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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의 성리학 도입 이전에 '김구(金坵) 부자'의 유입 가능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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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의 성리학 도입 이전에 '김구(金坵) 부자'의 유입 가능성 높아"

'문정공 지포 학술대회'서 박도식·김병기 교수 주장

안향에 의한 국내 성리학의 도입 이전에 이미 국내에 주자 성리학이 보급됐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논문이 잇따라 발표돼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일반적인 성리학 수용과정이 '안향-백이정・우탁・권부-이제현-이곡-이색'으로 알려졌으나 안향의 도입 이전에 고려에서 파견된 사신이나 정동행성 관원, 유학제거사(儒學提擧司), 원 제과(元制科) 급제자 등을 통한 수용의 가능성에 문을 열어 둔 것이다.

박도식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는 24일 전북 부안군청에서 열린 제13회 문정공(文貞公) 지포(止浦) 김구(金坵)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김구의 4자 김승인이 중건한 강릉향교의 한국 유학사적 위상'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같은 내용을 주장했다.

▲박도식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 ⓒ프레시안

박도식 교수는 같은 논문에서 '고려 인종 원년(1123)에 북송의 노윤적 일행의 사절단이 고려를 방문했을 때 인종이 그들에게 양시의 안부를 물었다면 적어도 이보다 앞선 시기에 양시의 존재가 이미 고려 조정에까지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고려 지식계에 어떤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을 것이라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어 '당시 70세가 넘도록 중앙정계에 등용되지 못하고 지방관을 전전하면서 강학에 종사해 왔던 양시의 존재가 언제 어떠한 경로를 통해 고려 지식계에 알려지게 되었던 것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이 시기 주된 인적 교류로는 양국을 왕래하던 사절단원, 북송에 파견된 고려의 유학승과 유학생, 고려에 귀화한 북송 지식인, 그리고 양국을 빈번하게 왕래하면서 해상 무역에 종사하던 송나라 상인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당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고려사절단의 빈번한 북송 사행'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제현의 '역옹패설'에서 언급된 글을 인용해 '원으로부터의 성리학 전래 이전에 남송으로부터 직접 전래된 주자성리학이 안사준(安社俊) 같은 재야학자에 의해서 이미 이해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고려말 주자성리학이 안향~이색 등을 통한 수용 이외에도 고려에서 파견된 사신, 정동행성 관원, 유학제거사(儒學提擧司), 원 제과(元制科) 급제자 등을 통한 수용되었다는 점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특히 원의 간섭하에 있었던 고려는 후자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는 것이 박 교수의 견해다.

김구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는 것은 김병기 전북대학교 명예교수의 주장이다.

김병기 전북대 교수는 이날 같은 자리에서 발표한 '周世鵬의 安珦 崇慕와 白雲洞書院 창건과정에 비춰본 扶安 道東書院의 의의'라는 논문을 통해 안향의 성리학 도입 역할관련 기사를 검토하고 김구 부자의 유학부흥 선도와 성리학 도입 역학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명했다.

김 교수는 김구의 유학 부흥 의지와 남송성리학 접촉 가능성을 열어두고 김구의 아들인 김여우와 김승인이 유학부흥과 성리학 도입에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김 교수는 "원나라에 머물던 김구의 아들 김여우는 원 세조가 '고려에서는 문묘를 세워 공자를 모시고 있는가?'라고 묻자 임기응변으로 '그렇다'고 대답하고 귀국 후 서둘러 당시 강릉 안무사로 있던 아우 金承印으로 하여금 강릉에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교육과 제향의 기능을 겸한 형태의 향교를 건립하게 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하 있다"고 강조한다.

또 "김구는 외교를 통해 고려가 유가의 학풍을 숭상하고 있다는 말을 원나라 황제에게 전했는고 이에 원 세조는 공자 집안의 족보인 『祖庭廣記』 한 부를 보내주는데 김구는 "유가의 도가 동쪽으로 오게 되어(道東) 기쁘다"는 소회를 王鶚에게 보내는 편지에 남겼다. 이는 김구 유학부흥 의지가 이룬 성과이자, 道東서원의 명칭 유래가 된 자료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이러한 사실들을 들어 안향보다 32살 많았던 김구와 그의 아들들의 행적이 성리학의 도입에 안향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김 교수는 "오늘날 안향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고 있는 『회헌실기』는 제목은 『회헌실기』이지만 안향 當代에 실지 상황을 기록한 책이 아니라, 500여년 후에 그 동안 생산된 안향에 대한 기록들을 망라하여 엮은 책"이라며 "안향이 우리나라 최초로 성리학을 도입한 인물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회헌실기』에 대한 검증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가 주장했다.

▲24일 오후 전북 부안군청에서 열린 제13회 문정공 지포 김구 학술대회에 앞서 이정석 부안부군수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부안군
▲24일 오후 전북 부안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13회 문정공 지포 김구 학술대회에 앞서 발표자와 토론자,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으 하고 있다. ⓒ프레시안

이날 학술대회는 부안군과 전라북도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호남고전문화연구원(이사장 김기현)이 주관한 가운데 약 300여명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올해로 13회째 진행되는 이날 학술대회는 ‘지포 김구와 부안 도동서원의 한국유학사적 위상’이라는 주제로 윤재민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명예교수의 기조 발표를 시작으로 문혜정 전북대교수의 ‘지포 김구 한시(漢時)전집(全集)정본화(定本化)와 전주(箋註) 전석(全釋)’, 박도식 강릉원주대 교수의 ‘김구의 4자 김승인(金承印)이 중건한 강릉향교의 한국 유학사적 위상’, 김병기 전북대교수의 ‘주세붕(周世鵬)의 안향(安珦) 숭모(崇慕)와 백운동서원(白雲東書院) 창건에 비춰본 부안(扶安) 도동서원(道東書院)의 의의’, 이원석 전남대 교수의 ‘지포 김구와 원대 초기 유학계의 상황’, 김진돈 전라북도 문화재위원의 ‘지포 김구 선생 후손의 중요 금석문 연구’ 등의 학술 논문 발표 이후 종합토론이 진행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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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홍

전북취재본부 김대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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