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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고의기권 의혹’ 체조협회, 사안 조사도 부실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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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고의기권 의혹’ 체조협회, 사안 조사도 부실 정황

"관련자들 사실확인서만 받고 종결" VS "절차 통해 심의 진행"

지난 2018년 열린 ‘제73회 전국종별체조선수권대회’에서 일부 학생선수들이 지도자의 강압에 의해 고의기권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관련기사 ☞ "체조 국대 포함 일부 선수들, 옛 지도자 지시로 고의 기권" 의혹 제기·본보 11월 20일자 보도>된 것과 관련해 대한체조협회가 해당 사안을 부실하게 조사했다는 정황이 나왔다.

▲대한체조협회 사무실 전경. ⓒ프레시안(김재구)

21일 <프레시안>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의혹에 신빙성을 높여주는 근거는 해당 의혹의 당사자인 A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학생선수들이 당시 대회에서 감독과 코치로부터 일부 종목의 결승전 기권을 종용받았던 사실을 밝히는 육성이 담긴 녹음파일이다.

실제 대회가 마무리된 지 일주일 만인 2018년 5월 7일 진천선수촌에서 체조계 관계자와의 대화가 녹음된 해당 파일에서 선수들은 도마와 안마를 비롯해 마루·평행봉·철봉 등 5개 종목에 출전했지만, 결승전을 앞두고 지도자들의 요구에 따라 도마·평행봉·철봉 등 종목의 결승전을 기권했다고 증언했다.

[녹음파일 발췌]

#1. B선수 녹음파일

◆B선수 : 시합 전 숙소에서 출발하기 전에 ㄱ감독님(A대학교 체조감독)이 전화로 ‘도마는 기권하라’고 하셨다. ‘그냥 하면 안되냐’고 여쭤봤는데, ‘마루는 가져가고, 도마는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하시고, ㄴ선생님(D대학교 체조코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다. 이따가 보면 말씀해 주실거라고.

◇녹음자(익명) : ㄴ선생님은 뭐라고 했나.

◆B선수 : 마루는 어차피 가져갈 거니까 도마는 기권하라고 하셨다. 평행봉도 그냥 하지 말라고 했다.

#2. C선수 녹음파일

◇녹음자 : 종별대회(제73회 전국종별체조선수권대회) 결승날 있었던 일을 설명해 달라.

◆C선수 : (결승전 당일)아침에 ㄴ선생님께서 ‘ㄱ선생님과 말을 하고 (너를)만난 김에 말을 한다’라면서 ‘그거(결승전) 꼭 뛰어야 겠냐’고.

◇녹음자 : 너한테? 직접적으로 만나서?

◆C선수 : 마주쳤다.

◇녹음자 : 어디서 마주쳤는데?

◆C선수 : 저희(A대학교와 D대학교 체조부) 숙소를 같이 썼다. 경기장에 오기 전에 숙소 밑에서 차 타기 전에(마주쳤다). 그래서 저도 속으로 시합 단체전도 뛰었고, 선발전도 뛰었고, 또 결승날도 3개나 뛰어야 되니까 부담감이 없지 않아서 ‘꼭 뛰진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녹음자 : ㄴ선생님을 숙소 밑에서 시합장에 가기 전에 마주쳤을 때 (상황을)다시 말해 달라.

◆C선수 : ㄴ선생님이 숙소 밑에서 ‘결승전 3개 뛰는데 다 뛰어야 되냐’라고 말씀하셔가지고 제가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다시 시합장으로 넘어갔다. 시합장에서 몸 풀고 있었는데 ㄱ선생님한테 다시 전화가 와서 ‘선발전 결승 다 뛸 거냐’고 여쭤보셔서 ‘안마는 뛰는데 평행봉, 철봉은 기권하겠다’고 말씀드렸다. ㄴ선생님은 ‘다른 선수들한테 메달 양보하자’고 얘기했다.

◇녹음자 : 솔직히 몸이 피곤했을 거다. 그래도 욕심이 있으니까 안마는 (결승전을)뛴 것 아니냐. 너도 욕심이 있는데 뭐 거기서(ㄱ감독, ㄴ코치) ‘양보해라’ 이런 말 하니까 포기했겠지.

◆C선수 : 그렇다.

◇녹음자 : 사실은 양보를 하고, 양보를 해달라고 하는 부분은 문제가 된다. 네가 선수니까 그쪽에서 ‘양보 좀 해달라’고 할 때 ‘제가 할거다’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 안다. 그런데 내심 너도 무조건 안뛰려고 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 평행봉, 철봉도 네가 뛰어서 메달 따서 다관왕을 노렸을 것 아니냐. 그런 생각 안 해봤어?

◆C선수 : (생각)했었다.

◇녹음자 : 그런데도 (상황이)이렇게 되다 보니까 너도 ‘그럴까?’ 이렇게 된거야?

◆C선수 : 그렇다.

