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룡대전'. 인천 계양을에서 맞붙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국민의힘 후보로 나선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장관의 빅매치를 표현한 말이다. 하지만 '대전'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도, 계양구민들은 이번 총선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대결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정책현안에 대한 호불호가 아닌 이 대결에서 누구에게 '승기'를 쥐어주느냐에 몰입하며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기도 했다. 선거 전반을 관통하는 '윤석열 vs 이재명'의 대결구도가 이 대표의 지역구인 계양을에서 더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은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지난달 28일과 지난 1일 인천 계양구를 찾아 시민들의 민심을 청취했다. 이재명 대표와 원희룡 전 장관이라는 거물급 정치인의 등판에 지역구민들 사이에는 "대통령 후보한 사람도 오고 국토부 장관한 사람도 오면 지역이 바뀌어도 바뀌겠지"하는 개발에 대한 기대와, "계양구 현안을 챙기는 정치보다는 자신의 몸집을 불리는 정치를 할 것 같다"는 우려가 공존했다. 대다수 시민들은 이번 선거를 '결투'처럼 인식하고 있었다. 정치인들의 증오섞인 언어가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에 녹아있었다. 이들은 지지하는 후보의 정책적 차별성보다는 상대 진영을 '심판'해야 하는 근거를 제시했다.
인천 계양을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으로 불리는 선거구다. 특히 이 지역에서만 5선을 했던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민주당의 지역으로 자리 잡은 만큼, 국민의힘 입장에서 계양구는 쉽게 나서기 힘든 '험지'다. 여권의 잠룡으로 불리는 원 전 장관이 "돌덩이 하나가 자기만 살려고 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며 이 대표의 지역구인 계양을에 '자객공천'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대표는 민주당 지지세라는 기반 위에 현역의원이라는 프리미엄이 더해져 유리한 위치에서 치르는 선거이긴 하나 여당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원 전 장관이 상대 후보로 오면서 여론조사 오차범위 내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재명의 '거친' 심판론을 답습하는 시민들…"윤석열 정권에 치가 떨려요"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달 28일, 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기도 한 이 대표는 첫 일정으로 계양역에서 1시간 20여분 동안 출근인사를 진행했다. 오전 7시 5분쯤 계양역에 도착한 이 대표는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시민들과 악수를 나눴다. 이 대표는 계양역 개찰구 앞에 자리를 잡고 '계양이 대한민국 입니다'라는 피켓을 목에 건 채로 민주당 기호 '1번'을 상징하는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며 지지를 호소했다. 바쁜 출근길임에도 시민들은 이 대표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강조하며 '정권 심판론'을 선거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회초리로도 안 되면 몽둥이로 때려서라도"(지난달 11일 충남 홍성군 유세), "정신나간 집단들, 반역의 집단들을 반드시 심판해 주시길 바란다"(지난달 21일 광주 북구 유세) 등 점점 더 거센 표현으로 심판론을 강조하고 있다. 이날도 이 대표는 "심판의 날"이라며 "국민들께서 맡긴 권력과 예산을 사적 이익을 위해서, 고속도로 노선을 바꾸기 위해 사용하는 부패 집단, 국민을 업신여기는 반민주적 집단에게 여러분이 바로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거친 언어처럼 이 대표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실정을 거칠게 표현했다. 계양역에서 이 대표와 사진을 찍은 31세 박모 씨는 "이번 정권이 싸지른 X이 너무 많다"며 "와이프 죄를 덮어주고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는 말을 하는 사람을 쳐내고 특히 김건희 주가조작을 생각하면 이 정권에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계산동에 사는 31세 여모 씨와 33세 안모 씨도 "윤석열이 너무 싫다"며 "국정운영을 이렇게 못하는 것도 신기하다. 민생이 어렵고 자영업자 삶이 어렵다. 진짜 너무 싫다"고 윤석열 대통령을 강하게 부정평가했다.
