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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주의자 매뉴얼을 읽는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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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주의자 매뉴얼을 읽는 요령

[프레시안 books] <#가속하라>

<#가속하라>는 '가속주의자 독본'이라는 부제가 알려주듯 가속주의자들의 일종의 매뉴얼로, 관련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가속주의는 원래 하나로 정리된 사상적 흐름이나 일관된 정치적 입장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와 기술의 발전에 대해 비판이 아니라 오히려 가속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한 일련의 사상과 실천적 움직임을 통칭한다. 편집자인 로빈 맥케이와 아르멘 아바네시안은 가속주의에 대한 이런 다양한 해석과 오해를 불식시키면서 오늘날 좌파 가속주의라고 불리는 정치적 입장에 초점을 맞추어 그 사유에 단초를 제공했던 과거 사상가들의 글들과 실제로 가속주의자로 분류되는 다양한 사상가들의 글들을 한데 모았다.

가속주의자들은 우리 모두가 가속주의자라고 단언한다. 적어도 변화의 속도에 있어서 오늘날이 기술-과학발전과 그로 인해 인간의 삶과 사회적 변화가 가속화된 시대임에 틀림없으며, 원하든 원치 않든 그러한 변화에 최대한 적응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는 한, 현대인은 모두 가속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속주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셈이다. 따라서 가속주의에 대한 대강을 이렇게라도 모아놓은 이 책은 가속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예견, 발효, 사이버문화, 가속 등 총 네 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앞의 두 부에는 가속주의적 사유를 선취한 글들이, 그리고 뒤의 나머지 두 부에는 가속주의자로 분류되는 사상가들의 글들이 실려 있다. 1부 '예견'은 마르크스를 비롯해서 기술 또는 기계, 그리고 과학의 발전이 인간과 사회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 19세기와 1900년경의 글들을 싣고 있다. 그리고 2부 '발효'는 자본으로부터의 해방을 자본주의의 탈코드화하고 탈영토화하는 역량에서 찾으려는 들뢰즈·과타리의 사유와 이를 확장한 리오타르의 사유를 중심으로 한 20세기의 글들을 모았다. 사후적인 발견과 재구성이지만 꽤 그럴듯하게 짜 맞추어서 마치 진짜 가속주의의 역사적 계보를 대하는 느낌이다, 3부 '사이버문화'는 가속주의의 원조이자 우파 가속주의로 분류되는 1990년 닉 랜드와 당시 그와 함께 활동했던 CCRU그룹의 글들을 모았고, 마지막 4부 '가속'에서는 2013년 닉 서르닉과 알렉스 윌리엄스가 <#가속하라: 가속주의 정치선언>이라는 글을 발표한 이후 좌파가속주의로 분류되는 사상가들의 글을 모았다.

"가속하라"라는 용어는 사실상 편집자들이 지향하는 좌파가속주의의 주요한 사상적 입장이라기보다는 해시태그를 통해서 이를 널리 확산하기 위해 전술적으로 선택된 용어이다. 그 결과로 가속주의라는 용어는 널리 알려졌지만 그만큼 오해와 오용도 많았다. 이를 바로잡고자 이 책이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크게 변하지 않은 채, 이해와 오해를 넘나들며 수많은 가속주의의 남발을 초래했다. 그래서 이제는 이 책이 출간된 2014년 이후 등장한 이들 가속주의만 모아서 다시 한 권의 책을 내야 할 지경이다.

