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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틀과 추락한 청년, 그 배후엔 회사 '지문'이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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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틀과 추락한 청년, 그 배후엔 회사 '지문'이 묻어있었다

[기고] 이미 누추한 '중대재해처벌법', 되돌리지 말라

2023년 10월 16일 월요일의 출근길, 날이 부쩍 차갑다. 횡단보도 앞에 선 이들은 따로 또 같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신호등의 색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다. 초록불이 되는 순간 맹렬하게 돌진하는 이들은 정면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나를 지나쳐 푸른 유리빌딩의 입구로 빨려 들어간다.

1인 시위는 피켓을 든 손은 힘들지 않은데 시선 처리가 곤란하다. 눈 둘 곳이 없어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고 서 있는 게 참 뻘쭘하다. 빠른 속도로 내 곁을 스쳐가는 이들의 목에 비슷비슷하게 걸려 있는 남색 나일론 줄을 보며 사원증을 건 채로 집을 나서는 것일까 따위의 생각을 한다. 서울 지하철5호선 서대문역 앞 'DL e&c'라는, 제대로 쓰기도 참 얄궂은 이름의 건설회사 본사 앞이었다. 'e-편한 세상' 아파트로 귀에 익은 이 기업은 한해 걸러 두 손으로 헤아려야 할 만큼 노동자가 죽어 '최악의 살인기업'에 이름을 올렸었다. 건설사 시공능력 3위에서 빠지지 않던, 그 때 이름은 '대림산업'이다. 우연인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한 해 전 'DL e&c'로 개명하였다.

스물아홉살 청년이 지난 8월 이 회사의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죽었다. 검은 상복을 입고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을, 누나는 '사과하라'는 피켓을 들었다. 내가 들고 있는 피켓에 쓰인 '정부는 감독을 똑바로 하라'는 문구는 힘이 없었다. 손이 시려 장갑 생각이 떠날질 않았다. 신호가 바뀔 때마다 몰려오는 반듯한 도시의 직장인들 사이에서 참 누추하였다. 행색이 누추한 것이 아니다. 1인 시위가 끝나고 감사하다며 안아주던 어머니의 등이 너무도 작고 딱딱하여 누추하였던 것이 아니다. '사과하라', '감독하라' 같은 말을 외쳐도 그 힘을 앗겨 힘이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힘이 없다.

아파트6층 높이 건설현장에서 창호를 교체하라 지시하던 회사의 재촉이 있었다. 청년은 창틀과 함께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렇게, 사망의 배후에 회사의 지문이 묻어있지만 회사는 그 지문을 지우려 든다. 경찰도 고용노동부도 손을 쓰지 못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시간만 흘러간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한 해를 지나 두 해째 접어드는데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을 들고 서 있다. 그런데 기업주들은, 경제단체들은 그토록 무엇이 불안한가.

ⓒ프레시안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미 수백 명의 죽음 가운데 열 명, 스무 명의 죽음에 대해서만 재판을 하고 있을 뿐이다. 10억 원까지 물릴 수 있는 벌금은 수천만 원 수준에서 더 올라가지 않고, 1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지만 수개월의 징역에 집행유예다. 2024년 1월부터는 50인(억) 아래로 노동자를 고용하고, 공사를 하는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기로 예정되어 있을 때, 기업들이여, 기업주들이여 진정 위기감을 느꼈나. 그래서 2년을 다시 미뤄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몰아가는가. 고용노동부 장관이 기업을 애지중지 걱정하고,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한 번 더 2년 유예로 소중하게 챙겨주면 준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나? 이미 누추한 '중대재해처벌법'이다. 힘들다는 기업주, 경제단체가 안쓰러워 절절 매는 대통령의 너른 마음도 모를 바는 아니지만 이미 2년의 특혜를 받았다.

