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모르는 사람
돌멩이 하나를 줍는다
바다가 헌 광목처럼 늘어진 도시
바싹 마른 돌멩이에서 한 사람의 얼굴을 본다
꼭 감은 눈
삭은 시간을 여미듯 앙다문 입술
모르는 얼굴이다
숨죽인 물결이 끝도 없이 포개져 누운
감 아무개부터 황 아무개까지,
모르는 이름
모르는 도시
형무소 자리 맞지요? 지금은 주차장이 된 곳을 어리둥절 서성이다
어시장 앞에서 버스를 타고 나는 이곳에 왔는데 약속처럼 바다를 보러 왔는데
아름다운 바다
바다는 잠잠하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듯
한 사람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한 사람은 인민군에 동조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살해됐다, 한 사람은
학교에 가다 극장에 가다 마트에 가다 잠시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또 한 사람은,
바다를 보며 서서 해가 저물길 기다린다
몇 대의 빈 버스가 왔다
간다 느릿느릿
마산 사람이가?
아니예
아니, 예, 아니,
빗돌에는 슬픈 이야기만 빼곡하고
누구를 찾아 왔노?
누구를?
매일 아침 위령탑 주변을 청소한다는 사람
"위령비 앞에 대빗자루를 들고 서면 저도 똑같은 마음이 됩니다"*
모르는 마음이다
마산에 산 적이 있었는데
총알 자국이 선명한 담벼락을 지나 학교에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누구인가
바다는 어디인가 아름다운 바다는
나도 모르게 손에 꼭 쥔 돌멩이 하나
부서질 듯 몸부림치다 한 사람의 정수리로 내리꽂히는
뙤약볕
꼭 오늘 같은 여름이었을 것이다
* 오마이뉴스 「매일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위령탑’ 청소, 무슨 사연?」(2022.10.28) 부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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