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직권 남용 의혹' 핵심 키맨으로 다시 떠올랐다. 이 전 장관은 그간 '윤 대통령과 통화를 한 적 없다'고 부인해왔지만, 최근 윤 대통령과 개인 전화로 이 전 장관과 통화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전 장관은 공수처 수사를 받는 도중 출국금지 조처가 내려졌음에도 호주 대사로 내정, 실제 호주로 출국하면서 수사 외압 의혹이 지난 총선 핵심 이슈로 떠오르는 데 불을 지폈던 인물이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항명 혐의 재판에서 공개된 통화 기록 등을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채상병 초동 수사 기록이 경찰에 이첩됐다가 회수된 날인 지난해 8월 2일 이종섭 전 장관과 '개인폰' 등을 통해 세 차례, 총 18분 40초 동안 통화했다.
애초 이 전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8월 2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통령실로부터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문자를 받거나 메일을 받은 게 없냐'는 질문에 "문자나 전화를 받은 것이 전혀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 하지만 통화 기록이 등장하자 이 전 장관 측은 "(통화 기록은)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한 항명죄 수사 지시나 인사 조치 검토 지시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묘한 뉘앙스 변화다. 이 전 장관의 주장대로 '통화는 했지만 해병대원 사망 사건과 관련한 통화는 없었다'는 게 '거짓'은 아닐 수 있다.하지만 다수의 정황 증거는 이 전 장관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일례로 이 전 장관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바꾼 바 있다. 그는 공수처에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 발생 후에 사용한 휴대전화 기기, 즉 '깡통폰'을 제공해 논란이 있었다. 이후 박정훈 전 수사단장 재판 과정에서 통신사를 통해 이종섭 이 전 장관의 통신 기록을 조회한 결과, 이 전 장관과 윤 대통령이 직접 통화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떳떳했다면 이 전 장관이 휴대 전화를 바꿀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둘째, 8월 2일 통화가 이뤄진 날은 윤 대통령은 여름 휴가 첫 날이었다. 이 전 장관은 한국에 없고 우즈베키스탄 출장 중이었다. 윤 대통령은 그날 저녁 당시 새만금에서 열린 잼버리 대회에 참석했고, 이후 경남 진해 해군기지, 거제 저도 등을 찾아 휴가를 보내는 중에도 '짐버리 폭염 논란', '흉기 난동 사건', '태풍 긴급 대책' 등 산적한 국정 현안을 챙겨야 했다.
임박한 안보 현안이 없는데도 휴가중인 윤 대통령과 해외 출장 중인 이 전 장관이 '비화폰'도 아닌 '개인폰'으로 전화 통화를 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통화 전후로 대통령실과 국방부와 해병대 수사단, 경찰 등은 '초기 수사 결과 이첩'을 두고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통화 시간을 보면 의구심은 더 커진다. 윤 대토령과 이 전 장관은 8월 2일 오후 12시 7분에 약 4분간 통화를 했고, 이후 12시 43분에 약 13분간 했다. 그리고 12시 57분경에 52초간 통화한다. 대통령과 장관이 통화를 하기 전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혐의자 8명을 적시한 조사 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됐다가, 대통령과 통화 후 군 검찰이 다시 회수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과 장관이 두번째 통화를 하던 때 김계환 사령관이 박정훈 전 수사단장을 보직해임했다.
'채상병 관련 내용'으로 통화하지 않았다거나, "이첩 보류 지시 등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자신의 권한과 책임에 따라 정당하게 결정한 것"이라는 주장은 이같은 정황에 비춰보면 신뢰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 전 장관은 'VIP 격노설'에 대해서도 미묘한 입장 변화를 보여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9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통령 격노는 전부 사실이 아니고 박정훈 전 수사단장 측에서 허위로 이야기한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최근에는 "대통령의 격노를 접한 사실이 없다"고 뉘앙스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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