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출산을 해결하고자 하는 각계의 노력과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지만 뾰족한 답이 없는 상황이다. 줄어든 인구는 점점 더 수도권으로 집중되어 수도권 일극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그동안 국가균형발전 정책, 지방에 대한 투자나 기업이나 기관 유치 등으로 지역 간 격차 문제에 대응해 왔지만, 이것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절대적 인구가 증가했기에 가능했다.
비수도권은 초저출산에 의한 인구의 자연적 감소에 수도권으로의 유출이라는 사회적 감소까지 가속화되면서 문제가 심화하였다. 인구의 과도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비수도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저출산 문제의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비수도권은 특정 제조업 유치를 통한 산업 발전 전략이 주를 이루었는데, 성공한 도시는 '산업도시'로 그렇지 못한 지역은 '낙후된 농촌'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수도권에서의 거리에 따라, 지역의 주력 산업 기반이 제조업인지, 농업이나 다른 산업인지, 또는 행정중심지인지 등에 따라 인구감소의 양상이나 지역 산업 경로가 매우 다양하다.
그동안 비수도권은 수도권이 아닌 모든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루어진 측면이 있는데, 각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로컬(local)의 장소 기반 관점이 매우 중요하다.
지역 발전 경로를 추동하는 세가지 요소
최근 지역 발전과 관련해서 '지역 산업 경로 개발(regional industrial path development)' 개념이 주목받고 있는데 주로 북유럽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지역의 경제 및 산업 구조변화를 위한 원동력으로 '혁신' 그 자체를 강조하던 것에서 '새로운 산업 경로를 어떻게 발굴하고 만들어 갈 것인가'로 이동한 것이다.
특히 스웨덴과 핀란드의 학자 그릴리치(Grillitsch)와 소타라우타(Sotarauta)는 2020년 발표한 논문에서 지역 발전 경로를 추동하는 세 가지 변화의 요소를 혁신적 기업가정신, 제도적 기업가정신, 장소 기반 리더십으로 제시하였다.
혁신적 기업가정신(innovative entrepreneurship)은 새로운 산업 전문화와 장소 변화를 촉발하는 획기적 혁신의 원천을 의미하고, 제도적 기업가정신(institutional entrepreneurship)은 새로운 성장 경로를 위한 제도적 변화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기회를 탐색하는 것을 뜻한다.
전자가 주로 이윤추구 기업이나 기업가 차원의 혁신 활동을 의미하는 반면, 후자는 이윤추구 활동 외에 비기업 기관이나 행위자들의 시스템 변환을 위한 활동을 의미한다. 제도적 기업가정신의 대표적 예는 대만의 반도체산업 발전을 위해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시스템을 들여와 지역에 맞게 조정한 것으로, 이는 성공적인 창업 환경을 위한 필요조건이 되었다.
장소 기반 리더십의 중요성
장소 기반 리더십(place-based leadership)은 지역의 새로운 경로 창출과 관련된 여러 산업과 직업의 다양한 행위자들을 조정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이질적 행위자들과 함께 지역이 나아갈 방향을 탐색하고 제시하며 비전을 공유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인데, 더군다나 장소 기반 리더들이 다른 행위자들을 마음대로 지시할 만큼 강한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기존의 지역 정책에서 잘못 활용된 영웅적 리더십의 폐해를 극복하고, 장소 기반 리더는 각 행위자들의 개별 목표가 지역에 도움이 되도록 역량, 권한 및 자원을 모아 특정 장소를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유의할 점은 이것이 지방정부의 일반적 서비스 전달이나 행정적 기능이 아니고, 대상이 되는 장소나 지역을 위한 집합적 행동을 동원하는 역할이라는 점이다. 여러 이해당사자는 우선적으로 자신들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의 발전을 위한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장소 기반 리더는 의사결정권자, 유무형 자원 및 전문가들을 동원해야 하고 따라서 인적 네트워크와도 밀접히 관련된다. 여러 조직의 경계와 전문가집단의 문화를 뛰어넘는 대화 노력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 그룹의 다차원적 참여를 보장하며, 이들이 지역 발전의 과정과 그 결과에 이바지함과 동시에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각 지역의 발전 경로를 찾기 위한 전략에서 개별 지역의 특수성이 중요한 만큼 선례가 없는 비정형화된 정책을 지향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해야 성공 확률이 높다. 거래적(transactional) 리더십이 특정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전환적(transformational) 리더십은 특정 조직을 새로운 단계로 전환하는 것으로 목표로 하는데, 장소 기반 리더십은 전환적 리더십이어야 한다.
이처럼 장소 기반 리더십은 장기적이고 구조적 변환을 바탕에 두고 작동해야 하지만 실상은 단기적이고 거래적 리더십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제한된 시간 내에 공공 예산 투입의 가시적 정책 효과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구절벽, 지방소멸, 도시쇠퇴 등 최근의 화두에 대한 대응 방안 마련이 시급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즉각적이고 단기적인 해결 방안은 없다. 어떻게 하면 각 지역의 현황과 현실에 맞는 지역 발전 경로를 지역 스스로 찾을 수 있을지, 이를 위한 장소 기반 리더십이 전환적 리더십으로서 발휘될 수 있을지, 또한 이를 지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 저자소개
구양미 교수는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클러스터와 산업입지, 창업생태계, 인구고령화와 산업도시 쇠퇴 문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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