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찰나 같은 순간의 10년 세월, 어떤 사람은 이제 그만하라고 어떤 이는 가슴에 묻으라고… 언젠가 아이들을 다시 만나는 날, 지난달 해수부 해경처럼 최선을 다했는데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하는 그런 최선이 아니고… '적어도 엄마 아빠는 잘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을 다하였노라' 아이들을 만나는 날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10년이 다 된, 못난 아빠가 이 자리에서 바라고 또 바랍니다."(단원고 2학년 1반 문지성의 아버지 문종택 감독)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을 만든 문종택 감독은 "제가 하고 싶었던 영화의 나래이션으로 (이 자리를) 마쳤으면 한다"며 눈물을 억누른 채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실어 "못난 아빠"의 심정을 전했다.
문 감독은 딸을 잃고 카메라를 든 10년의 세월을 두 시간 안쪽으로 담아내는 것도 어려웠지만 "국어책 읽듯 담담하게 내레이션을 해야 하는데 감정이 안 살아나올 수 없었다"며 지난 작업에 대해 "그렇게 억눌렀던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바람의 세월> 시사회 및 간담회가 26일 서울 강남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문 감독 외에 김환태 감독, 김일란 총괄 프로듀서, 단원고 2학년 9반 진윤희의 어머니 김순길 (사)4.16세월호참가사족협의회 사무처장이 참석했다.
"우리 영화를 만들고 싶다"
유가족의 시선으로 제작·편집된 <바람의 세월>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진짜 우리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문 감독의 바람과 이를 전해 들은 미디어 활동가들의 연대로 만들어졌다. 문 감독이 촬영한 영상 50테라바이트(TB) 중 선별된 7테라바이트와 다른 활동가들의 영상 4테라바이트가 더해졌고, 지난 10년을 회상하는 유가족들의 인터뷰가 추가됐다. 여기에 A4 10장 분량의 내레이션이 문 감독 목소리로 녹음됐다.
문 감독은 자신이 카메라를 처음 든 2014년 8월, 진상규명을 외치며 국회와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을 하던 때만 해도 "영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고, 기록을 남기는 것도 차후 문제였다.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는 게 급했다"며 "한 손으로 경찰 방패를 붙잡고 하다 보니 카메라가 많이 흔들렸다"고 했다.
그렇게 문 감독은 제3자의 시선이 아닌 피해 당사자 본인의 시선으로 지난 10년을 기록했다. 그만큼 문 감독의 카메라에는 유가족의 날선 목소리뿐 아니라 솔직한 속내가 담겼다.
<바람의 세월>에서 한 유가족은 "그 모진 세월 서로의 손을 잡아준 가족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는 건 불안감 때문인지도 모른다"며 "우리는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는 혼돈의 시간 속을 걸어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다른 유가족은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지만 저 자신도 사실은, 진실이 밝혀졌을 때 '그 후의 반응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면 진짜 무섭다"며 "사실은 무섭다"고 말한다.
"<바람의 세월>은 다음 세대를 위한 것"
무엇보다 <바람의 세월>은 '세월호' 하면 떠오르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경 배가 침몰하는 장면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문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면서) 제가 원한 건 다음 세대에 대한 부분이었다"며 "'다음 세대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했다.
"전부 그 장면을 쓴다. 배가 옆으로 누워 있거나 꼭지만 나와 있거나 그 차이뿐이다. 처음 시작할 때 김환태 감독과 김일란 프로듀서에게 그 장면은 안 쓰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도 전부 다 그 장면만 떠올리지 않을까?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노출되는 상황에서 굳이 그것을 써야만 할까? '그 장면이 다음 세대들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를 고민했다.
세월호 침몰에 대한 정부의 발표는 '내부적인 문제로 침몰했을 수도 있고 외부적인 문제로 침몰할 수도 있다'라는 게 결론이다. 그러나 여러 커뮤니티나 포털에서는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진도 해양에서 과적을 한 상태로 고박을 하지 않아서 침몰했다'고, 이게 일반적인 공식화가 되어 있다. (정부의) 공식적인 결론과 일반적인 사회화에 차이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그 차이를 알면서도) 저마저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바람의 세월>에서 인터뷰이로 출연한 김순길 사무처장도 <바람의 세월>은 다음 세대를 위한 기록이라고 했다. 그는 "어른들의 잘못으로 재난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제대로 된 역사 공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재난참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며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재난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알리고 교육해야 한다. 교육 차원에서 못한다면, 우리라도, <바람의 세월>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바람의 세월>은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답게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날 아이들이 등교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참사 직후 안산 단원고와 진도 팽목항 모습(2014년 4월), 세월호 특별법 국회 통과(2014년 11월) 및 특별조사위 구성(2015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2016년 12월), 세월호 선체 인양(2017년 3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세월호 유가족 청와대 초청(2017년 8월), 해수부의 미수습자 수색 종료(2018년 10월), 사회적참사예방 및 안전사회건설을위한가습기살균제참사와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출범(2018년 12월), 아이들의 명예졸업식(2019년 2월), 유가족들의 청와대 앞 노숙농성(2020년 12월), 광화문 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철수(2021년 7월), 세월호 특검 수사 종료(2021년 8월), 사참위 활동 종료(2022년 9월) 등을 충실하게 기록했다.
계속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10년이 지난 지금도 세월호를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문 감독과 함께 <바람의 세월>을 공동 제작한 김환태 감독의 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김 감독은 "<바람의 세월>에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위로한다. 또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위로한다. 피해자가 피해자를 위로하는 이런 상황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의 어떤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었다면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라는 자책을, 문 감독을 포함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하고 있다. 이게 얼마나 비참하고 비극적인 일인가"라고 한탄했다.
이어 "피해자가 피해자를 위로하지 않는 그런 사회, 국가가 피해자들에 대해서 제대로 된 시선으로 따뜻하게 위로하고 안아주는 사회, 이런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세월호 유가족들이 걸어온 걸음은 한국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 끊임없이 좌절하면서 끊임없이 걸어온 과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저희는 어떤 미래를 위해서 뭘 고민해야 할지 반추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 광장에서 외쳤던 그 기억들, 함께 외쳤던 그 바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환기하고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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