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반 만에 재개된 한일중 정상회의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중 전략 경쟁 구도 속에서 한중일 3개국이 만나 일정한 합의를 했다는 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지만, 출범 이후 국가 안보와 경제 이해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지 못했던 윤석열 정부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28일 글로벌전략협력연구원이 주최하고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중국평론사>가 후원한 '한중일 정상회의의 평가와 전망' 기획세미나에 참석한 이지평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는 26~27일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에 대해 "만난 것 자체에 대해 평가를 내릴 수 있다"며 "각국의 입장을 초월하면서 경제협력 및 지역협력의 모멘텀을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평가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이현태 인천대학교 교수는 이번 회의가 미국과 중국 모두를 견제하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이 한국에 첨단 산업시설을 자국으로 옮겨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해도 우리는 '울며 겨자먹기'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미국은 한중 양자가 아닌 일본이 포함된 한중일 회의에 대해서는 아주 위험하게 보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일중 정상회의가 나름의 협력을 하면서 미국의 요구를 완화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그런데 이 회의는 역설적으로 중국 견제의 역할도 있다. 중국은 양자 관계에서 압도적 국력을 통해 협상의 위상을 높이는 전략을 사용하는데 한일중은 다자회의"라며 "한일이 모여 부담스러운 중국을 같이 상대하는 의미도 있다"고 해석했다.
당초 미중 전략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 한일중 정상회의가 개최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3국 모두 정상회의를 개최해야 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용기 아주대학교 교수는 한국 정부의 절박함을 회의 개최의 배경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2023년 한국 실질 경제성장률은 1.4%였는데 이건 오일쇼크, 외환위기, 글로벌금융위기, 보건위기 등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성장률"이라며 "미국 중심적인 외교 정책이 경제적 질곡을 낳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고 총선에서 (여당이) 대패하면서 한일중 회의에 임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 일본 모두 대외 정책이 국내 이익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데 한국만 그렇지 않았다면서 "국내 경제 정책은 0점이고 이를 대외 정책과 어떻게 합치시킬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점에서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는 이제 여기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국가안보와 국내 경제적 이해관계의 균형을 맞춰야 할 필요성을 정부가 강요당하거나 또는 이를 해야 할 절박성에 처해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의 경우 미국 주도의 한미일 협력을 견제하고 북한과 일정한 거리두기 등을 위해 회의 참석을 결정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동규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입장에서는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니까 미국 주도의 협력 속도를 조절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지역 내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나오고 있는데 중국은 이에 대해 북러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며 "북한‧러시아와 묶인 국가가 아니라 포용성‧개방성을 가지고 한국‧일본과 교류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주로 남반구나 북반구 저위도에 위치한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와 협력하려는 중국이 추구하는 대외정책과도 맞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중국 공급망에서 소외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지평 교수는 "일본은 그린 이노베이션(Green Innovation, 녹색 혁신 산업)과 관련 리튬이나 코발트 등 광물의 의존도가 높아졌다"며 "한미일 공급망만 믿을 수 있겠냐는 인식 하에 중국이 구축하고 있는 공급망과 그린 이노베이션에 발을 걸쳐야한다는, 생존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소외되면 안된다는 시각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미중 전략 경쟁 속 3국이 한중일 FTA 추진, 공급망 협력 강화에 합의한 것도 회의를 개최 필요성을 반영한 것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이현태 교수는 "공급망 협력 강화와 관련해 입장이 좀 다르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하는 공급망은 2차 전지 관련 핵심 광물 등 첨단 산업을 돌리기 위한 광물이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반도체 공급망"이라며 "입장이 다르니까 오히려 협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지평 교수는 "공급망 측면에서 보면 일본은 미국이 이야기하는 '레거시 반도체', 즉 첨단장비가 아닌 것은 바이든과 협의해서 중국에 수출할 수 있다고 한 것 같다"며 "반도체 이야기를 한중일 간 대놓고 하기는 어려운데 숨은 주제로 중국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게 (중국을) 협상에 들어오게 하는 지렛대가 되고 일본도 그런 측면을 조절하며 중국을 끌어들이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라고 내다봤다.
이날 사회를 맡은 황재호 글로벌전략협력연구원장이 한중일 간 공급망 관련한 논의가 미국 입장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이현태 교수는 "한일 입장은 핵심 광물 공급망의 90% 이상 프로세싱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협력하자는 것이고 중국은 반도체 공급망을 강조하고 있는데, 정보 교환하고 상황 모니터링 정도는 괜찮다. 다만 반도체 쪽에서 강하게 공급망 (구축을) 한다고 하면 미국에서 제재가 올 수도 있어서 앞으로 조율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중일 FTA 추진에 대해 이지평 교수는 "이번 회의에서 보호주의를 억제하자고 했는데 세계무역기구(WTO)가 기능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중일 및 아세안 차원에서 디지털 협정이나 보호주의를 견제하는 합의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하나의 틀로서 한중일 FTA협상 같은 것이 발현되면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희식 국민대학교 교수는 "중국과 일본 정상이 한중일 FTA를 바라보는 관점이 전혀 다르다. 일본은 높은 수준의 FTA를 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고 중국은 소위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을 방어하는 의미로서 이야기한 것"이라며 이같은 상황 속에 FTA 교섭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뤄질지 의구심을 표했다.
