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에서 전북 전주시을 선거구에 출마해 낙선한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비례)이 정치 인생의 길을 멈춘다.
정운천 의원은 16일 <프레시안> 전북취재본부와와 전화통화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선거유세기간의 약속을 지키려 한다"며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정치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을 다 했지만 도저히 (이길) 방법이 없었다. 이제 (정치를) 그만 하려 한다"고 정계은퇴 입장을 밝혔다.
지역주의 장벽을 깨기 위해 17년 동안 끊임없이 도전하고 부딪혀온 길을 이제 멈출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정운천 의원의 정치역정(歷程)은 2007년 11월 한나라당 '경제살리기 특위' 위원으로 활동한 것을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
이후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에 6개월 동안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거쳐 2010년 한나라당 최고위원, 2012년 새누리당 전북도당 위원장 등 보수세력의 기반이 극히 취약한 전북에서 외연 확대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저돌적인 추진력에 쌍발통의 구호 등 정치적 감각이 탁월한 정운천 의원은 정치 입문 10년 만인 2017년 제20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뒤로 젖히고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돼 전국적인 화제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21대 국회에서는 미래통합당 비례대표로 활약하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 등 현안을 기적처럼 실현하는 등 "현안이 있는 곳에 정운천이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정운천 의원이 보수정당의 험지를 넘어 사지(死地)로 통하는 전북을 떠나지 않고 계속 부딪히고 깨지는 안타까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은 국내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소신과 철학에 따른 것이다.
이번 총선 유세 과정에서도 "여권의 통로 '쌍발통'이 굴러야 한다"며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하는 '아묻따 지지'를 멈춰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했다.
특히 유세 첫날인 3월 28일에 삭발에 죄인을 호송하는 수레인 '함거'에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전주시민들의 아픔과 분노를 헤아리지 못했다"며 용서를 빌었다.
유세 막판에는 함거 앞에서 '오직 전북'이라는 네 글자의 혈서를 쓰며 진정성 있게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전북과 전주 민심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법정 선거운동 직전에 각종 여론조사에서 20~25%의 박스권 지지를 이어온 정운천 의원은 삭발과 함거 유세, 혈서 진정성에도 20% 지지율에 갇히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활화산의 마그마처럼 분출하는 '정권심판론'이 총선판의 최대상수로 자리하며 끝까지 전주 민심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정운천 의원은 이에 대해 내심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투표 당일까지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한 '아묻따 지지'는 계속됐고 정 의원은 전주을 선거구에서 2만3000표를 얻었지만 고개를 떨궈야 했다. 이번 총선의 득표력은 8년 전인 2016년 20대 총선에서 그가 얻었던 4만900표의 절반 수준이어서 지지자들도 크게 낙담했다는 후문이다.
정운천 의원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지역민들에게 호소했고 실제로 총선에서 떨어지면 정계은퇴를 약속한 바 있다"며 "이제 약속을 지키려 한다"고 말했다.
진정한 용자(勇者)는 들어갈 자리와 누울 자리, 떠날 자리를 잘 본다는 말처럼 지금은 떠날 때라는 주장이다.
정운천 의원은 "더 이상 연연해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막판까지 최선을 다한 만큼 30~40%의 지지율은 나올 줄 알았는데 '정권심판' 여론이 너무 거세 어떻게 해볼 수 없었다"고 되돌아봤다.
그는 "전북특별자치도 출범 등 혁명적 기적을 만드는데 일조를 다해왔다"며 "그럼에도 전주 유권자들은 '미래 생각'보다 '과거 심판'으로 돌아가니 백약을 써도 힘든 싸움일 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
망국적인 지역구도 극복을 위해 할 일은 다 했다고 말하는 정운천 의원은 "지역민들이 정치인의 출구전략(은퇴)을 잘 만들어주신 것 같다"며 "다만 제가 뿌린 지역주의 극복의 씨앗이 죽지 않고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작은 소망을 펼쳤다.
17년 만에 인생을 걸고 도전했던 '지역할거주의 극복' 과제는 이제 정운천 의원의 곁에서 멀어질 전망이다. 다만 제2의 정운천과 제3의 정운천이 전북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중앙당과 도당이 지역인재 육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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