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정 기한을 약 1년 9개월이나 남겨둔 시점에서 협상 대표를 임명하며 협상에 돌입할 채비를 갖췄다. 이에 올해 말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에 적정한 수준의 분담금을 확정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외교부는 5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대표에 이태우 전 주시드니총영사를 임명했다"며 "북핵외교기획단장, 북미국 심의관, 주미국대사관 참사관 등을 역임한 직업 외교관으로, 한미동맹의 다양한 분야에 걸친 업무 경험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한미 양국의 공동 보도자료에서 외교부는 "이태우 방위비분담 협상대표는 외교부, 국방부, 기획재정부, 방위사업청 등 소속 관계관들이 포함된 우리측 대표단을, 린다 스펙트 선임보좌관 겸 미국 안보협정 수석대표는 국무부・국방부 관계관들이 포함된 미측 대표단을 이끌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미 양측이 방위비 분담금 협상 대표를 임명하고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대비하기 위한 것과 함께, 그의 주요 공약인 대규모의 방위비 인상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바이든 대통령 측의 선거 전략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처음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지난 2016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을 비롯한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동맹국들이 방위비를 충분히 지출하지 않는다면서 대폭 인상을 요구해왔다. 그가 강조하는 소위 '미국 우선주의'를 현실화하는 대표적인 공약으로 방위비가 활용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는 올해도 동맹국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 1월 10일(현지시각) 미 방송 폭스뉴스 주관으로 아이오와주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Town hall Meeting, 정치인 등이 지역 주민들과 만나 의견을 듣거나 토론하는 행사)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이하 '나토')에 대한 방위 공약을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들이 제대로 우리를 대우할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답을 내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어 "나토는 우리를 이용했다"면서 동맹국들이 자신들 몫의 방위비를 부담하지 않아 미국이 이를 떠안게 됐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또 이날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020년 다보스 포럼 당시 미국이 나토에서 탈퇴할 수 있다고 위협하며 유럽에 분담금 증가를 요구했다고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EU) 집행위원을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실제 한국도 트럼프 정부와 방위비 협상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 2019년 제10차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 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은 한국에 1조 원 이상의 금액을 요구했다. 협상에 진전을 보이지 못한 양측은 결국 유효기간 1년 및 한국 측 분담금 1조 389억 원에 합의했다. 이는 한국의 국방예산 인상 비율인 8.2%를 적용한 결과였다.
이후 열린 11차 SMA 협상에서 미국 측이 제시한 인상 수준은 더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50억 달러를 요구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합의가 불가능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10차 협정이 만료된 이후에도 새로운 협정이 타결되지 못했고, 결국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인 2021년 3월 분담금을 13.9% 증액하고, 향후 2025년까지 한국의 국방비 증가율에 맞춰 이를 인상하는 데 합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SMA 협상이 협정 만료 연도에 시작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만료가 1년 9개월이나 남은 상황에서 12차 SMA를 개시하는 것을 두고도 트럼프 2기 정부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2021년 11차 협정과 마찬가지로 4년짜리 협정을 만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설사 집권하더라도 변경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는 이같은 해석에 선을 긋고 있다. 지난 2월 28일(현지시각) 정부 고위당국자는 방위비 협상과 관련 "현행 방위비 협정이 내년 말 종료한다. 보통 협상에 1년 이상 걸리므로, 당연히 금년에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지적에 그는 "(미국)대선에 상관없이 타임 프레임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답했다.
5일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 역시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과거 사례를 보면 방위비 협상이 상당히 장기간이 소요된 적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차기 협상을 위해 미리 충분한 시간을 갖기 위해 방위비 협상 대표를 임명하게 되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임 대변인은 "현재로서는 차기 협상 일정과 관련하여 정해진 것은 없다"며 "한미 양국은 앞으로 차기 방위비 분담 협상을 준비하기 위해서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해 협의 시작 시점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미 양국 중 어느 쪽이 먼저 협상을 시작하자고 요청했냐는 질문에 이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보통 협상은 어느 한쪽의 요청에 따라 시작하지는 않는다. 공감대가 이뤄진 것"이라며 지금은 양측이 모두 협상단을 꾸려야 하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미국 대선 전에 협상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미리 (시한을) 정해 놓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미관계 및 양국 상황 고려해 가면서 동맹 관계에 영향이 없도록 서로의 접점을 찾아내는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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