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괄호 밖으로 제외되는 프리랜서들은 노동자로서 존중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이제는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하는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걸, '3.8 여성의 날'에 다시금 말 해주고 싶습니다."
23년 차 방송작가 권지현 씨가 자신과 같은 작가, 리포터, 진행자 등 비정규직 프리랜서인 여성 방송 노동자들에게 "존중"의 의미를 담아 '노회찬의 장미 나눔'을 신청했다.
권 씨는 지난 달 28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방송사에서 방송 제작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노동자구나. 일하고 있구나' 같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며 "명절 선물이나 보너스, 사내 복지, 심지어 출산 휴가 등 일반적인 직장인들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프리랜서들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며 씁쓸해했다.
"늘 괄호 밖으로 제외되는 프리랜서, 이제는 익숙해졌다"
권 씨는 "방송의 8할은 프리랜서들에 의해 제작되고 있"지만 "주기적으로 '너희는 구성원이 아니다'를 일깨워주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했다.
2019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확인된 확진자만 5000여 명이 넘는 집단감염(일명 '신천지 사태')으로 대구가 발칵 뒤집혔을 때다. 대구 전체가 마비되다 시피 했고 마스크는 동이 난 상황이었지만, 회사는 전원 매일 출근해 비상방송을 하라고 명령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으로 숨어 들 때, 우리는 출근을 해야 했다. 마스크 구할 곳이 없어 종종 거릴 때 회사 측에서 어렵게 마스크를 구했다며 지급해 주었다. 단, 직원들에게만. '같이 일하는 우리는 사람이 아닌가? 동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괄호 밖으로 제외되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설과 추석, 회사 창립일과 관련 기념일, 그리고 노동절이면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선물과 포상이 비정규직 프리랜서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권 씨는 "지급 명단에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 사회의, 이 회사의 구성원이 아닌가' 하는 의심과 소외감이 들었다"고 했다.
권 씨는 방송 현장에서 겪은 차별을, 책 <제법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입니다>로 펴냈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방송작가의 삶 이면에는 문자 해고 한 통이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차별이 존재한다고 했다.(☞ 관련 기사 : "산재보험도 없는, '일할 때만 가족'"…20년차 방송작가의 삶과 고민을 나누다)
권 씨는 "처음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비정규직 프리랜서의 처우가 개선되긴 했지만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근무환경은 여전하다"며 "매년 이뤄지는 임금협상도 결국은 정규직에게만 해당될 뿐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의 임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의사와 간호사, 피디와 작가처럼 남성과 여성으로 고착화되다시피 한 직업군은 그 속성이 가부장 제도와 비슷하다"며 '남성 상위 / 여성 하위'와 같은 사회 전반의 인식을 꼬집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권 씨는 '방송작가유니온(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방송작가유니온은 방송작가라면 장르, 연차, 지역에 관계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며 현재 300여 명의 조합원이 함께하고 있다.
권 씨는 "프리랜서로 개별적인 존재였던 방송작가들이 노조를 결성한 뒤 방송사에서 작가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며 작가들 역시 "노조가 생겨서 든든하다"라는 말을 한다고 전했다.
지난 2022년 7월 법원은 MBC가 방송작가를 프리랜서로 계약한 뒤 개편을 이유로 해고한 것이 부당해고라고 판결했다. 이는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첫 사례다.
권 씨는 방송국은 개편이라는 미명 아래, 또 시청률·청취율에 따라 언제 어떻게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정 노동 현장이지만 "내가 방송작가를 그만두겠다고 마음먹는 시점이, 바로 정년이 될 것 같다"며 "앞으로도 방송작가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권 씨는 후배 작가들에게 노회찬의 장미와 함께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