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와 패션은 거주 공간과 함께 '의식주'로 묶여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동시에 개인, 집단 문화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 세가지는 인류 역사의 전개와 더불어 계급과 연결되면서 더욱 분화가 일어나고 다양한 발전의 양상을 보인다.
특히 이 가운데 요리와 패션은 직접적이면서도 강력한 개인의 의사표현의 방식이자 기본적인 욕구 표출의 매개가 된다.
빈부 격차와 계급 상하를 대신한 수단이자 도구로 음식과 패션만한 것이 없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음식과 패션은 일상에서 개인의 계급과 빈부를 표현하는 가장 적나라한 수단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와 자유평등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음식과 패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프레시안>전북취재본부는 내년 총선에 도전하는 입지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다.
"일상에서 요리와 패션, 아느 것이 우선인지와 그 이유도 설명해 주십시오."
답변은 다양했고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국회의원을 꿈꾸는 정치인들은 요리와 패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따라가 본다.
패션보다는 요리를 우선하는 정치인들
<프레시안>의 설문에 답변을 보내온 입지자들은 모두 35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21명은 '요리'가, 11명은 '패션'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답변을 하지 않은 이들은 2명이었다.
요리가 우선이라고 응답한 입지자들은 그 이유에 대해 '나눔'과 '분배', '건강' 등을 들었다.
요리가 가진 덕목이 '함께 조리하고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과 이웃과 너른 식탁에서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몸을 살리는 섭생의 의미에서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내년 총선 출마 의지를 표명한 김정호 변호사는 '나도 배부르지만 남을 배불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며 신원식 전 전라북도 경제부지사는 '맛있는 요리는 즐겁다'는 말로 요리 예찬론을 펼쳤다.
대통령 비서실 보건복지 선임행정관 출신인 김원종 박사(59)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얘기하면서 즐겁게 배우고 경험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요리가 우선"이라고 답했다.
안호영 국회의원은 "다양한 식재료를 가지고 여러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즐거움이 좋고 그 요리를 맛있게 먹고 행복해 하는 식구들을 보는 것 또한 좋다"면서 "같은 식재료라고 하더라도 요리사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매력으로 꼽았다.
오형수 정의당 전 도당위원장도 "함께해서 좋은 시간을 만들 수 있고 서로 나눈다는 의미에서 행복감을 더해준다"며 요리를 앞에 뒀고, 고상진 익산발전연구원장(56)은 "좋은 사람과 더불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며 정운천 국회의원은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예술"로 요리를 한 단계 위에 뒀다.
독특한 점은 '패션'의 가치에 비해 '요리'가 우월하다는 답변도 제법 눈에 띈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패션이 '겉모습 치장'으로 보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했다.
박준배 전 김제시장은 "요리는 건강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고 패션은 외형이라서 내실없는 사람되기 쉽다"고 요리 우위론을 단언했다.
박희승 변호사는 '겉모습에 치중하기 보다는 건강이 우선이며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유재석 전 이재명 대선 캠프 '나를 위한 정책위원장'은 "굶으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패션은 남의 눈에 띄는 일이라서 정작 나는 느끼지 못할 때가 허다하다"는 이유로 요리를 선택했다.
성준후 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57)도 "남자에게 패션은 양복과 와이셔츠, 구두로 대변되는 기본 틀을 벗어나는 파격은 이제 상상하기 힘들다"면서 "정치의 중심에서 늘 서둘러 먹고 행동이 앞서야 하는 지금의 현실과 워낙 먹는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단연 요리가 우선"이라고 밝혔다.
성치두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청년소통협력위원장(47)은 "같은 돈이 있을 때 신체 건강을 위해서는 겉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의류보다는 요리에 우선해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전국혁신회의 상임위원인 이희성 변호사(51)는 "신언서판이라 했으니 패션도 중요하지만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도 요리가 더 중요하다"면서 "개인적으로 가족들에게 요리를 해주는 것을 좋아하며 맛집을 발굴하면 가족들은 물론이고 친한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해주고 함께 가곤 한다"고 요리극찬론을 펼쳤다.
이밖에 건강때문에 요리가 더 우선이라고 꼽는 입지자들도 많았다.
신현갑 국민의힘 완주무진장 당협위원장(56)은 '건강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이근열 전 국민의힘 군산시장 후보(49)는 '건강이 모든 것에 최우선이기 때문'이라고 답했으며 허남주 국민의힘 전주시갑 당협위원장(60)도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국민의힘 소속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요리를 우선으로 꼽은 이유 중 두세훈 변호사가 '아내가 참치김치째개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 답변과 이환주 전 남원시장의 '의식주->식의주'라는 답변이 독특하고 재치있게 읽힌다.