이번 선거는 '어차피 윤석열과 이재명의 대결'로 인식하고 있는 시민들도 다수였다. 귤현동에 사는 54세 김형수 씨는 "국민의힘에서 아무리 좋은 후보를 내더라도 윤 대통령과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결국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싸움이다. 한동훈 대표도 뛰어나지만 윤 대통령 그늘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자신을 '수박'이라는 멸칭으로 자조적으로 소개하며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 공천에서 과격하게 행동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대원칙은 윤석열 대통령 심판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계양을을 '표밭'으로만 본다는 비판적 의견도 나왔다. 중량감 있는 두 정치인이 지역 현안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보겠냐는 우려 섞인 시선도 있었다. 계산동에 살고있는 58세 김모 씨는 "이재명과 윤석열의 대결이고 여기 사는 사람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며 "왜 계양에 와서 이러는지 모르겠다. 실제로는 우리 지역에 큰 관심도 없으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표로 인식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계양구 현안을 챙기는 정치보다는 자신의 몸집을 불리는 정치를 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박촌동에 사는 40살 최희정 씨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관심이 있는 계양구 현안은 소각장 문제다. 신도시 정책이 활성화되려면 소각장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이 문제가 몇 년째 지지부진하고 있다. 송영길 전 의원도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임학동에서 소각장 부지 근처로 이사까지 왔으나 해결이 안됐다"며 "이 대표나 원 전 장관이 된다고 해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해줄까. 사실 기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재명 종북세력 우두머리" 색깔론 물드는 국민의힘 지지자들
그 맞은편의 정서는 어떨까. 지난 1일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은 임학역 앞에서 1시간여 동안 퇴근 인사를 진행했다. 원 전 장관은 역 근처에서 퇴근하는 시민들에게 인사를 나누며 지지를 호소했다. '국토교통부 장관 경험으로 원희룡은 진짜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자켓을 입은 원 전 장관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시민들의 손을 잡으며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원 전 장관의 옆에는 원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전직 축구선수 이천수 씨가 동행했다. 원 장관은 이날 유세에서 "일 안 해도 뽑아주고 이러니까 정치가 문제가 있고 정치인들이 주민을 무시한다"며 "이제 바뀔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원 전 장관은 이 대표의 '저격수'로 국민의힘으로부터 단수공천을 받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는 선거가 의미가 있나. 총선에서 이겨서 우리 당이 가진 철학과 공약을 그 지역에서 실천하고 지역민의 삶을 개선해야 하지 않나"라고 공천 배경을 밝히며 '자객공천' 비판을 감내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승패를 떠나, 원 전 장관이 민주당의 '텃밭' 에서 이 대표를 상대로 얼마나 표심을 얻는지 역시도 관심사다. 원 전 장관이 유의미한 득표를 한다면 차기 잠룡으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겨냥한 '이조심판'론을 앞세워 범죄 세력 척결 프레임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의 '정권심판론'에 대한 맞불 성격으로 여권 후보들의 도덕성 문제를 겨냥하며 공세 수위를 높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통진당 아류 종북세력들"(한동훈 위원장,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 유세), '범죄자들과 종북세력'(25일 국민의힘 현수막) 등 철지난 색깔론을 꺼내들었다.
원 전 장관 지지자들은 이같은 국민의힘의 언어를 닮아가고 있었다. '원희룡이 돼야 하는 이유'보다 '이재명이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주로 설파했다. 임학동에 거주하는 65세 김모 씨는 "이재명이 의정활동을 방탄 위주로 하고 있는데 이재명이 올 곳은 계양이 아니라 감방"이라며 "이재명은 종북세력의 우두머리"라고 주장했다. 임학동에 거주하는 49세 이모 씨도 "이재명한테는 옛날부터 개인적인 루머부터 막말 스캔들이 따라다니는 범죄자"라며 "이재명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빨갱이"라고 격하게 비난했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에 대해 이들은 "물가가 오르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인데 그것을 정부 탓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감쌌다. 임학동에 거주하는 64세 박모 씨는 "정부가 일을 하려고 하는데도 국회에서 민주당이 정부의 발목을 잡으니까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라며 "물론 모든 것을 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은 본인들이 의석을 다수 차지해서 이렇다 할 것도 하지 않으면서 정부 탓만 하고 있는 게 앞뒤가 안 맞는다"고 했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대해서도 "그렇게 추진 안 하면 그 카르텔을 깰 수가 없다. 