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ee)."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 조형물에 새겨진 글귀이다. 많은 이들이 자유를 위해 투쟁하지만, 투쟁을 지속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담보하면서 본인과 그 주변인의 자유와 자유로운 권리를 쟁취하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실제로는 더 많은 자유롭지 못한 자, 자유롭지 못한 권리를 양산하게 된다.
미국의 천재 여성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1929년 출간한 <자기만의 방>에서 공간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에 관해 이야기했다.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비정규교수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필요조건이다.
비정규교수 신분으로 논문과 재임용에 대한 스트레스와 수면장애로 병원에 입원한 날 나는 병실의 흰 벽과 유리창이 견딜 수가 없어서 통유리로 된 유리창 쪽에 서서 창밖을 내내 내다보았다. 그리고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견딜 수가 없이 힘들어 어떻게든 건강을 회복해서 병원을 나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들고 간 A4종이와 펜을 가지고 논문 <중년남성의 외로움과 우울 그리고 건강>의 일부분을 썼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전부 버렸다. 논문을 쓰는 작업은 지난한 작업이며 피와 살을 깎는 작업이다.
어느 눈 오는 날 병원의 정원을 산책하는데 누군가 틀어놓은 가수 백예린의 ‘square’가 흘러 나왔다. 나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려 마음껏 두 손안에 가득 눈을 담았다. 내 손 안에 쌓이던 눈의 결정체는 금방 녹아 내려버렸다. 그런데 손안의 눈이 녹기 시작하면서부터 신기하게도 마음의 자유가 조금씩 빛처럼 열리는 느낌을 받았고 찢어버린 논문의 앞부분이 아깝지 않고 오히려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의 가로등불이 창문을 통해 가로막힌 벽 안으로 가는 빛으로 스며들 듯이,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는 마음속의 어떤 창문과 벽을 가지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재화가 전부인 사람은 영원히 금빛 문과 벽 때문에 빛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팔각형 형체에 또 다른 잔가지를 가진 눈의 결정 덕분에 마음이 편해질 수 있었다. 평생 얻고 싶었던 자유에 한 발짝 더 다가선 느낌이었다.
극한 상황에서도 자라나는 식물인 선인장, 화성에서 감자를 키워 생존해서 지구로 돌아가는 영화 마션에서의 감자처럼, 그리고 구멍가게에서 사 온 반은 흙이고 반은 스티로폼 가루인 바질 화분처럼, 비정규교수로서 나는 그 어디서건 학생들이라는 생명의 싹을 틔울 것이고 새싹은 자유의 표상이며 의지의 힘을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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