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준연동형 유지' 대 '병립형 회귀' 선거제 개편안을 두고 마지막 갈림길에 선 가운데, 이재명 대표가 병립형 회귀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은 직후 당내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 대표 최측근인 김영진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은 29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선거제는 여야가 합의해서 가는 게임의 룰인데, 게임의 룰을 민주당만의 가치, 민주당만의 방향으로 '이것이 아니면 나쁜 것이다, 선과 악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의 선거법 단독 통과라는 과오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가장 잘못됐던 것은 현재의 야당 연합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을 단독 통과했던 것"이라며 "이로 인해 위성정당이라고 하는 가장 나쁜 형태의 정치적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1987년 민주화 이후, 1988년부터 현재까지 한 40년 정도의 국회의원 선거 과정상에서 단 한번도, 아무리 여야 간의 대립이 극단으로 대치했더라도 여야 합의를 통해서 사실은 선거법이 결정됐다"며 "그걸 깬 게 2020년이라 거기에 대해서 제가 보기에는 이제는 민주당이 결자해지해야 된다. 잘못된 것이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여야가 합의해서 가자라는 정신을 살리고 논의하고, 병립형이든 준연동형이든 다 열어놓고 얘기할 수 있다"라고 했다.
친명계 진성준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병립형 회귀를 직접적으로 주장했다. 진 의원은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할 경우 국민의힘이 제1당이 될 것이라는 당 내부 시뮬레이션 결과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 비례의석을 많이 가져가게 되니까"라며 "그렇게 되면 윤석열 정권을 견제하거나 그 퇴행을 막기는커녕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정치의 이상적인 모습을 약속한 것과, 당면한 총선 현실에서 지금 무엇이 가장 선차적인 정치적 과제냐를 놓고 비교 판단해야 한다"며 "(준연동형 유지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겠다라고 하는 당초의 당의 방침이나 목표와는 영 상반되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라며 병립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어 '병립형 회귀에 찬성하는 민주당 의원이 많나'라는 질문에 대해 "저는 많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절반을 넘느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당 내 70여 명의 의원들이 위성정당 방지와 준연동형제 고수를 주장하는 데 대해서는 "민주당에 소속되어 있는 의원들이 다당제가 지고지선이라고 자꾸 주장하면서 '민주당의 의석을 헐어가지고 다른 소수 정당들이 국회에 많이 진출하게 하자'고 하는 게 자기모순 아니냐? 자가당착 아닌가?"라며 "그분들은 왜 그러면 민주당에 소속되어서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서 노력하시는 거냐. 민주당에 남아서 정치할 이유가 뭐가 있나? 다른 정당을 해야 되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앞서 이재명 대표는 전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 방송을 통해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현실의 엄혹함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 또는 준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하되 위성정당을 인정하는 체제로 가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낙연·김부겸에 친문 홍영표, 친명계 일부도 "소탐대실"
반면 준연동형 유지와 위성정당 방지를 오랫동안 주장해온 김종민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거 승리를 위해서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선거제 퇴행으로 가겠다는 얘기다. 이건 우리가 알던 민주당이 아니"라고 전날 이 대표 발언을 정조준했다. 김 의원은 "옳지도 않거니와 이렇게 하면 이길 수도 없다. 소탐대실의 길"이라며 "조그만 장사를 하더라도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이런 식으로 장사하면 망한다"고 했다.
이어 '약속이고 원칙이고 모르겠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겠다'고 덤비면 민주당은 영원히 못 이긴다"며 "이쪽 방면으로는 기득권 세력이 훨씬 더 실력이 있고 잘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무리 선거에서 이겨도, 의석수가 많아도 신뢰를 잃으면 정치는 무너지는 것이다. 이겨서 신뢰를 얻는 게 아니라 신뢰를 얻어야 이긴다"고 꼬집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오랜 침묵을 깨고 '병립형 회귀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놓았다. 김 전 총리는 29일자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어렵사리 물꼬(준연동형 비례제)를 트고도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치를 희화화시킨 정치권이 다시 퇴행의 길을 가려 한다면 국민의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 발전을 가늠케 할 제도가 후퇴하면 안 된다는 절박감, 후퇴를 막아야 하는 게 민주시민의 의무라는 생각에서 입을 열게 됐다"면서 "민주당 지도부가 단호한 자세를 보여야 할 때라 간곡히 호소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터뷰는 김 총리가 지난해 5월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정계를 은퇴한 뒤 진행한 첫 인터뷰다. 김 전 총리는 이번 인터뷰가 정치 재개 차원이 아니라고 설명하면서도, "내가 기여할 상황이 되면 움직이겠다"며 역할론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어 '위성정당을 안 만들면 원내 1당이 어렵다'는 현실론이 당내에 퍼지고 있는 데 대해 "위성정당 창당 방지법을 만들면 된다"며 "윤석열 대통령도 이 법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이 원칙을 지키면 국민의힘도 지킨다. 현실적인 유혹은 있겠지만 불리하다고 그 유혹에 넘어가면 국민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는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란 걸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친문 중진 홍영표 의원도 이날 오후 SNS에 쓴 글에서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라는 극단의 생각은 민주당의 길이 아니다"라며 "병립형으로 회귀하거나 준연동형을 유지하면서 위성정당을 내는 것은 결코 안 된다는 것이 민주당의 길이어야 한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정치를 해야 선거에 이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민정·김두관·민병덕·민형배·송재호·이학영·장철민 의원도 이날 오후, 지역구 후보자 추천 수의 1/5이상 비율로 비례대표를 추천하도록 하는 위성정당 방지법 발의 기자회견을 열고 "연동형비례를 사수하고 위성정당을 금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지역구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힌 이탄희 의원의 결단과 희생을 지지한다"며 "병립형과 위성정당은 소탐대실"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당초 29일로 예정됐던 의원총회를 하루 미루기로 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부산 엑스포 유치 불발로 인해 전 국민이 상심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선거법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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