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신공항이 선정된 과정을 돌아보면 놀랄만한 사실과 만나게 된다. 지역 민심이 동남권 신공항 입지선정이라는 지극히 전문적인 사안에 대해 국토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국내 전문가들을 누른데 이어 세계 최고의 전문연구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파리공항공단을 이겼다는 사실이다. 파리공항공단은 이미 여러 나라 다수 공항의 입지 선정과 설계를 맡아온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다. 파리공항공단이 장기간의 조사, 연구를 통해 김해공항을 확장하여 미국, 유럽을 연계하는 효율적인 국제공항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결과를 제출하였음에도 결국 지역 민심이 이를 뒤집었다.
이 요술을 만들어낸 것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선거였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기존의 입지타당성 조사 결과는 간단히 부정되고 새로이 조사에 들어가더니, 결국에는 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이 가덕도신공항을 재론하고 국회가 신공항 입지를 선정하는 입법을 해 버렸다. 국회가 통과시킨 법에 의하면 이 사업은 예비사업타당성 평가도 면제된다. 선거와 떼법의 승리다.
과연 지역 민심과 국회가 국제공항의 입지 문제를 국내외 공항 전문가들보다 더 잘 아는 것일까? 도대체 전문가들은 왜 필요하며 입지타당성 조사는 왜 했던 것일까? 당시 여당은 주무부서의 전문 관료들이 자체 조사 결과를 낸 데 대해 겁박했고 지역에서는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비판하는 의견이 공론의 장에 오르지 못할뿐더러 그런 의견을 발설하는 것에 공포감을 느껴야 했다. 이런 것이 민주화의 결실이며 민주적 과정인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나아가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가덕도신공항 건설이 부산 시민들의 진정한 의사인가 하는 점이다. 부산 시민들이 김해공항 확장보다 가덕도에 공항을 새로 짓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근거를 어디에서 얻었을까? 공항 입지 선정이라는 고도로 전문적인 문제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어떻게 파리공항공단의 조사결과를 넘어서는 확신을 갖게 되었을까?
가덕도신공항 선정 당시, 부산시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부산시 곳곳에다 가덕도신공항만이 부산의 살 길이라는 전광판과 현수막 등을 도배하다시피 내걸었다. 여기에 지역언론이 동조하자 이 압도적인 분위기에 시민사회는 가위눌려 버렸다. 누구도 감히 이 여론몰이에 저항할 수 없게 되었고 토론조차 불가능한 닫힌 사회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감히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어진, 부산 시민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김해공항 확장과 가덕도신공항 건설의 불편한 진실을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가덕도신공항주의자들이 말하는 김해공항의 문제점부터 검토해 본다. 파리공항공단이 제안한 대로 김해공항을 확장하더라도 공항 운영상 한계가 많다고 하는 주장은 근거가 있는 것일까?
김해공항 확장안과 관련해서 거의 유일하게 지적되는 것이 김해공항의 소음 문제와 그로 인해 24시간 운영 공항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김해공항만큼 소음피해가 작은 공항은 많지 않다. 김해공항은 그린벨트 내에 위치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큰 강폭을 가진 낙동강이 공항 양편으로 흘러서 소음피해가 드물게 작은 공항이다. 이에 대해 유럽과 미국의 공항들은 대부분이 도시에 인접해 있거나 도시 시가지 내에 들어와 있다. 공항 건설 후 도시가 외연을 확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항의 소음피해가 별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24시간 운영 공항이라는 구호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실익이 거의 없는 것이다. 예컨대 일본 간사이(関西)지방의 간사이공항은 해상에 건설되어서 24시간 운영이 가능하지만 인근 도시들로부터 접근성이 나빠서 지방공항으로서의 기능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사카, 교토, 고베 등에서 모두 접근성이 나쁘니 각 도시 별로 따로 공항을 건설, 이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인천공항, 무안공항, 청주공항 등이 24시간 운영공항으로 되어 있지만 인천공항의 야간 비행기 이착륙은 전체의 5% 정도인데 대부분이 화물기용이고 무안공항은 항공수요가 없어서 개장 휴업 상황이며 청주공항도 항공 운송량이 많은 공항이 아니다.
