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지도하면서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표준어의 개념과 실제 표준어의 실상이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때로는 비표준어인 중 알았는데 표준어인 것(거시기, 걸쩍지근하다, 시방(時方), 개밥바라기 등)이 있고, 표준어인 줄 알았는데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것(징하다, 자릿물 등)이 있다. ‘자릿물’의 표준어는 ‘자리끼’이다. 오히려 ‘자리끼’가 일본어같은 느낌이 든다. “밤에 자다가 마시기 위하여 잠자리의 머리 맡에 준비하는 물”을 이른다. 필자의 고향이 여주라 그런지 ‘자릿물’이 훨씬 가슴에 와 닿는다. 아마도 강원지방의 방언이라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보통 아침에 일어나면 물 한 잔 마시는 사람이 많아서 요즘은 이렇게 자리끼를 준비하고 자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냉수보다는 미지근한 물이 좋다고 하는데, 그것까지는 필자의 소관이 아니다. 아무튼 자리끼의 예문을 보자.
방안에는 푹신한 이불과 함께 자리끼도 준비되어 있었다.
술이 취한 남편은 자리끼를 찾아 탁자 위를 홈착거렸다.
와 같이 쓴다. ‘홈착거리다’도 흔히 보는 단어는 아니다. 그 뜻은 “무엇을 찾으려고 자꾸 이리저리 조금씩 더듬다, 손으로 자꾸 이리저리 조금씩 훔쳐 씻다”라는 뜻이다. 이 또한 표준어인데, 마치 방언인 것처럼 보인다. 흔하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이 쓰는 어휘가 1,500 단어 내외라는 발표도 있었다. 영어 단어는 2,000 개를 외면서 우리말은 지나치게 등한히 하는 것은 아닌지 부끄럽다.(사실 외국인에 비해 우리 학생들은 비속어나 축약어 등 유행어만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각 나라마다 표준어를 정해 놓고 기준을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표준어 또한 시대별로 차이가 있다. 현대인이 타임 머신을 타고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인들하고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다. 왜냐하면 당시의 발음은 지금과 전혀 다르고, 마치 외국어처럼 인식할 수도 있을 만큼 지금의 경상도 말과도 다르다. 그렇다면 세종대왕을 만나면 대화할 수 있을까? 역시 답은 “쉽지 않다”이다. 세종시대에는 발음에 평상거입의 성조가 살아 있었고, 한자어도 거의 중국식 발음에 가깝게 했다. 예를 들면 ‘百姓(백성)’에서 百(백)이라는 단어를 읽을 때 “ㅏ에서 시작해서 ㅣ로 끝나도록 읽어야 한다. (起於ㅏ 而終於ㅣ)”라고 했다. 그렇다면 ‘백’이 아니고 ‘바익’이라고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의 발음으로 하면 “바익시엉”을 빨리 읽는 것과 같다. 그래서 잘 들어 보면 중국어 발음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한자로 百姓이라 칠판에 써 놓고 중국 학생에게 읽어 보라고 하면 세종시대의 발음과 흡사함을 느낄 수 있다. 필자는 훈민정음 어제 서문을 당시의 발음으로 학생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처음에는 어색해 하다가 글자 옆에 찍은 점의 의미를 가르쳐 주고, 그에 맞게 발음하는 것을 연습하면, 어렵지만 그 당시의 성조와 비슷하게는 읽으며 재미있어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마치 외국어(중국어)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세종대왕과 쉽게 소통할 수 없는 것이 답이다. 그러니 고려 시대나 신라 시대로 가면 거의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신라어는 고구려어나 백제어와 달리 독특한 어휘가 많다. 각 시기마다 그 임금이 사는 곳이 언어가 표준어가 됐기 때문이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경주 방언이 표준어였고, 고려 시대에는 개성 방언이 표준어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한양(서울)말이 표준어였다. 그러므로 왕이 하는 말이 언어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라의 향가는 경주 방언으로 풀어야 제대로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표준어는 그 시대 왕이 거주하는 도시의 말이 표준어가 된다. 현재는 서울 사는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을 표준어로 삼고 있다.
언어는 늘 변하기 때문에 지금의 발음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언제든지 새롭게 태어나고 성장하고 소멸할 수 있는 것이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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