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에 이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군사 충돌까지 발생하면서 세계가 양분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실제 '신냉전'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려운 여건이 존재하며, 이 구도에 올라타서 이념을 강조하는 외교는 한국의 입지만 좁힐 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경쟁 속 한국의 선택'을 주제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이 주관하고 외교광장‧평화네트워크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미·중 전략경쟁,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를 테마로 발표를 가진 전 국립외교원장 김준형 한동대학교 교수는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바이든 외교의 가장 중요한 영역은 중국과 전략경쟁"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트럼프와 바이든의 가장 큰 유사성은 역시 미·중 전략경쟁이 외교의 중심이라는 사실"이라며 "바이든은 새로운 자유무역정책은 거의 없고,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정책들을 계승하거나 약간의 변화만 주고 있다. 관세정책이나 수출규제, 중국 보조금 기업 조사 등도 트럼프 시절의 정책들을 대부분 계승했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를 나누면서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보였지만 이 역시 "패권 갈등을 벌이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유럽의 단일대오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에만 적용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바이든의 이중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프간 철수"였다며 "바이든은 아프간 전쟁의 원래 이유는 테러리스트 위협 제거였고, 이것이 달성되었기에 철수하는 것이라면서 민주화를 포함한 아프간의 미래는 아프간인들의 몫이라는 냉정한 말을 남겼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바이든의 외교는 트럼프의 고립주의와 네오콘의 국제주의가 혼재되어 있다. 대중 봉쇄를 위해서는 네오콘의 이념을 근간으로 한 글로벌리스트 외교가 중심"이라며 "미국의 이익이 분명하지 않은 일에는 고립주의를 고수하고, 미국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일에는 국제주의를 거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진단이다.
바이든은 아시아권 내에서 이를 '집단동맹'이라는 방향으로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담 직후 바이든이 역사적 합의로 치켜세우며 만족스럽다고 감격하고, 뉴욕타임스가 미국 외교 70년의 숙원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양국의 세력권 경계 설정이 관건인데, 한반도, 동중국해, 중국-대만 양안, 그리고 남중국해"라며 "단층선을 구성하는 4개의 충돌지점 중 가장 위험해 보이는 것은 일단 중국-대만 양안일 것이다. 그러나 양안에서 충돌하는 것은 곧 공멸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서로에 대한 공격적 언급에 비해 실제로 충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전했다.
그는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와는 달리 대만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거나 중국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는다. 중국의 침공을 방어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정도의 간접적 지원을 추구한다. 이는 미국과 중국이 대만 문제를 놓고 상대방에 엄포를 놓을 수는 있어도, 실제 무력 충돌로 갈 가능성은 적다는 의미"라며 "이를 고려하면 미·중 전략경쟁의 국면에서 상대방의 의도를 시험하고, 기 싸움에서부터 경고하는 활용도 면에서 한반도가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향후 30년 동안 미중 간 갈등에서 어떤 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며 "결국 한반도는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서 이를 강화함으로써 비용을 치를 것인지, 아니면 경계의 자리에서 완충의 역할을 할지 기로인 셈"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한국의 역할이 중요해지는데 김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충돌지점에서 미국은 해양 세력의 전위대의 역할을 주문하고, 한국은 충실하게 따르고"있다면서 "안보 절대주의와 동맹 신화의 맹목적 추종은 우리의 역량을 지정학과 미국의 전략적 범위 안에 갇히도록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최근 한국의 극우 인사들이 윤 정부의 시대적 사명을 '좌파 척결'로 정조준하고, 대통령도 적극적으로 동조한다"며 "이러한 흑백 논리는 대외정책에도 반영되어, 미국의 네오콘과 일본의 극우와 삼각편대를 구성해 냉전 시절을 소환하면서 우리는 외교적 공간을 스스로 없애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미국의 전략을 충실히 수행하며 진영싸움의 최전방 돌격대를 자처하는 윤석열 정부는 최악의 선택으로 한국 외교의 불행한 미래를 예약하고 있다"면서 "미중 전략경쟁의 판에서 배타적 선택의 프레임에 빠져들지 말고, 유사한 입장과 능력을 지닌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완충지대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난 6월 <포린폴리시>는 '6개의 중간 국가들이 미래의 지정학을 결정할 것' 이라는 분석 기사에서 앞으로 국제정치 질서에 영향력을 발휘할 국가로 인도, 브라질, 사우디, 인도네시아, 남아공, 터키를 꼽았다"며 "이들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의 압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중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구애하는 나라들"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것은 과거 냉전 시절 G77이나 비동맹 운동의 단순한 부활이 아니다. 이념적으로 경제적으로 상당한 자율성을 확보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며 "일찌감치 미국 진영에 참여함으로써 영향력을 스스로 감소해버린 한국, 일본,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들과 대비된다"고 지적했다.
