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0일 오후 1시, 해성운수 앞에서부터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까지 이어지는 '방영환 열사 죽음의 책임 규탄 시민행진'이 시작되었다.
업무를 서둘러 마치고 양천구에 있는 해성운수 앞으로 향했다. 약식 집회 후 바로 행진이 이어지는 터라 혹시라도 늦을까 봐 바삐 발걸음을 움직이다 결국 택시에 올랐다.
'해성운수'라 행선지를 말했다. 택시노동자는 내비게이션을 켜지도 않은 채 해성운수로 곧바로 출발했다. 어떻게 아시느냐고 물었더니 서울 시내에서 택시 운전을 오래 하니 당연히 안다고 했다. 지난달 그곳 택시노동자가 분신했고 관련 집회에 참여하러 가는 길이라 했더니 그런 일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우리는, 현대인은 특히 한국인은 바쁘다. 어른은 물론 아이마저도. 같은 업종에서 일했던 동료, 노동자의 죽음을 모를 정도로 바쁘다.
해성운수, 서울시, 고용노동부가 내몬 죽음
지난 9월 25일, 정부는 '임금체불 근절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발표가 무색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그 이튿날 해성운수 방영환 택시노동자가 분신했다.
방영환은 2008년 1월부터 택시노동자로 일했다. 2012년에는 해성운수를 포함한 18개 계열사를 둔 동호그룹의 주호교통에 입사했고 2017년 해성운수로 전근했다. 2019년에는 택시노동자들이 겪는 여러 부당함을 해소하고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해성운수분회를 설립했다.
그러다 2020년 2월 계열사 간 이동임에도 1년 단위로 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는 불이익변경 근로계약 서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같은 해 8월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제소했고 이후 부당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와 집회를 이어갔다. 그리고 2022년 11월, 원직복직했으나 사측의 노동탄압은 계속됐다. 복직한 그는 사측이 제시하는 사납금제 근로계약 서명을 거부했다.
2021년 1월 1일부터 서울지역 일반택시 사업장에서 주 40시간 이상 소정근로시간을 정하는 완전월급제가 시행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성운수는 편법적인 사납금제를 유지했다. 사납금제는 택시노동자가 날마다 일정 기준의 액수만 회사에 내고 초과분은 택시노동자가 갖는 제도다. 요금 수익이 사납금에 미치지 못할 경우 모자란 만큼 택시노동자가 채워 넣어야 한다.
방영환이 사납금제 근로계약 서명을 거부하자 사측은 주 40시간 근무에 대한 월 급여 100만 원만 지급했다. 2023년 5월부터는 그마저도 전액 미지급했다. 방영환은 2023년 2월부터 227일 동안 완전월급제 이행을 요구하며 1인 시위와 집회를 지속했다. 5월부터는 1인 시위 중 사측의 빈번한 폭언과 폭행마저 감내해야 했다. 사측은 복직한 방영환에게 한여름 에어컨이 고장 난 차량을 배차하여 사실상 택시운전업무를 할 수 없게 했고 노조활동을 방해했다. 그러다 방영환은 9월 26일 해성운수 앞에서 분신했고 10월 6일 너무나 안타깝게도 목숨을 거뒀다.
이는 해성운수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서울지역 일반택시 사업장 대부분이 변형된 기준금제를 시행하며 택시노동자들을 착취하는가 하면 임금을 체불하고 있다. 택시노동자들은 서울시에 전수조사와 사업주 처벌을 요구하고 있지만 어디 한 곳에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한 택시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 사업주 처벌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역시 실행되지 않고 있다.
서울지역 일반택시 사업장의 법위반
택시 이용 요금 인상으로 시민들의 불만과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택시노동자들이 그만큼의 인상분을 수익으로 가져가는 것도 아니다. 서울지역 일반택시 회사들은 법률에 따라 1주간 40시간 이상이 되도록 근로시간을 정해야 한다. 하지만 사측은 승객이 승차한 시간만으로 산정하는 실차시간 또는 1일 3.5시간/1주 20시간이라는 1주간 40시간에 미치지 못하는 시간을 정해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수많은 노동위원회 판정으로 실차시간으로 임금지급의 기초가 되는 소정근로시간을 정하는 규정은 무효임이 확인됐다. 1주 40시간 미만으로 정한 경우는 법위반으로 무효로 인정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회사들이 일정 금액을 기준으로 정해 운송수임금 납임을 감용하고 기준금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임금에서 공제하고 징계하는 등 불이익을 주며 사실상 법으로 금지된 사납금제를 운용하고 있다. 서울시는 법위반을 막기 위해 사업장을 지도, 관리, 감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방관만 하고 있다.
더는 이대로는 살 수 없다
10월 20일 '방영환 열사 죽음의 책임 규탄 시민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도 택시지부 소속 택시노동자 40여 명은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 5층에 모여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해성운수가 방영환 열사에게 미지급한 최저임금에 대한 체불금품 확인원 발급 △동훈그룹(해성운수 포함 21개 법인 택시회사 소유) 특별근로감독 △해성운수 사업주 처벌 △서울남부지청장 면담 등을 요구했다.
방영환의 죽음에 해성운수도 서울시도 고용노동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 같은 업종이라 할지라도 다른 회사의 일을 다 알 수도, 관심을 두기도 어렵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민주노조를 만들어 힘을 모을 수 있다면 어떨까? 부당하고 억울한 사실을 알리고, 자본과 맞서 싸우고, 엄연히 노동자를 보호할 법이 만들어졌음에도 전혀 그렇지 못한 현실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특히 택시 사업장 가운데 노조 미조직 사업장이 많다. 있다 하더라도 어용노조인 경우가 많다. 더는 늦출 수 없다. 힘을 모아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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