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학교가 글로컬대학 육성사업에 참여하면서 그 일환으로 2025학년도부터 환경생명자원대학(환생대학)을 폐지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익산지역의 반발과 함께 익산캠퍼스도 재조명되고 있다.
전북대 환생대학이 둥지를 틀고 있는 전북자치도 익산시 마동 캠퍼스는 꽤 오랜 역사로 익산시민들과 함께 해 왔기 때문에 전북대의 환생대 폐지방침은 주민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다.
특히 익산캠퍼스의 원래 주인인 ‘이리농림학교(이리농림)’는 원도연 원광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익산의 도시형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이었고 한때는 '이리'라는 도시의 심장과도 같은 곳일 뿐만 아니라 한국 농업의 메카와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리농림은 이리역이 개통된 1912년 이후 꼭 10년만인 1922년 문을 연다.
개교 당시부터 농업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관립학교를 표방해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10대 수재들이 각 도청에서 선발시험을 치른 뒤 합격자들만 호남선 열차를 타고 이리(익산)로 모여들었다.
학교 시설 또한 당시에는 첨단에 가까운 강의실과 실습실, 실험실은 물론 기숙사와 생도 식당, 구판장(지금의 편의점), 체육관 등을 갖췄다.
특히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지어진 축산과 교사(강의실과 실습실로 활용됐다)는 2005년 6월 18일 등록문화재 제 178호로 지정됐으며 1963년에 지어진 제2본관도 문화제 제 758호로 등록됐다.
1923년생으로 1938년에 이리농림 수의축산과에 입학했던 고(故)김성호 선생은 생전 인터뷰에서 “조선 팔도는 물론 일본 내지에서도 이리농림의 인기가 높아 입학시험을 치르는데 학교 교실로도 모자라 옆에 있는 일출소학교(지금의 이리초등학교)까지 빌려 시험을 치렀다”고 회고했다.
졸업생들 가운데는 조선은 물론 일본에서도 크게 활약했던 인물들이 많은데 ‘미원’으로 유명한 대상그룹의 창업자인 고 임대홍 회장이 이 학교를 졸업한 대표적인 인물이며 천재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한하운 시인도 멀리 함경도에서 시험을 치러 이곳으로 유학을 온 엘리트였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경우 이 학교에 응시했다가 낙방해 대구사범에 진학한 것은 동문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일화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사상 주입과 전 세계를 상대로 식민지 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자랑할 때마다 이리농림을 앞세워 홍보의 도구로 활용했다.
이 때문에 조선총독부가 전국을 돌면서 전라도를 찾을 때는 이 학교를 방문하는 것이 다반사였고 새로 부임하는 전라북도지사는 이 학교를 필수로 방문했다.
이리농림 졸업생들은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인 농업기술을 익혀서 식량증산과 산림녹화, 축산개량의 선구자로 활동했다.
이리농림은 광복 전까지 졸업생 수가 한국인 1050명, 일본인 999명을 배출했다. 이들은 광복 이후 일본과의 국교가 단절된 동안 만나지 못했다가 1970년초부터 간헐적으로 만남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이리농림은 1952년 3년제 이리농림고등학교로 개편된 뒤 1991년 이리농공전문대학, 1998 익산대학으로 변신을 꾀하다 현재는 전북대학교 특성화캠퍼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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