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파리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기점으로 기후 '변화'가 아니라 '위기'라는 단어가 등장하더니 2019년 기후 대중행동을 기점으로 기후위기 비상 행동이 결성되며 이제는 기후변화보다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접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가 되었기 때문에 정치인, 기업가, 정부, 시민 등 사회의 모든 이해관계자가 위기를 막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기후위기의 주요 이해관계자 중 하나는 정부다. 정부 정책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정부의 재정 지출 규모가 한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30~50퍼센트(%)를 차지하는 만큼(OECD, 2022) 정부의 재정 활동이 기후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각국 정부들은 2050 탄소중립 선언에서 더 나아가 탄소인지예산제도를 다양한 형태로 도입하고 있다.
탄소인지예산제도는 정부 예산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추적하여, 그 결과를 정부 예산 편성 및 집행에 반영하는 제도다. 전 세계적으로는 프랑스의 녹색예산제도(Green budgeting), 오슬로의 기후예산제도, 리우마커(Rio Marker)에 기반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후예산, 유엔(UN)의 환경을 위한 공적개발원조(ODA)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21년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하며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어 2021년 5월 국회 본회의에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결산제도의 도입을 주 내용으로 하는 국가재정법과 국가회계법이 일부 개정되어 정부는 2023년도 예산안부터 예산이 온실가스 감축에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해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와 온실가스감축인지 기금운용계획서를 작성하고 있다.
탄소중립기본법 제4조 제2항에 따르면 국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역시 각종 계획의 수립과 사업의 집행 과정에서 기후위기에 미치는 영향과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방정부의 온실가스감축인지 예결산제도의 도입을 주 내용으로 하는 지방재정법과 지방회계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에 있어 선도적으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결산제도를 도입하려고 하던 지방자치단체의 동력 저하 주원인이 되고 있다.
중앙정부의 온실가스 감축인지 예산제도 운용 현황 평가
2023년 중앙정부는 전체 8435개의 세부 사업 중 3.41%인 288개, 639조 원의 정부 총지출 중 1.86%인 11.9조 원만 대상으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을 작성했다. 구체적으로 2023년 신규사업의 3.6%(16개), 일반회계 사업의 0.8%(41개), 특별회계 사업의 3.2%(54개), 기금사업의 13.4%(193개)를 대상으로 작성되었다. 이는 정부의 2023 회계연도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가 우리나라 정부 재정사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로 활용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에서 작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재정 운영이 온실가스 감축에 미치는 영향평가는 사실상 실패했다.
정부는 제도 시행 첫해라 단계적 방안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사업을 대상으로 선정하였고, 제도가 안착한 후에 다배출 감축 유도 등을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넓힐 예정이라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외국의 기후 예산 및 녹색 예산 사례나 정부보다 앞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를 시행하거나 시범사업을 추진한 지자체의 사례를 볼 때 설득력이 없다. 온실가스 감축에 부정적인 사업은 평가에서 제외하고 온실가스 감축 사업만 나열한 것은 재정 운영이 온실가스 감축과 배출에 미치는 영향을 투명하게 보여준다는 제도 도입 취지에 어긋날 뿐더러 그린워싱이라는 비판을 불러올 소지가 있다(이성현, 2022, 나라살림연구소).
2024년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 또한 2023년과 마찬가지다. 감축사업만을 평가하고 배출사업을 제출하지 않았다. 온실가스 감축량 측정이 가능한 정량사업 비중은 줄고 감축량 측정이 어려운 정성사업 비중이 늘어나 감축 예산 및 감축 효과에 대한 신뢰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 등 지방정부 기후예산제도 운영 현황
서울시는 2021년 10월 보도자료를 통해 예산 편성부터 온실가스 감축 영향을 평가하는 기후예산제 도입을 대대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보도자료와 달리 2022년도 회계연도의 기후예산서는 시행 첫해라는 이유로 3개의 소관 국실의 사업만을 대상으로 작성되었으며, 예산의 편성 절차와 부서별 현황 등 총괄자료가 부재한 상태로 발표되었다. 이같은 문제는 2023년 기후예산서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났다. 그 외 사업별로 온실가스 배출 영향을 감축, 배출, 혼합, 중립으로 분류하는 것에 있어 일관되지 않은 부분과 배출원 단위의 비일관성, 배출 사업에 대한 과소평가, 지나친 개별 사업 단위 접근의 문제 등은 중앙정부의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와마찬가지로 지적되고 있다.
경기도와 경기도의회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미흡하지만 지난 2023년 7월 광역지자체 최초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 운영 조례를 제정했다. 또한, 곧바로 경기도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 운영지침을 마련하고 공개했다. 2020년 전국적으로 그린뉴딜 열풍이 불 때부터 전국 최초로 탄소인지 예산제 분석을 3번에 걸쳐 시범 사업을 실시하면서 나름의 경험을 축적한 결과이기도 하다.
