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순직한 해병대 채 상병 사건과 관련,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임에도 주(駐)호주 한국대사로 임명됐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부임지로 간지 11일 만에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회의 참석을 위한 귀국이라며, 대사직에서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했다.
21일 외교부는 "이종섭 대사는 오늘 SQ 612 항공편으로 인천공항 도착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대사는 싱가포르 항공에 탑승해 이날 오전 9시 30분경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도착했다.
이 대사는 이날 1터미널 입국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임시 귀국한 것은 방산협력 관련 주요국 공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라며 "체류하는 동안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일정 조율이 잘 돼 조사받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일정 관련 방산협력 관련 업무로 상당히 일이 많을 것 같다. 그 다음주는 한-호주 간 기획된 2+2 회담 준비 관련한 업무를 많이 하게 될 것"이라며 "결국 말씀드린 두 가지 업무가 전부 호주대사로 해야 할 중요한 의무다. 그 의무에 충실하겠다"고 말해 사퇴할 뜻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이 대사는 "저와 관련해 제기된 여러 의혹들에 대해서는 이미 수차례 걸쳐서 사실이 아니라는 점 분명히 말씀드렸다"며 추가적인 대응을 내놓지 않았다. 사의를 표명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도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이 대사의 이날 입국은 스스로 밝힌 대로 방산협력 국가 공관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함이다. 외교부는 20일 "외교부,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와 공동 주관으로 3월 25일부터 주요 방산 협력 대상국인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인도네시아, 카타르, 폴란드, 호주 등 6개국 주재 대사들이 참석하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대사가 귀국하면서 대사직 유지 의지를 분명히 했으나 위 회의에만 참석하고 대사직을 계속 유지할 경우 오히려 이 대사 임명과 관련한 사안이 더 부정적으로 부각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향후 당정 간 갈등이 더욱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이 대사는 지난해 7월 30일 채 상병 사건과 관련,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비롯해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 보고서'를 결재했다. 하지만 그는 다음날인 7월 31일 언론 발표 1시간 여를 앞두고 돌연 이를 취소했고, 이후 보고서를 수사기관인 경찰에 이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은 군사법원법 제2조와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및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훈령' 등 세부규정에 따라 8월 2일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결과를 경북 경찰청에 이첩했다. 이에 국방부는 당일 이를 회수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이 대사는 수사 결과를 결재하고 이를 다시 회수하는 등 당시 일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2월 1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박정훈 대령(전 수사단장)의 항명 및 상관 명예 훼손 혐의에 대한 2차 공판에 출석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이 전 장관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면 이첩을 막을 이유가 없지 않냐는 박 대령 측 변호인단의 질문에 "장관님 지시가 없었다면 정상적으로 이첩했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이 대사는 지난해 9월 5일 더불어민주당 해병대원 사망사고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에 의해 직권남용 및 공용서류무효죄로 공수처에 고발된 상태다. 또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역시 지난해 10월 24일 이 대사를 비롯해 윤석열 대통령,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국방부를 통한 수사 축소·외압 지시)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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