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겨울, 모처럼 시댁에 가 점심을 먹은 후였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분위기가 무거웠다. 시아버지가 머뭇머뭇하시더니 어렵게 말을 꺼내셨다.
"어리야, 네가 쓴 글 봤다. 너희 그동안 고생 참 많이 했겠더라."
목적어가 빠진 말이었지만 단박에 이해했다. 두어 달 전 쓴 서평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난임을 주제로 한 소설에 대해 서평을 쓰며 나는 난임을 고백했다. (☞관련기사 : "주사와 부부싸움이 9할…어서와, 난임의 세계는 처음이지?")
약간의 머쓱함이 스쳐 간 다음엔 안도감이 들었다. 사실 그 서평은 주위 분들에게 보란 듯 쓴 글이었다. '내가 난임이오' 하고 면전에서 말할 자신이 없어 머리를 굴리다 말 대신 글로 전한 것이었다. 특히나 난임 고백 상대로는 최고난도에 해당하는 시부모님이 마침 내 기사를 무척 열심히 보시는 열독자셨던 터라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서평이 나간 후로 몇 달간 아무 말씀이 없으시기에 안 읽으셨나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역시나 서평은 일찍이 보셨고, 이번엔 시부모님께서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지 끙끙 앓으셨던 모양이었다. 내 딴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짐을 넘겨드린 꼴이었다.
시아버지가 먼저 말씀을 꺼내시자, 시어머니도 "그동안 우리가 너희 사정도 모르고 애 가지라고 압박한 것 같아 미안하다"며 "마음 편하게 가지라"고 하셨다. 뭉클했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난임 부부의 삶은 어때요?'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충격과 스트레스의 연속이요"라고 말하고 싶다. 첫 단계, 난임을 받아들이는 과정부터가 난관이다. 만 35세 이상 여성이 자연 임신을 시도한 지 6개월이 지나도 소식이 없을 경우 병원에서는 '난임'으로 본다. 나는 6개월은커녕 1년이 지날 때까지도 '설마 내가 난임이겠어?'라며 현실을 거부했다.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진 것이었다. 결국 병원에서 '난임' 단어를 똑바로 듣고 나서야 저항을 멈췄다.(여전히 100%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충격의 첫 단계를 지나고 만나게 되는 난코스가 바로 '난임 말하기' 단계다. 굳게 마음 먹으면야 끝까지 말 안 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원가족 있고 직장 있는 부부라면, 특히 우리 부부처럼 결혼한 지 5년쯤 되는 중고 신혼부부의 경우라면, '애 왜 안 낳느냐'는 질문 세례를 피하기 어렵다.
우리 부부의 공식 답변은 "슬슬 준비하고 있어요"였다. 상대가 불쾌해하지 않는 선에서 진실은 말하지 않는 그런 답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동정의 대상이 되고, 대답을 거부하면 잔소리를 듣는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나름의 타협점을 찾은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슬슬 준비하고 있어요"라는 답변이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한 순간이 생겼다. 억울해졌다. 왜 자꾸 이런 말들을 '개발'해 내야 하나. 난임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아주 오래전, 중학생 때였나. 생리대를 처음 직접 샀을 때가 기억났다. 그 시절 여느 소녀들이 그러했듯 나는 생리대 사는 게 너무도 부끄러운 나머지 마트에서 온갖 '생쇼'를 했다. 생리대가 진열된 매대 앞에서 휴지를 고르는 척 어슬렁거리다 사람이 없을 때 미리 챙겨온 검은 봉투 안에 쏙 넣어 계산대로 가져가는 게 나만의 생리대 구매 의식이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자 화가 났다. 생리가 무슨 죄라고 생리대 살 때마다 죄 지은 사람처럼 숨어 다니나. 나는 별안간 각성한 인간이 되어 생리대를 한 움큼씩 맨손에 집어 들고 팔랑팔랑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함께 마트에 간 오빠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생리대 사는 것 안 부끄럽냐"고.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이게 왜 부끄러운 일이야?"
생리가 죄가 없듯, 난임도 죄가 없다. 그런데도 나는 왜 숨긴 것일까. 스스로의 심리 상태를 파헤쳐보았다. 앞서 말한 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동정의 대상이 되고, 대답을 거부하면 잔소리를 듣는 상황'은 확실히 불편하다. 그런데 이것은 상대가 그리 가깝지 않은 관계일 때까지 해당되는 이유 같았다. 곰곰이 잘 생각해 보면 직장 동료 그리고 가족 특히 시부모님과의 관계에서는 다른 차원의 이유가 있었다.
1. 회사에 난임을 고백한다->업무 공백에 대한 우려 때문에 나를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다->업무상 불이익이 따를 수 있다
2. 시댁에 난임을 고백한다->대를 잇지 못할 수도 있다는 데 대해 걱정하실 수 있다->미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시나리오이며(나는 MBTI 중 대문자 'N'인 사람이다), 나의 직장 동료들과 나의 시부모님은 평균 이상의 인간애를 지닌 분들이다.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그런 위협을 느꼈던 것 아닌가 싶다. 직장에서 배제되거나 가족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조바심, 그것이 난임을 쉽게 고백하지 못하게 만드는 진짜 이유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는 직장과 시댁에 모두 난임 사실을 밝혔다. 배제되거나 미움을 받지 않으리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와는 달리, 많은 난임 여성들이 난임임을 밝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따르는 난임 시술을 휴가도 쓰지 못한 채 근무 시간을 쪼개서 하다 몸이 망가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안타까운 일들이다.
난임 여성에 대한 배려가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렸을 때 사랑을 많이 받아본 아이가 사랑을 베풀 듯, 배려도 받아 본 이가 배려를 베푼다. 사람 대 사람의 관계만이 아니라 사람 대 조직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이해하고 도와주며 가정과 직장, 더 크게는 나라가 굴러간다고 나는 믿는다.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 초저출생의 비밀을 캐려 안간힘을 쓴다. 먹고 사는 게 팍팍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듯하다. 그래서 돈을 얼마를 더 준다느니 하는 정책들이 차고 넘친다. 글쎄, 경제적 팍팍함보단 마음의 퍽퍽함이 어쩌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나의 어려움을 털어놓지 못하고 어딘가에 기대지 못하는 상황들의 합이 지금의 현실 아닌가 하는 지극히 'N스러운' 생각을 해본다.
난임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을 꿈꿉니다. 그래서 <나의 '난임' 해방일지> 연재를 하려 합니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어려울 것이란 걸 압니다. 한 자릿수로 끝내보려 합니다.
나라에서는 애를 낳으라 난리인데, 한쪽에서는 저처럼 애를 갖고 싶다 난리입니다. 초저출생 시대의 난임 여성, 난임 부부의 삶은 어떠한지 있는 그대로, 하지만 최대한 유쾌하게 풀어가려 합니다. 공감해주셔도 좋고 응원해주셔도 좋고 지적해주셔도 좋습니다. 난임에서 시작해 출산, 육아, 여성, 결혼, 직장 등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 글에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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