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기한은 150여일 남짓 남았지만 이미 선거정국에 돌입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야는 내년 총선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생존게임’ 예고하고 있다. 정당으로서야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게임이 되겠지만 유권자에게는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지방정치를 되살려야 하는 매우 중요한 선거로 다가오고 있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벌써 30년이 지났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여덟 차례의 총선을 치렀지만 오히려 지방정치는 실종됐다. 지방자치 이후 지역주민의 삶은 더 팍팍해졌으며 전북도내 14개 시군 가운데 인구소멸지역은 11개 시군으로 늘어났다. 역대 정권마다 지역균형발전을 얘기했지만 외려 지역차별은 더 심해졌다. 거대정당은 지역주민을 볼모로 삼아 표몰이에만 열중하고 있으며 지역개발공약은 선거 때만 과대포장해서 유권자를 희망고문하는 단골메뉴로 이용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막대기’에 속아 지방의 미래를 빼앗길 수는 없는 중차대한 시기가 됐다. 여기서 주춤거리다가는 지역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프레시안 전북본부는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지방정치 오디세이’를 시작한다. 어리숙하게 당했던 지난 지방정치를 되돌아보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편집자 주>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정치 과잉 시대이다.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어김없이 선거용 게리맨더링식 선거구 조정안을 비롯해 다선의원의 험지 출마 등 온갖 얘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영호남을 텃밭으로 둔 정당은 막대기만 꽂아 놓아도 또 당선될 것이라는 해묵은 비아냥이 언론매체를 통해 거침없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국회 선거구 획정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여지없이 뭉그적거리고 있어 정치신인들은 애를 태우는데 김포시를 서울시로 편입하는 ‘메가 서울론’이 느닷없이 등장해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러다가 내년 총선 역시 우려하는 대로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는 진정한 정치인이 아닌 정당에서 내리 꽃은 막대기(?)가 당선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한두 차례의 총선만 예외였을 뿐 어김없이 특정 정당에 몰표를 행사한 지역 가운데 한 곳인 전북을 돌아보자.
새만금사업을 두고 전북과 전북도민에 대한 ‘희망고문’이라고 말하지만 지난 21대 총선이나 20대 대선도 마찬가지였다.
선거 때마다 등장해서 전북의 대표 선거공약으로 선정된 사업들 가운데 전북을 희망고문 하는 사업이 어디 한두 가지에 그쳤을까?
전북에서 사실상 몰표를 독식해온 더불어민주당과 그 전신은 굵직한 선거 때마다 새만금사업을 비롯해 남원 공공의대 설립과 전북 제3의 금융중심지 지정을 입이 닳도록 공약해왔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놀랍(?)게도 민주당 의원이 두 명밖에 선출되지 않았으며 국민의당 7석에 새누리당 1석이던 때도 있었다.
국민의당에 완전히 포위됐던 그때는 민주당 대표가 전북을 찾아 “전북도민들이 민주당 의원으로 두 명밖에 뽑아 주지 않아 전북의 대표 공약사업을 추진하기가 힘들다”며 엄살을 피우며 우회적으로 차기 총선에서는 민주당 의원을 많이 뽑아 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마음이 약한(?) 전북도민들은 2020년 4월 15일에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전체 10개 선거구 가운데 9개 선거구에서 민주당 의원을 뽑아 줬지만 예나 지금이나 무기력한 모습에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은 무소속으로 당선된 1명이 나중에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으로 옮겨 갔고, 전주을 선거구에서는 민주당 의원이 직(職)을 상실하면서 치러진 재선에서 진보당 의원이 선출됐다. 전북의 정치 영토는 2023년 11월 현재 민주당 8석에 국민의힘 1석과 진보당 1석의 삼분지계(三分之界)인 상황이다.
아무튼 전북의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표를 몰아줘야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호소하면서도 선거 이후엔 의원 개개인이 각개전투에 몰입하며 전체적으로 활력이 없는 쇠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북 정치력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
비근한 예로 내년 국가예산에서 무려 78%가 삭감된 새만금 SOC사업 예산을 보면 기가 막히게 된다. 과연 “전북의 정치력이 이 정도일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한심한 수준이다.
정부여당이 무려 5천억 원 이상의 국가예산을 깎았음에도 위기 경보음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사전 정보도 없었고 기민하게 대응도 못했을 뿐 아니라 가만히 앉아서 당한 꼴이 됐다.
물론 각 부처에서 올린 6626억원의 새만금 주요 SOC 예산을 기획재정부의 막판 심의 단계에서 벼락치듯 5147억원, 무려 78%나 칼질한 정부가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기습을 당한 전북 정치인들에게 책임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잼버리 파행 이후 전북 국가예산을 포함한 각 분야에서 엄청난 쓰나미가 몰아치는 등 전례없는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예견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었지만 정치권은 예의주시하지 않았고, 가만히 앉아서 코를 베인 셈이 됐다.
