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돌림'은 학교나 회사에서만 발생할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가톨릭대 심리학과 조성호 교수는 2016년 3월 한 신문에 기고한 '정치적 집단 따돌림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정치집단에서도 따돌림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데 특정인을 희생양 삼아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행해질 수 있다"고 했다.
당시 집권 여당의 공천잡음을 보면서 기고한 글인데 특히 조성호 교수는 "자기 정당화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상대방에 대한 공격 행위가 더 가혹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새만금이 겹쳐진다.
프레시안전북본부가 2023년 8월 7일 '새만금잼버리대회'가 파행으로 막을 내린 이후 집권여당과 일부 언론이 새만금과 전북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퍼부었던 공세를 진단하면서 시작했던 '새만금잼버리 리포트'가 벌써 50회에 이르렀다.
결론부터 말하면 새만금은 정치적 '집단 따돌림'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다.
'새만금잼버리 리포트 41'의 제목은 "새만금 예산만 콕 집어 대규모 삭감...칼질한 5100억 어디에 반영했나?"였다.
11월 1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전체 회의에서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새만금 예산삭감과 관련해 상임위 표결을 거부하고 전원 퇴장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국민의 절박한 심정을 듣겠다"고 선언한 상태였지만 새만금에 대해서는 귀를 막고 있었고 새만금 예산 복원을 요구하며 지난 수 개월동안 분출됐던 전북도민의 절박함은 논의의 대상였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와 절차를 거쳐 기재부는 새만금 예산만 콕 집어 삭감했던 것일까?
단지 한덕수 총리가 얘기한 "'빅피쳐'를 그리기 위해서"라는 것이 현재까지의 유일한 답변이다.
'새만금잼버리 리포트 41'에서 다뤘던 내용은 "대구경북 신공항건설사업 100억, 가덕도신공항건설사업 5363억, 더구나 예타를 통과하지 못한 충남 서산공항까지 10억 원등 대부분 사업들이 각 부처 요구안대로 100% 반영됐고 특히 가덕도신공항사업은 부처 요구액 1648억 원보다 3배 이상 많은 3716억 원이 더 늘어난 5373억 원이 내년 정부예산안으로 반영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부분에서 새만금국제공항에 대한 따돌림 현상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유일하게 새만금국제공항건설사업은 국토부에서 당초 580억 원을 요구했으나 무려 89%가 삭감된 66억 원만 반영된 것이다.
당시 분위기를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은 "정부가 새만금 예산삭감이 당연하다고 버텼다"고 전했다.
2022년 6월 29일 국토교통부는 "새만금국제공항 건설 가시화...30일 기본계획 고시, 하반기 설계착수, '2029년 개학 목표로 총 8077억 투입'"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보도자료에서 "새만금 지역 개발촉진을 위한 새만금국제공항개발사업 기본계획을 6월30일 수립.고시하고 ‘28년 완공을 위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었다.
새만금국제공항은 "항만,철도와 함께 새만금지역의 육.해.공 '물류 트라이포트'를 구성하는 핵심 기반시설인 만큼, 새만금지역의 민간투자 유치 촉진, 전북권 경제활력 제고 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런데 기본계획까지 확정 발표된 정부 계획이 불과 1년 여 만에 번복 된 것이다.
집권여당은 이에 대해 "새만금국제공항이 수요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새로 짜게 될 새만금기본계획(MP)재수립 안에 포함시켜 중장기적 사업으로 전환하는 방향을 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불과 1년 여 전에 고시된 기본 계획임을 잊은 듯하다.
'수요'를 얘기한다면 전국 신규공항의 경제성 진단을 다시 꺼내 살펴 봐야 한다.
2022년 4월 하순 가덕도신공항 관련 언론들의 기사 제목을 보면 "경제성 낮은데도...가덕도신공항, 완전 '해상공항'으로 만든다",'예타면제 앞둔 가덕고신공항 경제성 "매우 낮음"이 눈에 띤다.
국토교통부는 2022년 4월 26일 "총사업비 13조 7000억 원을 들여 국내 최초의 '해상공항'형태의 가덕도신공항 건설 추진계획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힌다.
이같은 내용들을 다룬 기사 내용에서 "문제는 사전 타당성 조사 결과 가덕도 신공항의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특히 눈에 들어 온다.
가덕도신공항 건설의 비용대비 편익 비율은 0.51~0.58로 이 비율이 1 이상이 나와야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데 전국 공항 가운데 누적 손실이 가장 큰 공항중의 하나인 무안공항의 경제성 분석결과 0.49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런데도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로 가덕도신공항 건설사업의 정책적 추진이 확정됨에 따라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추진했다.