더구나 놀라운 사실은 가덕도신공항이 개항할 경우 24시간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덕도신공항은 활주로 1본으로 건설되는데 활주로 1본으로는 24시간 운영이 불가능하다. 야간에 활주로를 청소하고 정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상에 건설된 간사이공항도 활주로를 2본으로 늘리고서야 24시간 운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김해공항이 인근의 신어산으로 인해 항공기 충돌 위험이 있고 대형 여객기 이착륙이 어렵다고 하는 주장도, 입지 타당성 조사를 맡은 파리공항공단이 V자형의 활주로를 추가 건설하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완전히 해소되었다. 만약 김해공항을 국내선으로만 사용하여 새로운 활주로를 건설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항공기 안전성 문제는 그대로 남게 된다.
김해공항은 기존 활주로 2본과 신규 활주로 1본 등 3본의 활주로를 가지게 되는데 운송량이 세계 10위권 내에 들어가는 공항 중에 활주로가 2본이거나 3본인 공항도 적지 않다. 문제는 계류장과 여객청사를 확충하는 것인데 김해공항은 그린벨트 안에 위치해 있어서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하다. 그에 비해 가덕도신공항은 1차적으로 활주로 1본으로 계획되어 있고 장기적으로 2본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공항은 철도 역사나 고속버스터미널처럼 지역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곳에 입지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이용률이 높아져서 지역의 관문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항공교통도 고속도로, 고속철도 등과 경쟁하고 있어서 공항을 접근성이 나쁜 곳에 건설하면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것이다. 김해공항은 접근성이 매우 양호해서 부산 시내는 물론이고 해운대에서도 웬만하면 40~50분 이내 도착할 수 있다. 게다가 김해공항을 관통하는 전철망이 이미 부설되어 있고 근간에 추가로 개통할 예정인데, 이 전철망들은 부산뿐 아니라 울산, 창원, 김해 등으로 편리하게 연결된다.
이에 반해 부산에서 가덕도신공항에 접근하려면 최소 1시간 반 혹은 2시간 가까이 소요될 것이다. 택시를 이용할 경우 운임이 김해공항보다 3배 이상 든다. 특히 출퇴근 시간의 혼잡은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데 이 시간에는 항공 일정에 맞게 공항에 도착하는 것이 난망할 전망이다. 현재 강서구의 남부 일대는 도시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 교통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연계 전철망을 건설하면 된다고 할지 모르지만 과연 이 전철의 수요가 얼마나 될까? 국비, 지방비를 끌어다 무리를 해서 부설한다고 해도 전철 운행에 따른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참고로 부산김해경전철의 적자로 인해 김해시는 매년 500억 원, 부산시는 300억원을 보전하고 있다.
김해공항은 부산뿐 아니라 울산, 대구, 창원 등 영남 전역에서 접근이 편리하지만 가덕도신공항은 영남지역에서도 대단히 외지고 접근성이 낮은 곳이다. 이런 곳에 공항이 위치하면 지역 주민과 기업들에게 불편할뿐더러 해외 관광객이나 바이어들에게도 불편해서 공항 이용률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가덕도신공항에서 국내선 여객기를 타야 한다면 부산-제주 노선을 제외한 모든 노선이 폐지될 것이다. 부산-서울 노선은 근래에 고속전철과의 경쟁에서 경쟁력을 회복하여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탑승 공항이 가덕도로 옮겨갈 경우 운행이 중단될 것이 분명하다. 서울 도심과 부산 도심을 관통하는 고속전철을 두고, 가덕도까지 가서 여객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려서 서울 시내로 들어가려는 승객이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히 나온다.
그렇다면 국내선 운항 기능은 김해공항에 두고 국제선 항공기만 가덕도 공항에서 이착륙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두 공항의 연결성과 환승 기능은 크게 저하되고 공항의 운영 효율도 반감되어 두 공항 모두 적자 공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스스로 애물단지를 만들어서 국제도시의 관문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다.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가덕도신공항이 부산신항과 연계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주장은 항공물류와 해운물류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다. 항공물류와 해운물류는 서로 다른 종류의 화물을 취급하기 때문에 연계되는 부분이 매우 작다. 그것은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의 물류 연계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김해공항에서 부산신항까지의 거리가 대단히 가까워서 그것 때문에 신공항을 새로 건설할 이유는 전혀 없다.
