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블랙리스트 문건이 폭로되었다. 무려 1만6450명의 명단이다. 쿠팡에서 일했던 노동자 뿐 아니라 언론인, 정치인, 유튜버까지 포함되어 있다. 쿠팡측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했다가 언론을 통해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자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해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의 개인정보를 본인 동의도 없이 불분명한 사유로 불법적으로 관리한 점은 분명하다. 이 블랙리스트에 담겨있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회적으로 끼치게 될 영향도 상당하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위험한지 네 차례에 걸쳐 들여다 보고자 한다.
쿠팡의 취업 제한 블랙리스트, 'PNG 리스트'
쿠팡의 불법적인 블랙리스트가 MBC <뉴스데스크> 보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1만6450명의 이름, 연락처 등의 개인정보를 담고 있는 블랙리스트의 파일명은 'PNG 리스트'이다. 'PNG'는 'Persona Non Grata'의 줄임말로 추정되는데, 이는 '기피인물'을 뜻한다. 1만6450명은 '대구1센터', '대구2센터', '--'로 분류되어 있다. 각각은 영구채용거부, 일정기간채용거부, 불특정기간채용거부를 뜻하는 암호로 추정된다.
쿠팡은 처음에는 출처불명의 문서라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 'PNG 리스트'가 쿠팡의 문서임을 부정하다가 "인사평가는 회사의 고유권한이자, 안전한 사업장 운영을 위해 필요한 조치", "회사 기밀 탈취해 MBC 전달 정황 확인"이라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PNG 리스트'가 취업을 제한하는 블랙리스트임을, 그리고 쿠팡의 공식 문서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위 이미지는 MBC가 제공하는 쿠팡 블랙리스트 조회 사이트에서 필자의 정보를 검색한 결과이다. (https://dgdesk.mbcrnd.com/blacklist/) 등록 사유에 '사규 위반'과 '근태 불량'이라고 되어 있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징계로 인정받은 노동조합 활동을, 노동조합을 불인정하여 노동조합 활동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에 보고받고 조퇴한 내용을 쿠팡은 블랙리스트 사유로 명기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등재에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이 거절된 마지막 계약종료일, 2022년 6월 23일에 필자는 쿠팡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었다.
안전을 위해서라고?
근로기준법 위반,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위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최소 3개의 법을 위반하고 있는 쿠팡의 블랙리스트에 대한 찬반 여론이 존재한다고 한다. 명백한 불법행위에 찬반이 있다는 것이 조금 당황스럽다. 노동조합의 '합법적인 활동'은 언제나 정부와 기업에 의해 불법으로 매도되어 탄압받기 일쑤인데, 기업의 '불법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찬반 여론이라는, 얼핏 보기에는 민주적인 듯한 잣대를 들이밀어 결과적으로는 불법을 용인하는 이 불균형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불공정, 비상식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블랙리스트를 찬성하고 옹호하는 여론은 주로 쿠팡의 주장을 그대로 베껴 쓴 내용이다. 물류센터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블랙리스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언제부터 불법과 부당함의 상징인 블랙리스트가 안전과 양질의 일자리를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을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회사는 모두 블랙리스트를 운영하고 있나? 쿠팡뿐만 아니라,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개인정보를 취업 제한 블랙리스트로 작성하고 운영하는 것을 떠올렸으면 한다. 물론 본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그 존재 여부를 공개하지 않고 말이다. 이 문서가 다른 회사, 그룹사라면 그룹의 다른 계열사 또는 자회사, 또는 정부 기관으로 의도적으로 공유되거나 실수로 유출되는 것. 그래도 블랙리스트를 찬성하고 옹호할 수 있을까? 한 번의 낙인조차도 부당할 것인데, 그것이 온 사방으로 퍼져서 여러분들의 취업을 막는다면? 생계가 어려워지고 삶을 지속하기 어렵다면? 그래도 '인사평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취업 제한 블랙리스트의 피해는 당사자 개인의 삶을 파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에서조차 이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있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쿠팡 자회사)에도 인사위원회가 있고, 징계 절차가 있다. 많은 이들이 쿠팡 블랙리스트가 정상적인 인사위원회, 징계 절차의 결과물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장 관리자가 "쟤 블랙에 올려"라고 말하면 명단에 올라가는 블랙리스트가 어떻게 회사의 인사평가 시스템일 수 있을까. 이런 시스템이 현장 노동자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쿠팡의 블랙리스트는 법에서 요구하는 공정한 인사평가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고, 법의 판결이 필요한 사안까지 현장 관리자의 개인적인 '말'과 '리스트'로 대체하는 폭거이다.