가속주의의 미덕이자 이 책이 지닌 미덕은 기존 진보 진영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그에 대한 대안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지점이다. 기술-과학의 발전으로 우리 삶과 사회에 기술-과학이 하나의 구성요소로서 내재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지만 기존 좌파의 대응은 자본이 남용하는 기술발전을 비판할 뿐이었다. 이는 단순히 기술에 대한 몰이해를 넘어서 기술-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인간과 사회의 변화, 즉 현실에 대한 몰이해를 뜻하며, 따라서 변화와 혁신은커녕 진보세력이 담당해야 할 건강한 견제기능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로빈 맥케이는 "어느 경사면인가? 우리가 과정을 통제할 수도 없고 감속할 수도 없다면, 우리로 하여금 어떤 중대한 문턱을 넘어가게 할 개연성이 가장 높은 것은 무엇인가? 어떤 문화적 벡터들이 인간과 그 문화적 환경을 미지의 영토로 끌고 갈 가장 큰 견인력을 갖고 있는가"라고 묻고 아래로 질주하는 대신 가장 가파른 경사면을 찾아서 거슬러 올라야 한다고, 매진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무조건 가속하자가 아니라 어디에 어느 방향으로 매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가속주의는 정치 플랫폼으로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아직 묻지도 답하지도 않았다며, 사실상 기존 진보를 비판하는 정치적 입장을 견지했던 출간 당시에 비해 맥케이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훨씬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가속주의의 원조인 닉 랜드도 처음부터 우파는 아니었고, 정치적 진보와 좌파를 자임했던 좌파가속주의는 지난 10년 사이 당시의 입장이 많이 완화되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모음집에서 간과한 사이버네틱스와 리오타르의 후기 사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이데거가 사이버네틱스를 읽고 형이상학의 종언을 이야기했던 것이나,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의 조건을 지식, 즉 앎의 조건의 변화에서 찾으면서 1980년대에 쓴, <비인간>에 실린 글들에서 담고 있던 사유는 사이버네틱스가 단순히 계산기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식론적 단절과 인간중심적인 존재론에서 모든 사물의 어떤 공근원적 존재론으로의 존재론적 전환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육후이는 2019년 <포스트모던의 조건> 출간 40주년 기념 컨퍼런스에서 <우리 이후의 리오타르>라는 글을 발표했다. 글의 제목은 리오타르의 사유가 현재의 우리보다 앞선다는 것을 시사한다.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은 과학과 기술에서 발생한 인식론적 단절의 관찰 및 기술에 입각한 것이었으나 발표 당시 그의 의도는 이해되지 못했다. 그는 더 이상 확실성과 안정성을 앎의 필연적인 기반으로 보지 않으며, 오히려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앎을 기반으로 반성, 즉 재귀성의 역할과 중요성을 읽어냈다. 그래서 육후이는 포스트모던의 패러다임이 시스템 자체가 자기정당화, 자기조직화할 수 있게 된 상황이라고 말한다.

육후이의 말대로 리오타르가 본 것이 시스템의 승리, 즉 에피스테메로서의 오픈 시스템의 승리라면, 이 책에 실린 들뢰즈·과타리의 자본주의의 간단없는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는 엔트로피에 저항해서 오픈시스템이 자기조직화하는 과정으로 이해되며, 이때 자본주의의 외부로 상상한 것들은 다시 자본주의의 내부로 편입될 것이다. 그래서 리오타르는 이 자본의 조직화를 거역하는 리비도적 욕망을 이야기하던 1970년대를 거쳐 1990년에 쓴 <벽, 페르시아만, 태양>에서는 자기 관리하는 오픈시스템은 그 시스템의 발전에 기여하는 이외의 방식으로 이끌 수 없는 듯이 보인다고 적고 있다. 어떤 면에서 리오타르는 닉 랜드의 우파로의 전향과 좌파 가속주의의 지금의 감속을 이미 선취하고 있었던 셈이다.

시스템은 기술의 발달에 따라 더욱 확산되기 때문에 이 책이 쓰인 십년 전과 팬데믹을 거치고 ChatGPT가 일상을 바꾼 오늘날 우리가 사이버네틱스에 대해 느끼는 실감은 전혀 다르다. 노버트 위너는 <사이버네틱스>에서 기존 물리학에서의 물질과 에너지 대신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면서, 인간과 동물, 기계, 심지어 물질도 무차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닉 랜드는 리오타르처럼 이 사이버네틱한 과정에 공감했고, 좌파 가속주의는 사이버네틱스의 재귀적인 과정에 개입해서 벡터를 조정하고자 한 것이라고 읽을 수 있다. 따라서 가속주의의 계보를 재구성하면서, 사이버네틱스와 리오타르의 후기 사유를 담은 글을 싣지 못한 것은 가속주의자 독본으로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속주의는 동시대의 건강하고 시의적인 진보를 구상하는 모든 이들, 특히 젊은 세대에게 풍부한 영감을 제공하며, 이 책은 그런 내용들을 충실히 담고 있다. 이 책은 책이 간과하고 있는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이해와 그 사유를 진전시킨 리오타르의 후기 사유 및 최근 육후이의 사유를 함께 읽으면 좀 더 유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받은 영감을 실제 정치에서 유효한 실천전략으로 만들어 실행하는 것은 이런 함께 읽기를 통해서 독자들이 연구와 상상력을 동원하여 찾아야 할 숙제인 셈이다.

▲<#가속하라>(로빈 맥케이, 아르멘 아바네시안 엮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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