신냉전 부활은 시대착오적…필요가 만든 전선
이날 토론회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경쟁 속 한국의 선택'을 주제로 발표한 이문영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신냉전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아니라, 필요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전선"이라고 규정했다.
이 교수는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의 마크 그린이 '바이든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세계를 규합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우리는 소수'라고 말했다"며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나라들은 세계인구의 16%를 대표할 뿐, 세계인구의 3분의 2를 점하는 나라들은 러시아에 대한 비난을 거절하거나, 중립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 교수는 "실제로 제재 참여국은 북미와 유럽 등 나토 회원국에 아시아 국가 중에는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뿐"이라며 "제재에 참여하지 않는 국가들은 현재 부상 중인 '글로벌 사우스'와 지리적으로 정확히 겹친다. 인도, 브라질, 아세안 등 글로벌 사우스의 대다수 국가는 미국 편도, 러시아 편도 아니다. 사안에 따라, 의제에 따라 미-러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세계가 이렇게 '신냉전'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음에도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남북이 또 그 최전선에 있다. 북한은 노골적으로 러시아 편이고, 한국 정부는 확실하게 우크라 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북중러 연대 외 다른 살길을 도모하기 힘든 북한은 그것이 국익이다. 한국도 그러한가"라며 "그런 북한 때문에 한미일 협력 강화가 필수라는 것이 한국 정부의 입장인데, 사실상 핵보유국인 북한을 상대로 자국 안보를 동맹의 호의에, 미국의 확장억제력에 맡기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지난 9월 13일 북러 정상회담은 한국이 북한 때문에라도, '북중러 대 한미일'의 대결 구도를 피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며 "신냉전 구조를 안착시키려는 북한에 대한 우리의 최선은 똑같이 한미일로 맞서 그 구조를 완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러시아와 중국을 관리하면서 그 구조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북한과 러시아가 포탄과 위성 기술을 교환하면서 관계가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이나 군사정찰위성 관련 러시아 기술의 북한 이전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이는 러시아가 주도한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나, 러시아도 찬성한 대북 제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어서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며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실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과 협력 수준과 범위가 국제사회의 의무와 규정을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면서 "우주산업 기지, 전투기 공장, 군함 건조 조선소 등 메시지가 뻔한 장소만 골라 돌아다니며, 북러 군사협력의 위험성을 보란 듯이 세계에 시전한 이번 정상회담에서 푸틴의 진짜 목표는 위험성의 현실화보다는 억지력"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푸틴이 '아시아판 나토'로 간주하는 한미일 밀착에 대한 견제, 한국의 우크라 군사 지원 가능성 및 대러 적대시 정책에 대한 경고가 그것"이라며 "결국 북러 연대의 과시는 '신냉전 굳히기'가 아니라, '굳기 전에' 그 구도를 깨기 위한 것이다. 한국은 더 이상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지 말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러시아는 오히려 한국과 가까워지길 원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이 "전쟁 발발 후 한국 정부의 기민하고 적극적인 제재 동참에도 '미국과 동맹인 한국의 특수한 사정을 이해한다'며 러시아가 먼저 나선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전쟁 전 러시아는 한국의 10위 교역상대국으로, 러시아 극동 교역량 전체의 3분의 1이 한국과 이뤄졌다. 전쟁 전 러시아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가 현대와 기아차, 핸드폰 시장 점유율 1위가 삼성이었다. 그 시장을 현재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데, 러시아는 이를 바라지 않는다. 러시아 국민도 '뽀대 나는' 한국 제품을 원한다"며 "이만큼 오는데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이래 3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전쟁 당사국도 아닌 우리가, 더구나 이렇게 논쟁적인 전쟁에 왜 우리의 30년을 지불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안보나 경제 모두에 있어 한미일에 '올인'하며 신냉전 부활에 앞장서는 현재의 기조는 우리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정말 이익을 원한다면 러시아와의 관계를 관리하되, 우크라이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조용히 더 하면 될 일"이라고 주문했다.