'PNG 리스트'의 분류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1만6450명에 중에서 '도난 사건'(250명), '직장 내 성희롱'(210명), '음주근무'(17명), '폭행사건'(71명), '스토킹'(27명)의 비중은 크지 않다. 오히려 '정상적인 업무수행 불가능 및 안전사고 우려'(4432명), '비자발적 계약종료'(3376명), '24주 내 웰컴데이 중복지원'(1712명)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심지어 '자발적 계약종료'(697명), '일과 삶 균형'(128명), '육아 및 가족 돌봄'(105명), '학업'(52명), '퇴직금'(36명) 등과 같이 직원의 안전과는 관계없는 항목도 상당하다. 쿠팡 물류센터 현장에서 일한 적도 없는 경찰청 출입기자 명단, 현장 취재를 위해 일용직으로 근무한 언론인과 국회의원은 왜 명단에 올라가 있을까? '회사 명예훼손'과 현장 노동자의 안전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쿠팡은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도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불안정고용-쉬운 해고 시스템의 결정타, 쿠팡 블랙리스트
쿠팡 블랙리스트의 본질은 '쉬운 해고'이다. 대략 3~4만 명의 노동자들이 절반은 일용직으로, 나머지 절반조차 1년 계약직으로 고용된 현장이 쿠팡 물류센터이다. 매일 같이 1만 명 이상의 노동자를 일용직으로 새로 고용해야 하는 회사이다. 얼마나 비효율적인 과정인가. 그런데 왜 이런 시스템을 고집하는 것일까? 이 시스템을 통해 현장 노동자들을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으로 고용하고, 높은 노동강도로 일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 관리자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당장 내일 출근하지 못하고, 영구적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밖에 없으니 노동조합 가입은 상상조차 못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노동적이고 반사회적인 시스템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하고자 7년 간 1만6450명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면서 활용한 것이다.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임에도 1만 명 이상의 노동자를 일용직 노동자로 쉽게 갖다 쓰고 싶고. 그런데 회사 마음대로 손쉽게 사람은 거르고 싶고.
결국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될 일자리를 기어코 극단적인 수준의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 유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블랙리스트다. 일용직이라는 이유로 출근 거부되고,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재계약과 무기계약직 전환이 거부되는 해고가 살인이라면, 블랙리스트는 살해된 노동자의 재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확인 사살이다.
쿠팡의 로켓 성장은 이렇게 가능했다. 로켓, 새벽배송과 같은 빠른 배송과 낮은 가격의 비결은 시장 독점, 갑질, 최악의 노동환경과 불안정고용이다.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개인정보, 인권, 노동권은 쿠팡의 성장과 이윤 추구를 위해 가볍게 무시되었다. 현장 노동자들을 'PNG 리스트'에 차곡 차곡 추가하는 방식으로, 아주 손쉽게.
안전하고 건강한 물류센터 현장을 바란다면?
쿠팡이 진정으로 직원이 안전하고 건강한 물류센터 현장, 인권이 보장되는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에 진심이라면 다음 사안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물류센터 현장 휴대폰 반입 허용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 갑질, 인권침해 예방 및 해결 △안정된 고용(정규직, 무기계약직) 확대 △쿠팡 대구2물류센터에서 과로로 산재 사망한 고 장덕준님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보상 △냉난방장치 설치로 여름철 온열질환 및 겨울철 심혈관계질환 예방, 정기적인 휴게시간 보장.
열악한 물류센터 현장을 이렇게 방치하면서 블랙리스트를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포장하다니. 물론 인사 평가도 아닌 주관적 살생부, 확인 사살 명단에 불과한 'PNG 리스트' 활용 중단, 블랙리스트 철폐는 최소한의 조치일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불법을 눈감아줄 순 없다. 이번 쿠팡 블랙리스트 사건은 피해자만 1만6450명, 7년 동안 행해진 복수의 법령 위반 사건이다. '상식과 공정이 살아 숨쉬는 나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세운 국정 기조다. 불법 기업, 블랙 기업 쿠팡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과 경찰의 철저한 수사는 필수다. 작년 8월, 경찰과 검찰이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영장을 발부하여 쿠팡물류센터지회 노동조합 간부의 휴대폰을 압수수색하고, 공공운수노조 사무실을 쳐들어온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정부 출범 후 2년간 찾아볼 수 없었던 정부의 국정 기조, 이번 쿠팡 블랙리스트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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