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국내 대표적인 군 폭력 사망사건으로 꼽히는 2014년 '윤 일병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 진정사건을 각하했다.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의 단독 결정으로 이뤄진 이번 각하 결정에 대해, 고(故) 윤승주 일병 유가족들은 해병대 수사 외압 사태 관련 군 사망사고 유족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김 보호관의 '보복성 사건 각하'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18일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0일 '육군 제28사단 윤승주 일병 사망 사건'(윤 일병 사건) 당시 육군의 사인 은폐·조작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 진정사건을 각하했다.
유족들의 진정이 '진정의 원인이 된 사실이 발생한 날부터 1년 이상 지나서 진정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 각하 사유였으며, 유족들은 이를 지난 16일 담당 조사관으로부터 통보받았다.
센터 측 설명에 따르면 담당 조사관은 이번 각하 결정이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 상임위원회, 군인권보호위원회 등의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고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이 단독 결정한 것'이라고 유족들에게 안내했다.
지난 4월 유족의 진상규명 요구 진정을 도운 군인권센터 측은 김 보호관의 이번 결정을 두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지난 4월 6일 진정 접수 이후 인권위는 조사관을 배정하고 조사를 개시했다는 문자메시지를 유족 측에 통보했으며 △김 보호관 또한 사건 관련 자료들을 제출 받고 유가족에게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구두약속을 남겼고 △지난 5월 31일에는 담당 조사관이 유가족을 대상으로 진정인 조사를 실시하는 등 해당 진정 사건은 '이미 진행되고 있던'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센터는 "이들(인권위)은 윤 일병 사건이 2014년에 발생하여 진정의 원인이 된 날로부터 1년 이상 지나서 진정한 경우로 각하 사유에 해당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 제1항 제4호의 단서조항, 제50조의 7 제1항 단서조항에 따라 각하하지 않고 조사를 개시한 것"이라며 "사건을 조사 개시(한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에 갑자기 발생 1년 이상이 지난 사건이라며 각하하는 결정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김 보호관의 이번 결정이 유족들에 대한 '보복성' 결정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윤 일병 유족들은 각하 결정에 앞선 지난 9월 5일과 11일 고(故) 이예람 중사 유가족 등 다른 군 사망사고 유족들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를 방문, 김 보호관이 박정훈 대령에 대한 긴급구제 안건을 기각시킨 일을 비판하고 사퇴를 촉구한 바 있다. "일련의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김 보호관은 윤 일병 유가족이 자신을 비판하자 유가족이 제기한 별개의 진정사건을 각하하는 결정으로 보복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이 센터 측의 주장이다.
센터는 "만약 법원이나 수사기관이 고소·고발인이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건을 엉망으로 처리하거나 종결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으며 이번 결정이 본인의 결정에 대한 유족들의 항의에서 촉발된 김 보호관의 보복행위에 해당할 경우 이는 "인권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군인권보호관에 대한 군인의 신뢰를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군인권보호관은 윤 일병의 죽음을 계기로 입법 논의가 시작된 제도다. 윤 일병의 비극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유가족이 국회를 직접 뛰어다니며 제도 설치를 촉구하기도 했다"라며 "그렇게 만든 군인권보호관이 윤 일병 사건을 무기 삼아 다른 사람도 아닌 윤 일병 유가족에게 사적 원한을 앙갚음했다. 천인공노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윤 일병 유족들도 이날 입장을 내고 항의 행동에 나섰다. 윤 일병 유족들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보호관은) 멀쩡히 조사를 진행하고, 유가족을 부르고, 자료까지 달라 해놓고는 옛날 일이란 이유로 사건을 위원회에 회부조차 하지 않고 종결해버렸다"라며 "이게 당신이 말한 유족이 만족하는 방향의 마무리인가, 지금 유가족을 가지고 노는 것인가" 되물었다.
유족들은 김 보호관이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서 윤 일병 사건 관련 유족들의 진정을 "신속하게 처리할 방침"이라 말한 일 등을 언급하며 "김용원 씨는 지금 군인권보호관의 공적 권한을 휘둘러 유가족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구두 및 매체 인터뷰 등을 통해 '진정 사건을 조사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해놓고 갑작스레 입장을 뒤집는 것은 "명백한 보복"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2014년 이후 9년 동안 군 사망사고 재조사를 외치고 있는 고 윤 일병의 유족들은 군인권보호관 제도의 출범을 위해 오랜 시간 제도개선 활동에 매진해 온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이날 유족들은 "김용원 당신의 손에 쥐어진 군인권보호관의 권한은 내 아들 윤승주의 피로 만든 권한이다. 그 권한을 휘둘러 자식 잃은 유가족에게 자식의 죽음을 볼모 삼아 분풀이를 하는 당신은 사람이 맞는가"라며 김 보호관의 이번 결정에 대한 비통한 심정을 밝혔다.
이들은 김 보호관의 상급자인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게도 "군인권보호국 실무자에게 김용원 보호관이 우리 사건을 이렇게 어이없이 각하시켰다는 보고를 받은 거로 안다. 윤 일병의 이름이 필요할 땐 찾아와서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고개 숙이고, 행사 있으면 축사 부탁하고, 기관지 인터뷰 해달라 하고, 홍보 영상에도 출연해달라고 하더니 왜 이런 상황에선 한마디 말이 없나" 꼬집었다.
센터 측 또한 "(김 보호관은) 최근 몇 달 사이 계속 업무와 관련한 물의를 빚고 있다. 박정훈 대령 긴급구제를 기각하는가 하면, 자신을 비판하는 인권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인권위 관계 법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인권위 사무 진행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라며 "그런데 장관급 기관장인 송두환 위원장은 김 보호관의 폭주를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김 보호관의 만행을 방치한 결과는 고스란히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2차, 3차 피해로 번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센터에 따르면 이날 유족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송 위원장에게 항의 방문하고자 위원장실을 방문하였으나, 위원장실이 잠겨 있는 데다 송 위원장 또한 별도의 응답을 내지 않아 만남은 불발됐다.
한편 인권위는 19일 보도자료를 내고 "(윤 일병 사건 관련 진정 접수 후) 2014년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 제1항에 따라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동법 제32조 제1항 제4호에 따른 각하 요건을 벗어나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라며 "고 윤 일병 유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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