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몽돌이 빛을 먹어 백일홍이 검붉게 타고 있는 파도가 마린불루 속으로 잠수한 오후 2시의 바닷가에 도착했다."
하영란 시인이 2일 김해도서관 시청각실(3층) 북콘서트에서 한 말이다.
하 시인은 "솔직히 6년 동안 공부하면서 쓴 시(詩)가 이 시집이다"며 "호모 사케르라는 인문학 강연에서 저는 사실 충격을 받았다"고 살짝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뭔가 의미를 가지고 이 땅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 같지만, 사실은 정치적으로 이용이 가능할 때는 엄청나게 띄웠다가 이용 가치가 없을 때는 완전히 벌거벗은 생명으로 죽는다. 그러니까 희생 제물로 바칠 수는 없지만 살인할 수는 있는 인간이 바로 호모 사케르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 시인은 "저한테 계속 철학 철학 얘기하니까 사실은 되게 많이 부담스럽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철학을 되게 좋아했었고 또 국문학을 하면서 철학이 바탕이 안되면 논문도 쓸 수가 없어 사유 자체가 아예 불가하다"고 밝혔다.
하 시인은 "예전에는 저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었다"며 "근데 의미는 도달할 수 없는 역이다. 그래서 저는 의미가 되기보다도 하나의 작은 물결이 되고 싶다. 하나의 물결이 이렇게 톡 가면 그 사람을 톡 치고 또 조그마한 물결이 탁 치진다. 그러면서 계속 사랑이 전파되는 것이니까 우리가 과잉 의미를 가지려고 했을 때 이 세계는 폭력 속에 휘말린다"고 말했다.
하 시인은 "씨실과 날실로 남는 게 시간과 공간이다"면서 "제가 몇 년을 공부하면서도 잘 몰랐다. 왜 시간과 공간을 이토록 이 철학자들이 많이 얘기하는지, 우리는 시간 안에 살고 있고 장소도 시간성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밝혔다.
시집 제목 <미안한 방향>에 대해 그는 "이 시대가 미안할 수 밖에 없는 미안함의 방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 이유는 저는 욕심이라 생각한다"며 "매끄러움을 좋아하는 욕심 그러니까 저는 미안함을 자연 속에서 많이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 시인은 "민들레는 민들레 밭에 있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민들레가 장미 화단에 있을 때 매끄럽지 않고 뭔가 상반되면 우리는 뽑아 버리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고 비유했다.
하영란 시집 <미안한 방향>은 이렇게 쓰여졌다.
하단에 핀 민들레꽃이 미안해 했다
단아한 꽃밭에
우연히 날아들어 미안하다고
제멋대로 꽃을 피워 미안하다고
경계를 넘어선 자의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래, 나도 미안하다
뽑을 수 밖에 없어서 미안하다
여기는 네가 뿌리를 내릴 곳이 아니야
매끈한 것을 좋아하는 구역이야
날아가는 것도 방향을 잘 봐야 해
바람을 잘 타고 날아가야 해
오류의 방향이 평생을 좌우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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