현재 민주당 국회의원은 163석, 전북 10개 선거구에서 8개 선거구 의원이 민주당 소속이다.
정부부처를 감시하고 내년 전북 관련 주요 국가예산 배정 움직임에 안테나를 세우며 최소한의 정보라도 쥐고 있어야 했음에도 5000억원이나 대거 깎인 뒤에야 “아차차~”라며 부랴부랴 전북도민의 여론을 결집하는 등 ‘굿 뒤에 병풍치기’에 나섰다.
과연 예산이 일순간에 수천억 원씩 날아갈 수 있다는 정보를 사전에 감지해서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었을까?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봐도 전북 정치력이 부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도민들의 감정에 호소하며 도민들을 선동했다. 전북도민들은 때 아닌 ‘새만금잼버리 책임론’에 ‘예산 도둑’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는 등 온몸이 그야말로 상처 투성이이고 자존심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과연 중앙정치에서 지역을 대표해 활동해야 하는 국회의원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집권여당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었을까? 그렇다면 민주당이 집권여당 시절에는 어땠는가? 문재인 정부 당시 대통령 공약인 남원 공공의대와 제3의 금융중심지 지정은 왜 못했을까?
국민의힘 전북도당은 새만금 SOC 예산의 대폭 삭감으로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민주당 안방에서 가뜩이나 좁아지는 입지를 유지해온 상황에서 당정이 무차별적으로 지역 현안 예산을 삭감해 놓아 도민정서가 전례 없이 냉랭한 까닭이다.
국민의힘 전북 당원들 사이에서는 “민주당 30년 동안 설움 속에서 알탕갈탕 확보해 놓은 지지기반을 모두 잃게 되는 것 아니냐”며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호남의 유일한 현역의원인 정운천 의원과 전북도당 지도부가 나서 정부와 중앙당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분노의 민심’을 전달하며 새만금 예산을 복원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한 지역의 정치지형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면서 내년 4월 10일에 치러질 22대 총선에서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
균형과 견제 구조를 통해 건강한 정치 구조를 만들어 전북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새만금 주요 SOC 예산이 삭감됐을 때 정부와 여당에 통로가 더 많았다면 전북의 목소리를 더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 아니냐며 반문한다.
실제로 이웃한 충청을 예로 든다. 채널의 다양화를 통해 실리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충청의 표심 저울추는 선거마다 실리투표로 기운다는 주장이다. 그러다 보니 여야 모두 애가 닳아 농익은 러브콜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북 국민의힘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별다른 고민 없이 특정정당에 몰입해 자초하는 정치적 고립은 위기 상황에서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의원의 사법처리로 치른 재선거에서 처음으로 진보당 의원이 선출된 전주을선거구의 변화는 어떻게 봐야 할까?
오직 유권자인 주민만 바라보며 주민들의 실생활에 다가서고, 시민과의 거리를 좁히는 진정성의 정치가 먹힌 사례로 봐야 한다는 게 각계의 분석이다. 무엇보다 민생문제를 해결할 실질적인 공약개발에 집중하면서 특유의 생활밀착형 정치를 펼친 것이 진보당 후보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밀어 넣은 동력이라는 말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오직 진심을 다해 지역민에 다가선 진보당의 사례는 기존 정치문법에 익숙한 정치꾼들에게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져준다”고 말했다.
다음 총선은 단지 지역구별로 국회의원 1명을 뽑는 선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앙 정치무대에서 전북과 지역을 대표할 진정한 일꾼을 뽑는 선거일 뿐더러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국가·사회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일꾼을 찾아야 하는 선거이다.
곧 사라질 지방, 또 막대기에게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무엇보다 곧 사라질 위기에 놓인 전북, 14개 시·군 가운데 11개 시군이 인구소멸지역으로 꼽힌 전북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꼼꼼히 살펴보고 주민과 함께 고민하며 강력한 추진력과 놀라운 혜안을 갖춘 일꾼을 선별해야 한다.
특히 막연히 개발심리를 자극하는 공약이 아닌 가장 심각한 위기 가운데 하나인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는 자질과 능력을 겸비한 사람이 필요하다.
여기에 지난 30여 년간 거꾸로 간 지방자치를 제대로 된 지방자치가 되도록 방향 전환에 힘을 기울일 수 있는 인물이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유권자들은 진정성 있는 정치인과 위에서 내리 꽂는 막대기를 분별하면 된다.
막대기를 뽑으면 지역의 미래가 막대기로 전락하게 된다. 선택은 똑똑한 유권자인 지역민들의 몫이다. 남은 5개월은 유권자들이 눈을 치켜뜨고 정치인과 막대기를 가려내야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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