가덕도신공항 건설의 중대한 문제 중의 하나는 이 공항이 해일로부터 안전한 내해가 아니라 열린 바다에 건설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국내외를 막론하고 해상에 건설된 공항은 모두 섬 등으로 보호되는 얕은 내해 혹은 갯벌에 건설되었다. 이에 대해 가덕도신공항은 해일 피해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심지어 태풍의 진로 상에 위치한다.
이 공항의 지반을 해수면으로부터 30~40m 높이로 쌓으면 해일 피해를 상당 정도 막을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당연히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뿐더러 그 많은 토사를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환경파괴가 일어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가덕도신공항 건설 예정지 중 일부의 수심은 100m에 이른다. 그간 공항을 이런 심해 상에 건설한 사례가 없었거니와 건설 및 환경 비용이 막대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라 할 것이다. 더하여 공항 지반의 부등침하도 지속적인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이 공항 건설에 대한 경제성 평가가 극히 낮게 산출된 것은 정치적인 협잡이나 거래의 결과가 아닌 것이다.
국토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국내 전문가들이나 파리공항공단의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제시한 대안을 무시하고 결국 지역 민심대로 가덕도신공항이 결정되었다. 궁극적으로는 지역 민심을 만들어낸 지역 카르텔의 승리다. 하지만 이들 지역 카르텔은 이 분야에 거의 전문성이 없는 집단들이다. 이들은 교통과 항공운송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 수준에서 맹목적으로 지역주의를 선동하고 지역언론과 정치권이 편승하여 일방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정상적인 토론을 막았다. 지역이 위기감과 애향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민주적 논의 과정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역 유지들과 기관들, 정치인들, 토건세력, 지역언론이 몰아간 여론에 따라 건설된 지방공항들이 한결같이 실패한 것을 보면 가덕도신공항의 미래가 점쳐진다.
광주공항과 목포공항을 각기 확충 운영하면 될 것을 굳이 두 도시의 가운데다가 건설한 무안공항은 이용 승객 부족으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황이다. 그 결과 국제도시로 발돋움해야 할 광주의 관문이 막혀 버렸다. 지역주의 선동과 포퓰리즘이 광주와 호남의 발등을 찍은 것이다. 당연히 향후 광주공항과 목포 공항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게 광주와 호남의 장래를 위해 불가결할 것이다.
속초, 강릉 사이 양양공항도 마찬가지이다. 현란한 장미빛 선동으로 무리하게 추진한 지역숙원사업이 영동지방의 하늘 길을 닫아버린 경우이다. 지금이라도 양양공항을 군용공항으로 전환하고 두 도시에 위치한 기존 공항의 운영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두 도시의 공항이 다시 기지개를 켤 것이고 영동지역은 국제적 관광지로서 새로이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 도시를 보더라도 20~30만 이상의 도시들은 거의 예외 없이 공항을 각기 보유, 운영하고 있다. 영국의 맨체스터와 리버풀은 서울과 인천 거리만큼 가까운데도 그러할뿐더러 글래스고와 에든버러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인근 도시라 하더라도 각기 자기 공항을 갖는 것이 훨씬 편리하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고속버스터미널이나 철도 역사를 두 도시의 가운데에 설치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그럼에도 지역발전이라는 기치 아래 두세 도시의 가운데에 지역 관문공항을 만들면 규모의 경제가 커진다는 미신이 널리 퍼져 있다. 교통과 항공운송의 기본 원리를 배반하는 구상은 물론 성공할 수 없다.
여론 정치라 하지만 이런 전문적인 사안을 국내외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따르지 않고 정치권, 토건족 등 일부 세력의 선동에 따라 포퓰리즘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지역뿐 아니라 국가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 민주화의 대가라고도 하겠지만 민주화의 가장 어두운 측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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