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의회에서 국가 기밀·선동·외세 간섭 등의 기준을 매우 넓게 규정한 새 국가보안법이 통과되면서 홍콩 및 중국 정부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물론이고 외국 기업과 외교 활동까지 억눌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 < AP> 통신 등을 보면 19일(이하 현지시간) 홍콩 입법회(의회) 전체회의에서 '수호국가안전조례'가 만장일치로 통과돼 국가보안법 격인 '기본법 23조'가 입법화됐다. 지난 8일 발의 뒤 2주도 안 돼 통과된 법안은 오는 23일 곧바로 발효된다. 보안법 "전속력" 제정을 요구했던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법안 통과는 "역사적 순간"이라고 자축했다.
이 법은 2019년 반정부 시위 뒤 2020년 중국이 제정한 홍콩 보안법을 보완하는 형태다. 홍콩에서 기본법 23조는 2003년에도 입법이 시도됐지만 대규모 반대 시위가 일며 무산된 바 있다.
반역, 선동, 국가 기밀, 외세 간섭 등을 다루는 기본법 23조는 반역, 내란, 외부 세력과의 결탁을 통한 공공 기반시설 파괴 땐 종신형 선고가 가능하도록 했다. 간첩 행위엔 최대 20년형이 부과된다. 외부 세력과 협력해 정부 정책, 입법부, 법원, 선거 등에 개입할 경우 최대 14년형이 선고될 수 있다.
같은 행위도 외부 세력과 공모했다고 판단되면 더 무겁게 처벌된다. 말, 출판물, 행동 등을 통해 중국 또는 홍콩 정부에 대한 증오, 경멸, 불만을 일으킬 의도로 선동 범죄를 저질렀다면 최대 7년형을 선고 받을 수 있지만 외부 세력과 공모했다면 형량이 최대 10년으로 늘어난다. 국가 안보를 위협할 목적으로 공공 기반시설을 파괴할 경우 최대 20년형에 처해지지만 외부 세력과 연계됐을 경우 종신형 선고가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해당 법의 규제 대상이 너무 넓고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불법 소지 및 취득이 금지된 국가 기밀의 경우 그 범위가 국방, 외교, 과학 기술, 사회 및 경제 개발, 주요 정책 결정 등 광범위하게 정의돼 있다.
미 CNN 방송은 훙호펑 미 존스홉킨스대 사회학 교수가 사회·경제적 문제를 국가 기밀로 본다는 건 기밀에 "모든 것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러한 가혹하고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조항들로 인해 정치와 관련 없는 기업가들조차 곤경에 빠질 수 있고 중국 본토의 많은 사례들처럼 사무실이 급습 당하고 구금, 체포 및 출국 금지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 법은 홍콩에 있는 외국 기업들이 불확실성, 불안, 의심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과 유럽연합(EU)도 조항의 "모호함"을 지적했다. 베단트 파텔 미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19일 언론 브리핑에서 23조의 "광범위하고 모호하게 표현된 조항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이러한 조치는 한때 개방적이었던 홍콩 사회의 폐쇄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파텔 수석부대변인은 "많은 문구와 범죄가 빈약하게 정의돼 있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특히 "'외부 간섭'이라는 표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다"고 짚었다. 법이 제시한 외부 세력엔 외국 정당, 국제 기구, 외국 정부와 연계된 기업까지 포함된다. 그는 법안을 분석해 "미국 시민 뿐 아니라 미국의 다른 국익에 어떤 잠재적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지" 살피겠다고 덧붙였다.
유럽연합(EU)도 19일 성명을 통해 이번 법안이 "홍콩 주민의 권리와 자유"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하며 "특히 외국 간섭과 국가 기밀 관련 포괄적 조항과 넓은 범위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또 "이 법은 EU 사무소와 EU 회원국 총영사관 업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EU 시민 및 조직과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국제 비즈니스 허브로서의 홍콩의 장기적 매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고 덧붙였다.
법에서 제시하는 선동 범죄의 기준이 "정부에 대한 불만 조장" 수준으로 매우 낮기 때문에 내부에서 홍콩 및 중국 정부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사이먼 영 홍콩대 법학 교수는 지난달 홍콩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선동 범죄 기준 중 "불만"은 "일반적 감정"으로 범죄가 되기엔 "기준치가 너무 낮은 정서 상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영국 BBC 방송은 휴먼라이츠워치의 중국 국장 대행 마야 왕이 이 법으로 "홍콩에서 새로운 권위주의 시대가 시작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책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고 수년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며 법안 즉시 철회를 촉구했다.
홍콩 민주화를 지지했던 폐간된 신문 빈과일보 사주 지미 라이가 실형을 선고 받는 등 반대 목소리를 냈던 많은 활동가들이 이미 2020년 제정된 기존 보안법에 의해 처벌되거나 망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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