이 같은 증언은 대회 결과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당시 기계체조 남자대학부 도마 제1경기(예선전)와 평행봉 제1경기에서 각각 1위와 3위에 올랐던 B선수는 두 종목 모두 결승전인 제3경기를 기권했고, C선수 역시 철봉 제1경기와 평행봉 제1경기를 모두 1위로 마쳤음에도 제3경기를 기권했던 것이다.

반면, B선수는 같은 기간 열린 남자대학부 마루 제1경기와 제3경기를 모두 1위로 마무리 지었고, C선수도 안마 제1경기와 제3경기에 모두 참가해 각각 2위의 기록을 세웠다.

이들의 기권 이후 D대학 ㄴ코치의 제자들 가운데 도마 예선 5위였던 E선수가 결승에서 2위를, 평행봉 예선과 철봉 예선에서 각각 6위에 불과했던 F선수가 결승에서 3위와 1위를 기록한 점도 확인됐다.

해당 의혹이 최초로 제기된 것은 올해 3월로, 대한체조협회는 대한체육회를 통해 민원을 접수한 뒤 5월 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를 통해 사안을 심의했다.

그 결과 스포츠공정위는 해당 의혹에 대해 ‘불인정’으로 의결하면서 사안을 종료했다.

그러나 이 같은 체육협회의 결론에 대해 관련 절차가 부실하게 진행된 정황이 포착됐다.

▲고의 기권 의혹과 관련한 본보의 취재에 대한 대한체조협회의 회신문. ⓒ프레시안

체조협회는 해당 심의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와 내용 등에 대한 <프레시안>의 취재 요청에 대해 서면으로 "해당 사건은 약 7개월 전(2023년 3월 31일께) 대한체육회 홈페이지 민원을 통해 본 협회로 이첩된 민원으로서 ‘불인정 종결’ 처리된 바 있다"며 "당시 해당 민원을 접수한 본 협회는 스포츠공정위원회(4월 25일)에 해당 민원을 심의 요청했으며, ‘민원 내용이 사실일 경우 스포츠의 공정성을 침해하는 심각한 사안이기에 당사자에게 관련 부분에 대한 사실확인을 하도록 결의’돼 해당 선수와 지도자의 사실확인서를 받았다"고 답변했다.

즉, 체조협회는 해당 의혹에 대한 조사가 해당 선수와 지도자에게 사실확인서를 받은 것이 전부라는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협회 측은 또 "의혹은 의혹일 뿐이며, 조치를 안 취한 것도 아니고, 공정위에 당사자들을 불러 이야기를 다 끝낸 상태이며, 변호사들과 노무사들이 다 판단했던 기준점이 있으니 ‘불인정’으로 결론이 내려졌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의혹 자체가 신빙성이 없다. 민원을 접수했으면 공정위 심의에 민원인이 직접 나와 문제가 있다고 당당히 밝혀야 하는데 민원인은 공정위 심의에 나오지 않았다. 양쪽의 주장을 모두 들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주장하며 해당 의혹에 대한 신빙성을 문제삼았다.

하지만 의혹을 제기한 민원인은 협회의 심의 결과를 회신받은 적도, 심의에 출석하라는 요청도 받은 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프레시안>은 취재 과정에서 체조협회 내부의 증언도 확보했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공정위는 해당 의혹이 협회 관계자가 아닌 제3자에 의해 제기된 점 등을 토대로 ‘경기 결과만으로 제기된 민원이기 때문에 조사를 진행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공정위에서 진행된 심의는 의혹 당사자들에게 관련 내용을 물어본 것이 전부"라고 털어놨다.

사정이 이렇자 <프레시안>은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서면과 유선 및 협회 사무실 방문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수 차례에 걸쳐 해당 심의 결의서의 제공 및 부실 조사 의혹에 대한 협회 측의 성의 있는 답변을 요청했지만, 협회 측은 최초 요청일로부터 2주일이 지난 이날 저녁 7시까지도 이 같은 요청에 대한 답변을 모두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21일 체육정의실천연대 관계자가 경기남부경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하고 있다. ⓒ체육정의실천연대

한편, 의혹을 제기한 체육정의실천연대는 이날 경기남부경찰청에 수사를 요청하는 고발장을 접수했다.

실천연대는 고발장에서 "피고발인들은 지난 2018년 대한체조협회가 주관한 전국종별선수권 체조대회 대학부 경기에서 서로 공모하여 소위 고의기권으로 승부조작을 한 혐의가 있다"며 "스포츠 정신의 핵심 요소인 공정성을 무시하고, 체육인으로서 품위를 망각한 채 규칙을 준수하고 상대방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저버렸다"고 주장했다.

실천연대 관계자는 "체조는 개인 운동이기 때문에 여러 선수를 매수해야 하는 팀 스포츠와는 달리, 선수 한 명만 매수하면 돼 승부조작에 대한 접근이 비교적 수월하다"며 "또한 매수된 선수가 코치의 지시에 따라 고의로 기권을 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로, 수사기관의 수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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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구

경기인천취재본부 김재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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