이 교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이른바 '대반격'은 사실상 실패했고 서방의 제재에도 2분기 러시아 경제는 4.9% 성장으로 돌아섰다며 "국토는 초토화됐고 영토는 17% 상실했으며 무기와 병력은 없어지고 있다. 전쟁을 지속할 이유, 동력을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것이 현재 우크라이나의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설령 정말로 우크라 국민 90%가 '영토를 모두 되찾기 전까지 절대로 전쟁을 끝낼 수 없다'고 외친다 해도 우리가 말려야 한다. 무기는 제공했으나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은 자들의 윤리고 책임이다. 현재로선 그게 정의"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러우 전쟁은 기후 위기가 국제정치의 핵심의제가 된 후 발생한 최초의 전면전'이고 그 결과, '전쟁이 야기한 탄소배출량 실측이 가능했던 인류 최초의 전쟁'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며 "전쟁 1년간 러시아 군대의 연료 소비로 1410만 톤, 우크라 군대의 연료 소비로 470만 톤, 탄약 사용으로 200만 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됐다"고 전했다.
그는 "2023년 지구는 각종 기상이변과 재난에 시달렸다. 이 모든 재난과 이변의 원인은 지구가 그간의 워밍업을 마치고 본격적인 '보일링'(boiling)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한다"며 "온난화로 인한 재난도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여기에 '분노의 화염'까지 보태야겠는가. 인간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지금 어떤 정의보다 절박한 것은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더 나아가 지구를 위해서라도 양측 간 협상이 필요하다"라며 "한국은 신냉전의 전위부대가 아니라, 소프트파워를 통해 평화협상의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 그게 가치외교"라고 꼬집었다.
인류 끝장 낼 수 있는 진짜 위험, '기후 위기'
이날 토론회에서 '전쟁과 신냉전의 시대, 새로운 게임 체인저를 찾아서'를 주제로 발표를 맡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핵무기가 인류를 끝장내기 전에 인류가 핵무기를 없애야 한다'는 자각으로 냉전을 종식했던 것처럼 현재를 "'기후위기가 인류를 끝장내기 전에 인류가 기후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져야 할 시기"라고 규정했다.
정 대표는 "전쟁 및 군비경쟁과 기후위기는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군사 활동 자체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할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며 "미국의 전략폭격기인 B-52가 한국에 하루 전개되어 배출하는 탄소 양이 7년 동안 자동차가 운행하면서 배출하는 양과 비슷하다고 한다. 1회 작전 임무 수행시, 전투용 지프차는 260 kgCO2e(이산화탄소 환산량), F-35는 27,800 kgCO2e, B-2는 251,400 kgCO2e를 배출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소개했다.
정 대표는 "노벨상을 수상한 50여 명의 사람들은 2021년 12월 세계 각국이 5년 동안 매년 2%씩 군사비를 줄이고 이 가운데 절반을 전염병, 기후변화, 극한 빈곤 해결에 사용하자고 제안했다"면서도 "이렇게 단순하고 구체적인 제안에 호응하는 나라는 거의 없는 실정이며 오히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군비경쟁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 와중에 기후위기 대처를 위한 국제협력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문제"라며 "대표적으로 세계 양대 탄소배출국이자 군비지출국인 미국과 중국은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면서도 기후변화 대처에는 협력을 다짐했지만 아직까지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군축과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의제라고 강조했다. 지구 기온을 특정 온도 이내로 유지하기 위해 허용되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이 '탄소예산'이라고 하는데 '1.5도 이하' 목표 달성을 위한 탄소예산은 2500억 톤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연 380억 톤을 배출한다고 가정하면 7년 이내에 바닥나는 셈"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군사 활동을 축소하면서 탄소예산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2023년 군사 부문의 탄소 배출량을 30억 톤이라고 가정하고 2024년부터 2030년까지 7년 간 군사 부문의 연간 탄소 배출량을 2023년 가정치에서 10%를 줄인다면 7년 동안 군사 부문에서만 21억 톤을 줄일 수 있다. 20%를 줄이면 감축량은 42억 톤"이라며 "42억 톤은 전체 탄소예산의 6%에 근접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군사 부문의 탄소 배출 감축은 기후위기 완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그는 기후 재원을 국방비 절감을 통해 상당 부분 해결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 대표는 "2024〜2027년 세계 국방비 증가율을 2%로 가정해보면, 7년 간 세계 국방비의 합계는 17조 4410억 달러가 된다. 그런데 세계 국방비를 2024년부터 2030년까지 7년 동안 연 2조 달러 수준으로 묶어두면 14조가 되고 여기서 절약할 수 있는 재원은 3조 4410억 달러에 달한다"며 "이렇게 절약한 재원의 절반을 기후위기 대응에 사용한다면 획기적인 돌파구를 열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불가능한 일로 비춰질 수 있지만, 과거 사례를 복기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며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 중후반 세계 군사비는 1조 6000억 달러였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1조 1000억 달러까지 떨어진 바 있다"고 전했다.
