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3일,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창립 10주년 기념 컨퍼런스에서는 협동조합도시 서울을 위해 함께한 10년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센터는 협동조합 설립과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이슈를 해결하는 '상담창구'로서의 역할을 해주었고, 동시에 기본법 시행 후 지원기관으로서 제도적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앞장서 주었다.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된지 11년차인데 법인격의 수가 25,000개가 넘었다면, 제도적으로 협동조합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5인이 모이면 협동조합이라는 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 정말 매력적인 제안이지 않은가?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곳곳에서 협동조합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 글에서 들여다봤던 쿱인덱스가 이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실제로 2022년 쿱인덱스 분석결과에 따르면 협동조합 원칙과 조직성숙도 연차별 결과에서 설립 6년차까지는 계속 점수가 떨어지다가 7년 이상부터 점수가 상향하는 추세를 보였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2022년 진단에 참여한 63개 협동조합들의 평균점수를 연차별로 비교하였다. 협동조합 원칙(CPI)는 협동조합 7원칙을 얼마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은 것이고, 조직성숙도(OMI)는 조직 시스템, 조직 분위기, 성과에 대해서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 조합원들이 평가한 것이다.
"우리 협동조합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요"
기업에 전략이 필요한 이유는 한정된 자원으로 성과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인적자원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인재를 끌어 모으는데 투자한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조직에 적응해서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교육, 훈련을 제공하고, 개인이 조직의 한 일원으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복지혜택을 제공한다. 그리고, 한 개인의 공백으로 조직 전체가 마비되지 않도록 한다. 기업의 기본적인 인사관리시스템이다.
그런데 협동조합은 이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규모가 크고 인사관리시스템이 잘 갖춰진 협동조합은 문제되지 않겠지만, 기본법 협동조합의 74%가 사업자 협동조합이다. 즉, 조합원이 인적자원이다. 협동조합에 일할 사람이 없다는 말은 조합원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고, 조합원의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일 잘하는 사람이 밖에서 저절로 들어오길 기다릴 수 없다.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일할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협동조합 리더가 필요하다"
2019년, 해외 학회에서 만난 영국의 협동조합 학자이자 영국 협동조합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피터데이비스(Peter Davies) 교수의 이 말은 여전히 필자에게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그는 '결국 협동조합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경영 전문가가 너무 필요한데, 우리는 너무 쉽게 그 역할을 멤버십을 이해하지 못하는 전문가들에게 맡겨버렸다'고 탄식했다. 그렇다면 협동조합 리더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협동조합 리더로서 덕목(virtue)을 지닌 사람.' 사람들의 잠재력을 읽어내고, 이를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고 격려하는 용기와 헌신, 그리고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협동조합 프랙티스, 문화와 실천
필자가 졸업한 협동조합경영학 전공은 경영학과 협동조합을 동시에 배운다. 전통적인 경영학 이론들이 협동조합의 멤버십을 만나면 새로운 관점이 생기고 실천적인 질문이 계속해서 나온다. 예를들면, '전략은 누가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이 그러하다. 전통적인 경영학 연구에서 전략은 경영자가 만든다. 조직을 둘러싼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요구하는, 혹은 조직이 원하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갈 수 있는 최적의 길을 찾는 것이 전략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다. 우리가 서있는 이 지도의 모양이 계속 바뀐다는 것.
조직 연구자인 로버트 치아(Robert Chia) 교수는 전략을 만드는 것은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navigation)이 아닌 '지도를 만드는 것(mapping)'이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공유하고 있는 실천과 지혜에 의해서 전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협동조합은 조합원들과 함께 인지하는 상황을 공유하며 '더듬더듬' 최선의 길을 함께 만들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 7년의 세월은 사실상 협동조합의 운영 원칙을 만들고, 서로 차이를 조정하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우리들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협동조합은 이 과정을 통해 운영원칙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사람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당장 해야할 것
협동조합의 리더는 선출된다. 조합원은 리더를 선택할 권리와 의무가 있고, 어떤 리더가 좋은지 말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고, 혹은 상황에 맞는 리더를 선출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리더는 뛰어난 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협동조합은 적어도 2년에 한번씩 이사장 선출을 해야하고, 이사진도 구성해야한다. 즉, 협동조합 조합원 모두는 미래의 리더가 되어야 할 사람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현재 한국의 협동조합 생태계가 안정된 고용을 보장해줄 수 없기 때문에 일할 사람을 키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지속적인 고용을 약속해 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협동조합을 나가서라도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필자가 쿠피협동조합의 실무자로 그리고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얻은 것은 충분한 월급이나 안정적인 일자리가 아니었다. 이사장 정도는 한 번씩 해보신 조합원들이었던 분들과 함께 일해본 경험이 협동조합을 연구하고 실천하고 그리고 현재 플랫폼 노동자들을 조직하는데 필요한 역량을 되었다.
한국의 협동조합 생태계가 협동조합 리더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인가? 앞으로 5년, 10년 후의 협동조합을 이끌어 갈 리더가 현재 우리와 함께 있는가? 더 현실적으로 질문해보자. 우리 협동조합은 다음 이사장으로 누구를 뽑을 것인가?
* 글을 쓴 조수미 박사는 협동조합을 연구하는 지식생산자들이 함께 소유하고 관리하는 쿠피협동조합의 조합원이자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