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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된 정운천의 '지역주의 극복 신념'…함거유세·혈서 다짐에도 3선 고지 '무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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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된 정운천의 '지역주의 극복 신념'…함거유세·혈서 다짐에도 3선 고지 '무릎'

죄수를 호송하는 수레인 '함거'에 스스로 가두고 혈서까지 썼던 정운천 국민의힘 후보가 22대 총선 전북 전주시을 선거구에서 고배를 마셨다.

22대 총선 투표와 관련해 방송3사의 출구조사와 개표 작업이 진행되면서 전주을을 포함한 전북 10개 선거구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 전원이 압승한 것으로 분석됐다.

정운천 국민의힘 후보는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후보, 강성희 진보당 후보 등과 끝까지 선전했지만 재선에서 3선 고지에 진입하기 어렵게 됐다.

자신은 전주시민들의 아픔과 분노를 헤아리지 못한 죄인이라며 법정선거일 13일 동안 함거에 갇혀 진정성 있게 다가섰지만 '정권심판론'의 거대한 민심을 뒤엎기는 역부족이었다는 분석이다. 이로써 정운천 후보의 '마지막 소임'은 실행이 쉽지 않게 됐다.

▲4·10 총선에 전북 전주시을 선거구로 출마한 국민의힘 정운천 후보가 4일 오전 전북특별자치도청 앞에서 혈서를 쓴 뒤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연합뉴스

21대 국회에서 호남 유일의 여권 통로 역할을 해온 정운천 후보는 전주시와 전북 발전을 위해 전북 10석 중 국민의힘에 1석을 밀어달라며 '마지막'이란 단어를 쓰며 호소해 왔다.

정운천 후보는 지난 3월 28일 오전 전북자치도청앞에서 선대위 출정식을 갖고 결연한 의지를 삭발로 보여줬다. 곧바로 굵은 나무로 짠 함거에 오른 그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전주시민의 분노를 헤아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중앙의 소통창구로 윤석열 정부와 담판짓겠다. 꼭 살려달라"고 눈물을 훔쳤다.

주변의 지지자들이 눈물바다가 된 첫 번째 장면이었다. 하루 11시간씩 좁은 공간에서 처음엔 묵언으로, 이후엔 읍소를 통해 전주를 위해 마지막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애원했다.

60대의 한 지지자는 "너무 오랫동안 앉은 자세에서 추위와 비에 노출되는 고통이 심했을 터이지만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함거 유세' 사흘째인 3월 30일에는 정운천 후보의 아내가 "함거에 오른 무거운 책임을 함께 지겠다"며 유권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내는 '저보다 전주를 더 사랑하는 정운천을 도와달라'는 큼지막한 팻말을 목에 걸고 있었다.

정운천을 모르는 전주시민들 사이에서도 안타깝다는 말들이 나왔다. 출근길 인사와 거점 유세는 그렇게 사즉생의 각오로 계속됐다.

정운천 후보의 진정성 있는 호소에 전주 민심은 흔들렸지만 판을 뒤엎을 정도로 요동치지 않았다. 결국 그는 함거 유세 이후 또 한 번의 결단을 내리게 된다.

▲4·10 총선에 전북 전주시을 선거구로 출마한 국민의힘 정운천 후보가 4일 오전 전북특별자치도청 앞에서 혈서를 쓴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죄인의 수레에 들어간지 7일째 되는 날인 이달 4일, 정운천 후보는 흰 옷을 입고 무릎을 꿇은 채 '오직 전북'이라는 네 글자의 혈서를 썼다. 주변의 지지자들은 "어쩌나…"라는 말과 발을 동동 구르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정운천 후보는 사전투표 첫날인 5일 "10명 중 9명이 지구의 종말을 이야기할지라도 누군가 1명은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며 더불어민주당 텃밭에 국민의힘 1석의 식수(植樹)를 간절히 호소했다.

전북특별자치도의 도약을 위해서는 '희망의 사과나무'를 심을 쌍발통이 꼭 필요하다며 힘을 모아달라고 하소연했다. 정운천을 살려 깜짝 놀랄 '혁명'을 만들어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전투표 둘째 날인 6일에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딸이 함거 유세에 함께했다. 아들도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정운천 후보는 본 투표 이틀 전인 8일 전북자치도의회 기자회견에서 "10여년을 지켜온 정운천마저 사라지면 정부·여당은 전북을 포기하고 전북은 민주당 1당 독주의 시대로 후퇴하게 된다"며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아묻따 몰표'의 피해는 결국 도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호소했다.

본 투표 하루 전인 9일 정운천 후보는 자신의 SNS에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피어'라는 시를 올려 주변인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결국 풀밭이 온통/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러면서 "나 하나 정운천을 찍으면 전북이 달라진다"며 "기적을 만들어 달라"는 글을 남겼다.

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그야말로 후보가 할 수 있는 모든 선거운동을 다 했다"며 "그래도 민심이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더 이상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

10일 오후 방송3사의 출구조사와 연이은 개표결과가 나오면서 정운천 후보는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토록 정성과 열성을 들였지만 그에게 '마지막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 텃밭에서 국민의힘 출신의 호남 내 유일한 여권 통로는 이변이 없는 한 21대 국회 임기와 함께 끊길 우려를 낳고 있다.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는 한 정치인의 신념은 이대로 무너져 내려야 하는가? 개표 과정에서 제기되는 안타까운 의문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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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홍

전북취재본부 박기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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