정 대표는 군축을 통한 기후위기 극복의 구체적 대안으로 "세계 시민의 역할과 분발"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상임이사국의 특권, 현황, 책무 등을 고려해 이들이 2022년 대비 10% 국방비를 줄이면 1370억 달러 정도의 재원이 마련되는데 이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예산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정 대표는 "핵전쟁은 통제할 수도 억제할 수도 있다. 반면 기후위기는 '1.5'를 넘어서는 순간 통제할 수도 억제할 수도 없다"면서도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위기이기에 인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흐름과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적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군비통제와 군축을 통한 평화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지구적 차원의 노력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군비경쟁이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주범 가운데 하나라는 지구적 차원의 각성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실천이 힘을 얻으면, 한반도에서도 '쌍중단', 혹은 '쌍축소'를 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반도 비핵화, 아직 유효한가
이날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박인규 <프레시안> 고문은 미중 전략 경쟁이 한반도 평화의 핵심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비핵화 문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향후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김준형 교수는 "2018년까지는 북한이 핵무력 강화를 통해 생존하는 방법과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방법 모두를 선택지로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그러다가 2019년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에서 협상이 결렬되면서 지옥을 경험했다"라며 "하노이 때 힘이 약하다는 절실함을 느꼈기 때문에 4~5년 내에 협상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에서도 북한의 핵을 덜 위험한 수준으로 낮춘 뒤 종래에 가서는 없애는 방식인 '핵 군축'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북핵을 '관리'하는 수준으로 향후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문영 교수는 "비핵화의 내적, 외적 동력이 모두 소진됐다는 진단도 나오는데, 외적 동력의 경우 중국‧러시아가 협조해주지 않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단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만약 이 현실을 교정할 수 있다면 비핵화를 용도 폐기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14년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합병했을 때 우리가 이에 대해 규탄은 했지만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러시아와 관계를 관리하니 2017년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하는 등 북핵 문제가 터졌을 때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기도 했다"며 "중러 협조를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비핵화도 카드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 등을 쉽게 적으로 만들면 안된다"고 조언했다.
정욱식 대표는 "냉정하게 봐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 인민들이 먹고 살기 어려울 거고 외교적으로 고립될 거라고 했지만 지금 1990년대 이후 북한의 대중, 대러 관계는 최상이고 예상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북한에 (비핵화를 하면 얻게 될) '그림의 떡'을 보여주면서 채찍을 휘두르는 방식이었는데 이런 대북 정책 유효 기간도 끝났다. 완전히 다시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북한과 대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주변국가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북에 이야기할 수 있다"며 "한미일 협력이 미국과 일본의 평범한 시민들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이런 식의 역발상을 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의 군사 충돌이 여전히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사건이 미국의 세계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냐는 박인규 고문의 질문에 김 교수는 "트럼프는 팔레스타인을 아예 무시했고 바이든은 이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가 있었다"며 "결국 미국이 중동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미국은 셰일가스를 확보하면서 중동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영국이 유럽에서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균형자 역할을 했는데, 미국도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와 이란을 중심으로 한 시아파 간 비슷하게 세력을 만들어 외부에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고 분석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터지면 미국은 이스라엘을, 사우디아라비아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외부로는 이스라엘을 지지하지만 내부적으로는 확전을 바라지 않는 것이 미국의 속내다. 바이든이 이스라엘에 가는 이유도 확전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해 중국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중동 문제까지 불거질 경우 미국의 딜레마가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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