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왕은 한자의 뜻과 발음을 이용해 우리말을 표기하는 법칙을 창안했습니다."
김영회 동국대 세계불교학 연구소 향가 만엽집 연구실장이 지난 27일 국립김해박물관 대강당 가야문화진흥원(이사장 도명스님) 학술대회에서 이같이 피력했다.
김 실장은 "김해 가야 <구지가(龜旨歌)>는 고조선의 우리말 표기법과 향가(鄕歌, 曲·노래)의 제작법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었다"며 "한자의 뜻글자 뿐 만 아니라 소리글자도 사용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지가>는 민족 사상 최초로 한자를 이용해 우리말의 소리로 표기하고 있었다. 즉 표기법이 일보전진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다.
김 실장은 "구지가는 문장의 어미가 소리글자로 표기되어 있다"면서 "첫 구절 '龜何龜何, 首其现也, 若不现也, 燔灼而吃也'를 고조선 표기법으로 풀이하면 '갈라진 게 무엇인가. 갈라진 게 무엇인가. 임금이 나타나야. 만약에 안 나타나면야. 제사 고기를 불에 태워 연기를 마시게 하리야"라고 해석했다.
김 실장은 "고조선은 고대 우리 민족어 표기법이 향가 제작법을 확립해 놓고 있다"고 하면서 "이후 이것은 고구려~가야~백제~신라~고려로 순차적으로 승계됐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고대 한반도 정치 지도자들이 향가 제작법과 가야 표기법을 가지고 바다를 건넜다"며 "그들은 고대 한반도인의 언어 정체성과 문화 정체성도 가지고 갔다. 도거 시기는 서기(西紀·AD·기원후) 42년~399년 사이인 듯 하다"고 밝혔다.
일본의 <만엽집> <고사기> <일본서기>에 수록된 최초의 향가들이 그 증거이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향가는 이후 일본 민족을 형성하고 열도에 고대국가를 건국하는 인문학적 기능을 수행했다"면서 "그들은 일본 열도를 개척하면서 겪은 일들을 대량의 향가로 기록해 놓았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도거인들은 최대 700여 년 동안(서기 42~759) 일본 땅에서 향가 활동을 지속했다"며 "향가 제작법과 가야 표기법으로 만들어진 가장 늦은 작품은 759년에 만들어진 만엽집 4516번가이다"며 "우리 민족은 최소 1397년간 고조선 멸망 기원전(BC) 108~고려 일연스님 업적 1289년간의 향가 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한반도의 문화 정체성과 언어 정체성을 가졌던 고대 한반도인들이 나라도 글자도 없던 일본 열도에 건너가 남겨 놓은 <만엽집> <고사기> <일본서기> 속의 향가 4751곡은 앞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줄 것인가에 대해 의미가 매우 깊다"고 말했다.
김영회 연구실장은 "한-일 양국의 연구자들이 이들 작품의 정체 추적과 연고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면서 "가야 김수로왕이 만든 뜻발의 법칙 등 표기법과 향가 제작접이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 문제를 해결해 줄 도구가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향가(鄕歌)는 신라 향가 14곡과 고려 향가 12곡은 서기체를 기반으로 해 기록되어 있다. 또한 향가의 문장은 노랫말·청언·보언으로 기능하는 문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른바 고조선 <공무도하가> 고구려 <황조가> 가야의 <구지가> 등이다.
한편 사단법인 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스님은 "내년도 제10회 가야문화진흥 학술대회는 부산 범어사(방장 정여스님) 성보박물관에서 개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