요리보다는 패션이라고 응답한 정치인들은 '품격'과 '상대방을 위한 배려'라는 점을 꼽았다.
'품격'과 '배려'가 기본인 정치인에겐 패션이 우선
이춘석 전 국회의원은 "패션은 정치인에게 플러스 알파가 된다"는 간결한 이유로 꼽았으며 채이배 전 국회의원도 "외식을 자주하고 집에서는 요리를 하기보다는 있는 것을 먹는 생활패턴을 유지한다"면서 "집에서 요리하기보다는 잘 입고 나가 외식을 한다"고 패션 예찬론을 펼쳤다.
품격을 우선시하는 '신사'와 '숙녀'들의 의견도 상당수다.
임석삼 한국폴리텍대학 전 김제캠퍼스 학장(66)은 '옷이 날개라고 했듯이 패션이 그 사람의 품격을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며 정선화 국민의힘 혁신위원(42)은 '나에게 자신감을 갖게 해주지만 상대방에게도 예의를 갖추었다는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로 요리보다 패션을 우선으로 꼽았다.
황현선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도 '나를 위한 것이기 보다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신사의 대열에 합류했으며 고종윤 변호사는 '평소 단정하게 옷을 입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고, 박진만 전라북도건축사회 회장(61)은 '요리는 상황에 따라 선택하면 되지만 패션은 감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패션을 우선시한다고 설명했다.
현역인 강성희 진보당 국회의원은 "요리를 할 줄 모르고 설거지만 하기 때문"에 패션을 꼽은 경우고,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어머니의 가르침 중에 '형식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지만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형식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는 말씀을 기억한다"면서 패션(형식)이 우선인 이유를 설명했다.
정희균 노무현재단 전북 공동대표(56)는 "과거부터 '의식주'와 같이 입는 것이 우선인 것은 가장 직접적인 신체 보호적 차원이겠지만 그 의미가 달라진 지금도 의식주의 중요한 순서는 동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요리'와 '패션'…선택은 어려워
요리와 패션 둘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답변도 여럿이다.
전권희 진보당 익산시지역위원장(52)은 "둘다 잘하는 분야는 아니지만 굳이 언급한다면 요리"라며 "맛있는 요리는 나도 좋지만 다른사람에게도 좋으니까"라고 답변을 보내왔다.
최형재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60)은 "요리와 패션 모두 적당한 관심을 둔 정도"라며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요리를 배워 가족과 동료들에게 봉사하고 싶다"고 지인들을 상대로 '과감한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유성엽 전 국회의원은 "양자택일이란 언제나 어려운 숙제지만 우선하는 것을 물었으니 선택한다면 요리로 하겠다"면서도 "물론 잘하진 못하지만 나도 멋진 패션을 동경하긴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요리는 일상적인 필요와 더불어 건강, 경제, 사회적 가치, 창의성 그리고 자아실현에 많은 이점을 준다.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우리에게 영양과 맛을 더해주며 우리 몸과 정신을 이롭게 한다"는 예찬론을 펼쳤다. 이어 "지역의 발전이란 틀에서 생각해도 역시 요리를 선택할 것"이라며 "정읍과 고창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가 그냥 내놓기만 해도 요리가 될 수 있는 우수한 농축수산물이 많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덕춘 변호사 또한 "요리와 패션은 너무나 먼 이야기지만 그나마 요리는 평소 집에서 자족들을 위해 나름대로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요리'와 '패션'의 정치목적?…결국 민심 속으로
역대 조선의 왕들은 요리와 패션을 통해 왕국을 통치했다.
대표적인 예가 훌륭한 신하들에게 왕실에서 만든 속옷과 겉옷 한 벌을 내리는 '표리일습(表裏一襲)'이 있으며 세시마다 특별한 궁실의 음식을 내려(賜饌) 그들의 충성에 대한 보답을 하기도 했다.
나라에 흉년이들거나 근심거리가 생기면 왕이 스스로 '감선(減膳)'을 통해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 하려 했으며 그들의 생활이 어떠한지를 직접 살피기 위해 암행에 나설 때는 '변복(變服)'을 통해 스스로 평민이 되고자 했다.
'표리일습'과 '변복'이 패션을 통한 정치라면 '감선'과 '사찬(賜饌)'은 요리를 통한 통치행위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민중의 삶을 살피고 그 안으로 뛰어들어 백성의 어버이가 되고자 했다.
현대의 정치 또한 다르지 않을 터.
입지자들이 요리를 통해 나눔과 분배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패션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차리고자 한다는 처음의 취지에 맞게 정치활동을 펼쳐 간다면 국민의 삶은 더욱 윤택해지고 정치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더욱 따듯해 질 것이다.
그런 바람이 이번 입지자들을 통해 22대 총선 이후에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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