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국회 다니는 변호사' 연재가 드디어 20회를 넘겼습니다. 보다 심층적이고, 흥미로운 내용들로 내년에도 찾아뵙겠습니다.
작년과 올 한해를 요약하는 키워드를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인플레이션'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살기가 너무 힘듭니다. 저도 국회 앞에 즐겨 찾는 곰탕집이 있는데 곰탕 한 그릇 값이 1만5000원 합니다. 고기 좀 더 먹으려고 '특'을 시키면 1만8000원을 내야 합니다. 서민들 음식인 곰탕 값이 1만5000원이라니, 믿겨지지 않지요. 그런데 딱히 고기 양도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택시비는 어떻습니까? 서울시내 기본요금은 이미 3800원인데다가, 강북에서 강남까지 이동하려면 2만 원이 넘은 지 오래입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더니, 소분한 딸기 1박스가 1만 원이 넘더군요. 손이 안 갑니다.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이런 고물가가 실감이 되실 겁니다. 코로나19의 종식과 함께 미국의 금리인상이 가파르게 이루어지고, 아울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상승한 탓이죠. 2022년은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5.1%, 2023년도 평균 3%이상 상승하고 있지요. 대표적으로 소비자 체감물가라 할 수 있는 신선식품가격은 12.7%(2023.11월 기준, 전년동월비), 전기·가스·수도요금의 경우 9.6%(2023.11월 기준, 전년동월비)가까이 상승했습니다.
엄청난 고물가로 서민들만 고통받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들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해야 하는 기업들로서도 엄청난 어려움들이 있지요. 한국전력의 경우 총부채가 201.3조원을 넘어섰고 내년도에 많은 기업들이 도산위기에 있다는 것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부로서도 전기요금을 올리자니 국민들 눈치, 특히 선거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죠. 한국전력으로서도 미치는 상황일 겁니다.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는데, 정부는 올리지 말라고 압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민간기업들로서야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원가 절감은 물론이고, 인력 구조조정을 비롯한 자구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죠.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눈속임을 통한 빼기(슈링크, Shrink)'일 것입니다.
사실 소비자들로서는 이러한 정보들을 잘 모릅니다. 과자 양이 줄고, 만두 갯수가 줄고, 맥주 밀리리터 수가 줄고, 젤리 개수가 줄고, 이런 꼼수들이 동원이 되는 거죠. 한국은 특히 과자의 경우 부피가 큰 편인데, 질소 공기 투입을 많이 해서 '질소 과자'라는 오명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크게 양을 줄이지 않고서는 잘 모릅니다. 예민한 소비자들이 이를 알고 인터넷에 양이 줄거나, 개수가 줄었다고 비교한 포스팅을 올리면서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저도 어떤 과자를 매우 좋아했는데, 모르는 새 크기가 줄었습니다. 과자 하나를 입에 넣으면 3번 정도는 우물거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2번에 끝나더라고요.
고물가 시대에 기업들이 가격을 올리자니,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것 같으니 생각한 방법이 바로 슈링크입니다.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일은 아닙니다. 미국, 유럽에서도 세제 용량을 빼고, 호텔의 컨티넨탈 브렉퍼스트 식사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식사 품목을 한두개씩 빼고….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디즈니같은 경우 같은 티겟 가격에 주차장을 오가는 트램을 서비스하지 않겠다가 소비자들 불만에 이를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방법도 다양하죠. 직원 수를 줄이거나, 서비스의 품질을 낮추거나, 제조과정에서 고품질 재료를 저품질재료로 바꾸는 등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치킨 프랜차이즈 회사가 올리브유를 다른 저품질 기름으로 대체한다는 기사가 난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가격은 일정하게 유지하지만, 서비스의 품질이나 사용성을 줄이는 것을 지칭해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도 지난 주 경제장관회의에서 이러한 '슈링크플레이션'을 제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앞으로는 마트나 온라인에서 파는 식품·세제·표백제 등 생활제품에서 제조사가 용량을 줄이면 포장지에 변경 전후의 용량을 모두 써놓으라는 겁니다. 원재료 용량을 줄이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소비자에게 고시하지 않고 제품의 용량이나 원재료 함량을 줄이면 소비자기본법상의 '사업자 부당 거래행위'로 보아 공정거래위원회가 최대 3천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입니다.
경제상황이 끊임없이 변하니 기업들도 생존해야 하고, 정부가 기업에게 가격을 올려라 마라 할 수는 없는 것이죠. 반면, 정부는 물가 안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 최소한의 정부규제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는 당신들 제품이 250그램이라는 것을 믿고 상거래 관행을 형성한 것이다. 소비자는 그만한 만족을 누릴 권리가 있고, 당신들이 소비자 관행에 변화 요소를 가져올 것이라면 공정하게 고지하라'는 취지입니다.
이에 국회에서도 '슈링크플레이션'을 법으로 막겠다고 나섰습니다.(황희 의원) 취지는 정부의 법안과 동일합니다. 다만 전방위에 걸쳐 이를 입법 규제로 발의했다는 점이 다릅니다. 소비자기본법,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등 4개의 법안을 고쳐 총체적·입체적으로 규정하겠다는 겁니다.
아마 이 법안은 처리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을 정부 고시로도 추진할 수 있는 것이지만, 법률로서 이를 규정할 경우 기업-소비자의 법률적 관계가 더 선명해지는 측면도 있겠지요.
물론 기업들로서는 불만이 가득할 일입니다. 물가상승의 원인을 정부가 해결해주지도 못하면서 기업들에게 압박만 가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내지는 다른 규제들도 많은데, 이러한 행위규제까지 가하느냐며 볼멘소리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소비자로서는 소비행위에서 자신의 알 권리를 지키게 되는 것이고, 기업의 ESG관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죠. 이러한 법 제도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공정한 시장경제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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