한중 FTA 2차 협상 진행과 관련해서도 엇갈리는 전망이 나왔다. 이현태 교수는 "한중 FTA가 2015년 발효됐는데 한국 입장에서는 대중 수출에서 이 활용률을 고작 70% 밖에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반면 중국 측은 90% 대"라며 "FTA 재협상을 통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 활용률을 올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짚었다.
그러나 민귀식 한양대학교 교수는 한중 FTA 협상과 관련 "2차 협상을 하자고 약속했는데 지금까지 부국장급에서 세 번 만났다. 2020년 온라인으로 국장 이하 인시가 만난 것이 마지막이었다"며 "적어도 한중 간에는 FTA 효과에 대해 그다지 의미를 두고 있지 않는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번에 오랜만에 만났는데 내놓을 것이 없으니까 그래도 포장하기 좋은 거라서 (한중 FTA 2차 협상을) 언급한 것일 수 있다. 실제 진행될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며 "그동안 해왔던 것을 보면 너무 큰 기대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용기 교수는 "FTA나 세계화는 본래 경제적 효율성 중심의 접근이고 과거에는 경제적 효율성에 따른 FTA 추구가 맞다고 봤지만, 지금은 안전 또는 안보가 우선순위가 되는 상황에서 경제적 효율성을 지향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변화된 국제정세에 따라 FTA의 모습도 변경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상회의 이후 한중일 간 협력 방향에 대해 이현태 교수는 "중국의 과잉 생산과 공급은 세계적인 이슈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 중국의 제조업 생산은 31%인데 소비는 13%다. 결국 나머지는 밖으로 밀어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여기서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이 관세를 높이면 중국 경제가 힘들어진다. 그러면 중국은 아시아 국가들과 자유무역하면서 생산품 돌려야하는데, 그럴 경우 이전보다 FTA나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에 힘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중국은 제조업을 통해 만들어낸 제품을 파는 데 관심이 있고 우리는 2017년 사드 배치 이후 사실상 막힌 서비스업이 들어가는 데 관심이 있다. 여기서 협상을 해야 한다"며 "세계 무역 전쟁에서 중국의 절박함이 있기 때문에 예전보다 협상 동력이 좀 있다"고 예측했다.
이동규 연구위원은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차기 행정부의 대외 정책에 대한 동맹국들의 불안감도 나오고 있다"며 "중국은 이럴 때가 역내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할 기회라고 생각해 소통을 활발히 할 수 있다. 각국 입장차를 확인하면서 오해가 쌓이지 않고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 부분도 생길 수 있다"고 예상했다.
김용기 교수는 "국가안보 이해와 경제적 이해가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가) 균형점을 찾아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미국에 경사되고 일본과 관계가 중심이 되면서 과도하리만큼 중국과 경제협력에는 관심이 적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번 회의를 통해 한중일 FTA를 비롯해 각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서로 맞출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며 "이것이 지난 몇 년 동안 강화됐던 미국의 전략과 어떻게 상충될지, 어떻게 맞춰나갈지 진정한 시험대에 오른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희식 교수는 "한국 외교는 한미일과 한중관계로 나뉘어지는 외교 양극화 문제가 있다. 이 상황에서 정부는 한미일 관계와 한중관계가 모순적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합의점 형성이 가능하다"라고 제안했다.
최 교수는 "한미일 관계와 한중관계가 이율배반적이지 않다는 점을 확인시켜줘야 할 의무가 정부에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일본에 투자한 에너지의 절반만이라도 한중 관계를 위해 투입해야 한다. 그렇게만 해도 좋은 평가 나올 수 있다"고 주문했다.
한편 최희식 교수는 공동선언에 한반도 비핵화가 담겼으나 합의 사항으로 도출되지는 못한 것을 두고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과 중국 간 거리가 멀어졌다"며 "한미일은 외교와 안보, 첨단산업에서 협력하고 한중일은 첨단산업을 제외한 나머지 산업 및 민간교류 협력하는 식의 명백한 역할 분담이 이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귀식 교수는 "안보 문제에서 직접적 이해 당사자는 북한이다. 그런데 이를 관리 대상으로 보는 관점으로는 문제를 풀 수가 없다"며 "근본적으로 (북핵 문제는) 북미관계인데 중국에 풀어달라고 한 것이 수 십 년 째다. 중국은 그거 안되는 이야기라고 하다 보니 이번에는 논의조차 할 수 없는 구조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문재인 정부 때 2019년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향후 10년 3국 협력 비전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한중일 3국에 '플러스 알파'로 협력의 깊이와 폭을 확대한다는 것이 이때 제기됐다"며 "당시는 북한을 포함시키는 방식이었는데 이번 회의에서는 이를 아세안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면 찬성하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몽골이 (플러스 알파)에 들어올 정도라면 북한을 어떤 형태로든 (들어오게) 할 필요가 있지 않았냐"라고 지적했다.
황재호 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가 근본적으로 바뀌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기술적으로 이전보다는 (중국을) 말로 자극하는 것은 요즘 안하고 있다. 그게 2년 동안의 교훈인 것 같다"며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이익을 챙겨보려는 외교로 가려는 것 같은데 오는 7월로 예정된 한미일 정상회담과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가질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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