서는 중국·백제의 도성을 원용했겠지만 현지에 맞추어 더 축약된 형태였을 것이다는 것.

이 교수는 "가야는 중국(남조)에 비해 공간적으로 매우 제한된 여러 소국으로 구분되어 있다"면서 "가야 도성을 중국의 고대 국가에 직접 비교하기에는 그 규모면에서 턱없이 미약하다. 따라서 소규모·초보적인 도성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종래 가야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연구는 고분에 치우쳐 왔다"며 "가야의 왕성이나 생활유적에 대한 조사·연구는 미흡했다. 따라서 향후 왕성과 생활유적에 대한 기획발굴조사가 활성화되어야만 가야사의 입체적인 복원이 가능할 것이다. 즉 도성제의 형성과정과 성 내외의 공간활용 방식을 염두에 둔 장기적인 학술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동희 교수는 "가야는 호남 동부지역까지 포함하면 최대 20여개 소국(小國)에 이른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확인된 가야 왕성보다 앞으로 밝혀야 할 가야 왕성이 더 많다는 점이다"고 하면서 "향후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해 더 많은 가야 왕성을 찾아야 하고 그 구조를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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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규

경남취재본부 조민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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