밀어 올리면 되돌리고 밀어 올리면 되돌린다.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알았으면 한다. 되돌리지 말라. '중대재해처벌법'은 정치인이 한 것이 아니다. 시민의 힘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밀어 올렸다. 시민의 힘 이전에 죽은 노동자들이 있었다. 산업화와 경제발전 수십 년, 죽은 노동자가 너무 많다. 경제논리에 그것은 그저 숫자이고 손실액이었다. 숫자가 아니어야, 돈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각성한 시민과 노동자가 '중대재해처벌법'을 가능하게 했다. 돈이 되지 않는 것을 이루고자 하고 끝내 이루었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법이 통과될 때는 잘 몰랐다. 기업과 기업의 편에 선 정부와 의회가 이토록 기업을 걱정하여 50인(억) 미만 사업장에 적용하기를 2년을 미뤄주더니 다시 2년을 미루자고 하는 것을 보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진정 돈에 미친 기업사회를 뒤흔들었던 것인가, 새삼 자문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단초가 된 '기업살인법'을 만들고자 할 때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거두어진 현장을 들여다보았다. 한 사람의 노동자가 사망하기까지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조각 맞추어 단체 홈페이지에 올려두는 게 '기업살인' 운동이었다. 막지 못할 죽음이 없었다. 죽음이라는 결과로 내달린 현장에서 그 위로 타고 올라가는 위계의 꼭대기까지 얼마나 위험했나, 어떻게 위험했나, 누가 지시했나, 누가 방조했나, 누가 이득을 보는가를 찾고자 했다. 그렇게, 최종책임은 이득을 보는 자에게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고 보니 이런 것을 '작업계획서'라 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라 하고, '안전과 보건을 확보할 의무'라고 한다고 했다.

허리에 안전띠를 차고 일하는 높이에 있다면 띠가 걸릴 고리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미끄러질 수 있는 일이라면 위급할 때 잡을 안전바가 있는지, 있다면 볼트가 풀려 헐겁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한다. 손이나 몸을 누를 만한 무거운 기계 옆에서 일한다면 기계가 사람을 감지할 수 있는지, 사람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멈추는지 확인해야 한다. 공학적으로 기술적으로 알아야 생각해 낼 수 있는 일인가? 인체에 위험한 화학물질을 섞어서 쓰는 공정이 있다면 무슨 물질을 얼마나 섞었는지 알아야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용기에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게 큰 글씨로 물질 이름을 쓰고, 혹여 응급상황이 생기면 물을 마셔야 하는지 물이 닿으면 안 되는지 같은 기초적인 처치 방법을 표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화학물질 전문가라야 생각해낼 수 있는 일인가?

덤프트럭 레미콘 굴삭기 같은 장비들이 엉켜서 드나들고 용접하는 사람, 땅을 파는 사람, 자재를 옮기는 이들이 섞여있는 공사장이라면 한걸음 떨어져 현장 전체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중장비가 드나드는 길은 길대로, 사람이 오가는 통로는 통로대로 내주고, 대형 기계가 움직이다 사람을 못 보면 다칠 수 있으니 신호를 줄 사람을 미리 정해두어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하면 사람이 굴삭기 삽에 맞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떠올리는 일이 어려운 일인가?

이것을 외면해서 딸이 죽고 아버지가 죽고 다리가 잘리고 실명을 했다. 기업주들, 경제단체들은 이것을 준비하기 어려워 시간을 더 달라고 한다. 돈이 없다고 한다. 기업을 접으시라. 넘기시라. 일하는 사람도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유능한 경영인을 찾아 회사를 넘기시라.

시민들이여, '중대재해처벌법'을 읽어보라. 그 간명함에 놀라실 것이다. (☞ 바로가기 : 클릭)

그리고 당신을 부탁한다. 당신의 연대가 필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밀어 올렸던 그 힘이 다시 한 번, 끌어 내리려는 되돌리려는 반동의 시간을 멈추게 할 힘이 되도록. (☞ 바로가기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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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타인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노고에 언제나 감탄하고 감사하고 존경한다. 할 수 있는 건 말, 쓸 수 있는 건 글, 고마운 마음을 글로 전하고 싶다. 달리기는 못 해도 걷는 건 조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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