당시 국토부 관계자는 "경제성이 낮아도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며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으로 공항 건설을 위한 절차를 대폭 생략, 간소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물론 양양공항과 무안공항 등 현재 지방에 위치한 공항이 '개점휴업'상태이거나 '만성적자'인데 또 무슨 지방공항 건설이냐는 지적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논리에 엎치락 뒤치락 해온 공항 건설 사업에서 유독 새만금국제공항건설 사업 예산만 '수요가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2024년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은 논리적 타당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하다.
가덕도신공항은 김해공항의 국제선만 이전하다는 전제로 오는 2065년에 예상 수요는 기준 여객 2336만 명이 예측됐으며 새만금국제공항 역시 2017년에 발표된 국토부 '새만금 신공항 항공수요 조사 연구'에서 2030년 109만 4252명, 2055년에는 210만 3553명(유발 수요 포함)의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 바 있다.
가덕도신공항은 2030 부산엑스포 유치를 가정해 예타를 면제받았는가 하면 완공 시기를 무려 5년이나 앞당겼고, 2024년 예산도 처음 부처 요구액은 1648억 원이었으나 이보다 3배 이상 많은 5363억 원을 정부 예산안으로 반영시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처참한 성적으로 유치에 실패했다.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정부는 유치 예산만 5000억 원을 썼다. 재도전에 앞서 감사원 감사부터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비롯해 여권에서는 '가덕도신공항 건설사업은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하면서 부산시민들을 위로했다.
'새만금잼버리 리포트 48' "위로받지 못하는 전북"에서 이 문제를 짚었다.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에 대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사과하면서 "부산은 다시 시작한다. 부산 이즈 비기닝"을 얘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만금에서도 '시작'이라는 단어를 말한 적이 있다.
윤 대통령은 새만금잼버리대회가 시작하는 날 개영식에 앞서 열린 '새만금2차 전지 투자협약식'에 참가해서 "플랫폼 조성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하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새만금잼버리가 파행으로 종료된 이후 지금까지 전북과 새만금에 대해 일체 언급이 없다.
대신 전북도와 전북도민은 집권여당과 일부 언론으로부터 '잼버리대회 준비에 소홀해 세계적인 망신을 자초한 주범'으로 몰리며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았다.
전북도민들은 '새만금잼버리를 핑계로 국가예산 11조 원을 빼먹은 예산도둑'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으며 관련 공무원들은 '잼버리 사전답사를 명목으로 외유성 여행이나 즐긴 파렴치범'으로 몰리는 수모를 겪었다.
이같은 과정을 의도가 있는 '정치적 집단 따돌림' 현상 외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새만금잼버리 리포트 27'(23.10.3)에서는 정부를 믿고 새만금에 투자한 기업들의 애로 사항과 함께 전북도의회가 새만금 SOC예산 삭감과 관련해 위법소지가 많다면서 감사원 감사를 촉구한 내용을 다뤘다.
기재부의 새만금 예산 삭감은 '잼버리 파행에 따른 감정적 대처'이면서 '기재부가 정한 예산 관련 각종 지침을 스스로 위반한 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새만금산단이 투자진흥지구와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지정되면서 외국인기업과 민간투자가 활발해지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철도와 공항 등 새만금기반시설이 차질없이 추진될 것으로 믿고 투자했는데 느닷없는 새만금SOC예산 삭감은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한 민간 투자자의 기대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새만금 주요SOC 예산삭감은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새만금잼버리대회가 종료된 지난 8월 7일 이후부터 그 달 29일 사이, 불과 20여 일 만에 이뤄진 일이다.
'새만금잼버리 리포트 18'의 제목은 "정부 주도 국가사업의 또 다른 이름은 '유권자 길들이기 사업'"였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입에 발린 공약을 남발하는데 여야가 따로 없다. 표가 걸려 있으면 불가능한 사업도 가능한 사업으로 호도된다.
더불어 특정 정당이 '집토끼' 지키기에 나서면 어느 한 지역에서는 '따돌림 현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새만금사업은 역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마다 전북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단골메뉴가 됐다가 이제는 '왕따사업'으로 전락했다.
'새만금잼버리 리포트 10'의 제목은 "국토균형개발사업, 정치와 마주치면 한낱 '정쟁꺼리'로 추락"였다.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지방시대는 균형발전이라는 국토공간의 공정, 지방분권이라는 중앙권력이 공정이 이뤄진 나라"라고 설명하면서 "국토균형발전은 이념이나 진영논리를 넘어선 헌법적 가치"라고 강조한 바 있다.
지역과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한 국가적 사업에 대해 합리적인 분석과 미래지향적 검토 과정도 생략한 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예산부터 난도질하고 기본계획까지 재검토하겠다고 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은 아닌지 다시금 살펴 볼 일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