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남한과 관계단절을 선언한 북한이 관련 기관 및 조직을 없앤 데 이어 이번에는 남북 경제협력과 연관된 법안 및 합의서를 폐지했다.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의 조치에 대해 별다른 대응 방안을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8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7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제30차 전원회의가 진행됐다며, 이 회의에서 북남경제협력법,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과 그 시행규정, 북남경제협력 관련 합의서들의 폐지가 의안으로 상정돼 채택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이날 기자들과 만난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일방적 폐지 선언으로, 그것만으로 합의서 폐지 선언이 효력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며 합의 폐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당국자는 북한의 이번 조치에 "예상했던 바"라면서도 "이같은 조치는 북한 고립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대응 방안에 대해 그는 "현재 남북 간 경협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아니고, 당장 임박하여 할 조치에 대해서 예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북한이 폐지를 선언한 남북 간 경제협력 합의서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다만 기존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을 포함해 북한 내 경제협력 사업이 모두 중단된 상황이라 실질적 효과보다는 남북관계 단절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가 큰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이날 폐지 선언을 한 북남경제협력법의 경우 지난 2005년 7월 6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채택됐다. 남한과 경제 협력의 원칙, 방법, 절차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의 경우 2002년 제정됐던 금강산관광지구법을 대체하기 위해 2011년 제정된 것으로, 남한 현대그룹의 사업독점권을 없애려는 목적이 있었다.
1998년 남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2008년 남한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중단됐다. 이후 2010년 천안함 및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남북관계 경색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는 기간이 길어졌고, 이에 북한은 현대그룹의 관광사업 독점권을 취소하겠다고 밝히면서 금강산에 대해 다른 나라의 투자도 받을 수 있도록 해당 법을 만들었다.
법 제정과 함께 금강산관광지구는 '금강산국제관광특구'라는 이름으로 변경됐고, 법령에는 외국의 법인이나 개인, 경제조직 등이 모두 투자가 가능하다고 명시됐다. 물론 남한 및 해외동포, 북한 내 기관이나 단체 등도 투자가 가능하다고 밝혀 남한을 배제한 법령은 아니었다.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해 12월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당 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에서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며 남북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노선 변화를 예고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김 위원장은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 가진 시정연설에서 헌법 개정 및 남북관계를 상징했던 주요 언어 폐기,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철거 등을 예고했고 실제 이달 23일(현지시각) 북한 전문매체 <NK 뉴스>는 상업 위성 사진 분석 결과 해당 기념탑이 철거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 최고인민회의 회의 당일에는 주요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을 폐지했다. 앞서 13일 북한 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북남(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위한 연대기구로 내왔던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등 우리 관련단체들을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고 밝혀 남북 관련 기구들도 폐지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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