국민이 희생하고 감수해야 정부가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다만 이 가운데도 '자객공천'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계산동에 사는 65세 허모 씨는 "계양을에서 4선 도전을 했던 윤내과 원장(윤형선)이 있었는데 지역을 모르는 원희룡를 갑자기 꽂아서 불만이 많았다"며 "지역민들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꽂는게 리더십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래도 이재명을 뽑을 순 없으니까 원희룡을 뽑는데, 장관을 했다고 지역 현안을 다 아는 건 아니"라고 탐탁치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재명 대표는 같은날 계양우체국 근처에서 저녁 유세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배우 이원종 씨도 함께했다. 이 대표는 "정부가 문화예술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며 "이 정부 역시도 엄청나게 많이 탄압을 진행하는 것 같다. 언론계부터 패널들 다 갈아치우고 있다. 이제는 문화 예술영역에서도 본격적인 탄압이 시작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 나라는 국민의 나라라며 우리가 힘을 다 합쳐서 우리의 것, 우리의 나라, 우리의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빠찬스'논란에 "희망 주지는 못할 망정 희망 뺏고있다…국회의원들 부자라 배부른 싸움 하고 있다"
임학역 근방에 있는 계양산 전통시장을 찾았다. 퇴근하는 계양구민들이 저녁 찬거리를 사기 위해 북적였다. 치솟은 물가에 일부 시민들은 집었던 오이의 가격을 확인하고 내려놓기도 했다. 오이 2개에 3000원, 사과 3개에 5000원이었다. 계양산 전통시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너무 부자라 우리 삶을 모르고 배부른 싸움하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전 정권에 대해 비판만 가득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아빠찬스'와 같은 부동산 논란에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할 망정 희망을 뺏지는 말아야지"라고 혀를 찼다.
계양산 전통시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두 진영의 싸움이 극에 달하면서 정작 서민의 삶은 소외된다고 지적했다. 임학동에 거주하는 66세 박홍모씨는 "두 사람이 이렇게 서로 비방하고 싸우는 게 계양구에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서로의 정책이 있어야 하는데 비방만 하다 보니 소음만 크고 국민들은 지쳐버린다. 친구들도 만나보면 정치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며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전 정권에 대해 비판만 가득하다. 국민들은 전 정권에 대한 경험을 거름삼아 더 나아지는 정치를 기대하고 있는데 서로 비방하기 바쁘다. 이러니 칼부림이 난다"고 일갈했다. 이어 "지금도 시장 한바퀴 돌다 왔는데 2000~3000원 하던 게 5000원으로 올랐다. 서로 비방만 하고 우리 같은 서민의 삶에는 관심이 추호도 없어 보인다"고 탄식했다.
민주당 지지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계산동에 사는 31살 김모 씨는 "박근혜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을 거치면서도 바뀐 게 많지 않다"며 "특히 여성들은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윤석열 정부를 지지할 수 없는데, 민주당도 그 흐름에 함께하면서 남성들의 눈치를 본다. 도대체 여성의 이야기는 누가 들어주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 씨는 "임태훈 소장도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을 밝힌 정의로운 사람이지만 공천하지 않았다. 어차피 2030 남성들은 민주당을 지지하지도 않는데 왜 여성들은 신경써주지 않는 건지 답답하다"며 "늘 민주당을 뽑아왔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녹색정의당을 뽑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병방동에 거주하는 55세 박모 씨는 "말하자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아버지인데 국민들이 원하는 바를 생각하지 않고 너무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며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고 다시 잘해 보면 되는데 갑자기 홍범도 장군 이슈를 꺼내면서 이념적으로 가니까 민심을 잃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야당을 만나서 다른 이야기도 듣고 수렴하면서 정책을 펴나가면 좋겠다"며 "지금 여야가 다 상극이고 중간에서 잡아줘야 할 사람이 대통령인데 대통령이 앞서서 공격을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계양산 전통시장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53세 김모 씨와 61세 이모 씨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너무 부자라 우리의 삶을 알긴 알겠나.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우리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의 삶을 알면 서로 싸우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해보이는 것 같다. 국회의원들은 나쁜 짓도 대놓고 하지 않냐"고 말했다. '어떤 나쁜짓을 하더냐'고 짐짓 되물으니 "부동산으로 돈도 벌고 아빠 찬스도 많다"며 "나도 '아빠 찬스' 받고 싶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할 망정 희망을 뺏지는 말아야지"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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