경기도는 회계연도 2024년 예산안과 더불어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를 도의회에 제출했다. 제출된 예산서에 의하면 경기도 예산사업의 총대상 사업수가 세부 사업 기준으로 1만2977개에 달한다. 하지만 제출된 대상 사업수는 528개로 약 4%이며, 전체예산이 36조1425억100만 원인데 반해 분류제출된 예산은 3조5887억9600만 원으로 약 10% 정도로 매우 제한적이다.
경기도는 기후환경정책과 주관으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 작성 운영지침에 의해 대상사업을 선정한 후 해당 부서가 예산서를 작성하고 이를 실무검토반이 검토하며, 실무검토반 의견에 대한 해당 부서 최종 검토를 거쳐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를 작성해 의회에 제출했다. 곧 2024년 회계연도 예산심의 과정에서 다뤄질 예정이나 해당 제도의 제정 취지에 비춰 얼마나 심도 있게 검토될지는 미지수다.
이는 경기도의 의지 문제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로 예산 수립 과정에서 현재 방식의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방식으로 예산을 재구조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시민들의 눈높이로 작성해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 운영 시 탄소중립을 주요 요소로 고려하도록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가 도입되었음에도 정부의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 또는 기후인지 예산서는 큰 설득력을 주고 있지 못하다. 이는 지자체 출연기관이 분석작업을 진행한 한계이기도 하다. 국가나 지자체가 기존의 관점에서 온실가스 배출 및 감축, 중립사업에 대한 분류 지표를 반영해 진행하다 보니 일반 대중의 시선과 평가가 서로 다른 지점이 보이는 까닭이다.
이에 대한 대안점을 제시하고자 서울과 경기에서는 올해 봄과 가을에 걸쳐 시민 버전의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를 작성하는 워크샵을 진행했다.
서울에서는 서울기후위기비상행동을 중심으로 활동가들이 2023년 서울시 본청 사업 4123개 중 1억 원 규모 이상의 사업 3247개를 대상으로 3주에 걸쳐 기후인지 예산서에 포함 여부와 분류 기준 초안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후 여름 동안 시민들을 모집하여 기후인지 예산서에 포함되어야 할 사업으로 선정한 1200여 개의 사업에 대해 당해연도 사업 효과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빨강), 감축(초록), 중립(노랑)을 표시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참가자들의 기준에 따라 비슷한 유형의 사업임에도 배출, 감축, 중립의 판단이 달라진 경우가 있어 운영진에서 아직까지 최종 자료 정리 중에 있으며 올 연말 안으로 최종 결과물을 발표할 예정이다.
경기지역은 기후위기경기비상행동을 중심으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 도입에 따라 시민사회가 탄소중립기후정의에 기초한 예산서 작성, 시민공론화를 통한 기후예산 수립 제안, 이를 반영한 지자체 예산서 작성 및 제안, 법제도적인 기반 확산을 위해 예산분석팀을 운영했다. 예산분석 지자체는 우리의 역량과 파급효과 등을 고려해 경기도 수원시와 남양주시를 선정했고, 예산은 2023년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기금 중 1억 원 이상 세부 사업으로 선정했다.
서울과 경기도 모두 지방재정365와 빅카인즈, 정보공개 등을 통해 확보한 예산명세서와 사업설명서를 바탕으로 지자체 홈페이지와 언론보도 등을 참조해 분석팀이 분류기준과 지표를 적용하려고 했으나 예상처럼 쉽지 않았다. 먼저, 분류기준에 대한 한계가 분석작업을 진행하면서 도출되었다. 분석작업에 참가한 사람들의 인식 또는 인지하는 분류기준이 서로 큰 차이를 보였다. 설령 분류가 되었더라도 분석지표를 적용하는 것도 차이를 보였으며, 기준과 지표에 가치를 반영하면서 치열한 논쟁이 수반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공동작업을 통해 분류한 중간결과물을 가지고 지역별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도 이러한 과정이 현재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가 가지는 시사점일 것이다.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현재의 기후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대책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 마찬가지다. 지자체의 예산이 직접적으로 온실가스를 발생하는 사업보다는 이를 촉진하거나 유지하는 인프라에 배정되는 예산이 대부분이기에 이를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지 정량적으로 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더 깊은 곳에서 시민의 눈높이가 중요한 이유이다.
인지예산서, 유명무실한 제도로 남지 않기 위하여
우리나라의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는 갈 길이 멀었다. 제도 시행 단계 초기라는 것을 감안하고 볼지라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 또는 기후인지 예산서는 온실가스감축목표에도, 기후위기 대응에도 응답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하기에 더더욱 제도 도입 초기 단계에서 면밀히 검토하고 시민들과 같이 기후위기 대응의 측면에서 재정사업을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자체 출연기관이 분석 작업을 진행하면 한계가 분명하다. 기존 관점에서 국가와 지자체가 온실가스를 감축 또는 배출하는 사업에 대해 평가하고 분류지표에 반영하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수소산업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 전기차 보급사업을 어떻게 볼 것인지 등이다. 이를 통해 분류하고 그럼에도 일정 기간 해당 사업을 유지하는 동안 변화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그 변화의 지점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제시하여, 제도가 무사히 안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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