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국 언론 <컨소시엄 뉴스>에 10월 18일자로 실린 '미국, 팔레스타인에서 지정학적 패배에 직면하다'(US Faces Defeat in Geopolitical Defeat in Gaza)를 전문 번역한 것이다. 이 글은 원래 인도 언론 <펀치라인>에 실렸다. 이 글을 쓴 M. K. 바드라쿠마르는 인도 외교관 출신으로 우즈베키스탄과 터키 대사를 역임했다.
1차 대전에서 독일 등 3국동맹의 패배가 임박한 가운데 일어난 아랍인들의 봉기(1916-18년)와 같은 사태가 100여 년 후 또 다시 발생했다. 당시 아랍의 봉기로 오스만터키 제국은 해체됐다.
이번 봉기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항한 것이며, 그 배경에는 우크라이나전쟁에서의 미국과 서방의 임박한 패배가 있다. 스펙타클한 역사의 재현이라 할 수 있다.
아랍의 봉기에 의해 오스만 제국이 해체됐듯이 이스라엘 또한 이번 봉기의 결과로 팔레스타인 점령지를 내어주고 팔레스타인인들의 국가 건설을 허용해야만 할 것이다. 이는 물론 미국에도 치명적 패배이며 미국의 세계 지배에 종말을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사태 전개는 1918년 프랑스 북부에서 벌어졌던 캄브라이 전투를 연상시킨다. 당시 독일군은 국내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포위되고 탈진하고 사기가 떨어져 임박한 패배를 앞두고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이후 지난 열흘간의 상황은 그야말로 노도와 같이 전개되고 있다. 공격 나흘 후인 11일, 이란의 라이시 대통령은 사우디 왕세자 모하메드 빈 살만에게 전화를 걸어 사태 수습을 위한 공동 전략을 논의했다.
그에 앞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다음과 같은 강력한 성명을 발표했다.
"군사적, 정보적 측면에서 이번 이스라엘의 패배는 회복 불가능하다. 이것은 치명적 패배다. 이스라엘 정권이 서방 측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이번 패배로 인한 지배 구조의 심각한 손상을 회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란의 한 고위관리는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한 라이시 대통령의 통화가 “팔레스타인을 돕는 한편 전쟁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것으로 통화는 매우 적절하고 유익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우디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 후 이란 외무장관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은 아랍에미리트(UAE) 외무장관 압둘라 빈 자이드에게 전화를 걸어 사태 해결을 논의하는 한편 이웃 아랍 및 이슬람 국가들과도 사태의 긴급성을 강조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또한 이란 외무장관은 지난 주말 이틀 동안 이라크와 레바논, 시리아와 카타르 등을 순방하며 다양한 저항 단체들과 대응 방안을 조율했다. 특히 그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카타르 도하에서는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직접 만났다.
이란 외무장관은 언론을 통해 만일 이스라엘이 가자지역에 대한 야만적 공습을 멈추지 않는다면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며 이스라엘은 "거대한 패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헤즈볼라는 만일의 경우 직접 군사 개입을 천명했다.
한편 지난 주말 미국 언론 <액시오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란 정부는 유엔을 통해 만일 이스라엘이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란의 군사 개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간단히 말해 이스라엘 지원을 위해 이 지역에 배치된 미국의 2개 항공모함 전단과 각종 전함, 전투기들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필요한 경우 군사행동에 나서겠다는 얘기다.
지난 일요일(15일) 미 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 역시 미국은 이란의 군사개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이란이 저항단체들과 군사 측면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가운데, 중국과 사우디는 외교 협상 노력을 펼치고 있다.
지난 12일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이스라엘 방문에 이어 아랍 국가들을 순방하며 인질 석방을 위한 협력을 촉구하는 동안 중국의 중동 특사 자이 준은 사우디의 정무 담당 차관 사우드 알-사티를 만나 팔레스타인 상황, 특히 가자지역에서의 인도주의적 위기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이러한 미국과 중국의 행동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바로 이날 중국 베이징의 외교부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중국 일대일로 10주년 기념 행사를 위해 중국을 찾은) 아랍 국가들의 외교 사절들이 중동 특사 자이 준과 공동 면담을 갖고 팔레스타인 사태에 대한 집단 대응을 논의한 것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매우 심각한" 인도적 위기가 발생했으며 "국제 사회는 긴장 해소와 평화협상의 조속한 재개,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정당한 국가 건설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즉각 행동할 책임이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아랍의 외교 사절들은 중국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정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데 대해 감사를 표하고, 앞으로도 계속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태도를 유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자이 중동 특사는 전적인 동감을 표시하며 "최우선 과제는 모든 당사자들이 침착함과 자제를 유지하고, 민간인들을 보호하며, 인도적 위기 해소를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이례적 회동 후에 중국 외교부는 심야에 "중국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 평화와 인류의 양심의 편에 설 것"이라는 제목의 왕이 외교부장 성명을 발표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성명 발표 직후 사우디 외무장관 파이잘 빈 파란 왕자가 왕이 부장에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블링컨 미 국무장관 역시 14일 사우디 리야드에서 왕이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점이다. 미 국무부 발표에 따르면 블링컨은 이 통화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지지하며 하마스의 공격 중지와 모든 인질의 석방"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또한 "이란과 헤즈볼라 등 제3자의 분쟁 개입을 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우디 등과 미국과의 협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미국은 인질 석방 문제에 집중한 반면 사우디 측은 가자지역의 인도적 위기에 관심을 쏟았다고 할 수 있다.
사우디와 이란이 합의하고 중국이 지원하는 대응방안은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해 교전을 중단하고 긴장을 완화시키자는 것이다. 이러한 방안에 대해 유엔도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어 이스라엘은 더욱 고립되고 있는 형국이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퇴진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네타냐후가 순순히 물러날 것 같지도 않다. 앞으로 미국-이스라엘 관계는 상당히 경색될 전망이다.
현재 바이든은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해 있다. 1980년 이란 인질 사태(1979년 이슬람혁명의 여파로 테헤란 미국 대사관에 있던 외교관 50여명이 444일간 억류됨)의 여파로 결국 재선에 실패한 카터 대통령과 비슷한 상황이다. 바이든은 이미 뒤로 물러서고 있다.
앞으로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계속될수록 국제사회의 비난과 인도적 위기 해결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이번 사태 직후 모디 총리가 이스라엘과의 연대를 표명했던 인도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 사이에서 체면을 구긴 것은 물론 미국의 맹방 유럽 국가들도 점점 압박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공이 과연 현실적 선택이었가는 두고 볼 일이다.
앞으로 아랍-이란-중국은 가자 지구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계속 제기할 것이다. (지난 17일 미국은 인도적 위기를 해소를 위한 휴전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에 앞서 러시아의 결의안도 채택되지 못했다.)
한편 미국이 추구했던 아브라함협정은(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은 방치한 채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등과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성사시켰으며 최근까지 사우디-이스라엘 수교를 추진) 그 동력을 잃었고, 중국이 주도한 사우디-이란의 화해를 좌초시키려던 노력도 이번 사태로 인해 갑작스럽게 실패했다.
최근 서아시아의 세력관계를 살펴보면, 이러한 추세는 러시아와 중국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으며, 특히 브릭스 국가들이 중동평화 협상의 주도권을 갖게 된다면 미국은 더 이상 중동 평화 과정에서 독점적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러시아가 그동안의 수모를 갚아줄 차례다.
페트로 달러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으며 이와 함께 미국의 지구적 패권도 끝나가고 있다. 이러한 국제 정세의 흐름은 앞으로 세계질서의 다극화에 커다란 기여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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