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학교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학생회 소속 재학생들에게 올해 5월과 6월은 "폭풍 같은 두 달"이었다. 지난 5월 8일, 학생회가 "성공회대 미니 퀴어퍼레이드 개최를 위한 연서명을 받겠다"는 연서명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면서 지옥이 시작됐다. 대학교 온라인 익명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을 중심으로 학생회 인원들을 향한 사이버 테러가 빗발쳤다.
"두창(원숭이두창) 걸릴까봐 그날 학식 못먹겠다"는 식의 노골적인 비난과 욕설이 대다수였다. '행사가 열리면 영상을 찍어 포르노사이트에 올리겠다'는 식의 협박성 조롱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학생회는 행사 개최를 주제로 한 학내 교수들과의 인터뷰 콘텐츠를 제작해 업로드 하는 등 대응책을 내놨지만, 오히려 인터뷰 참여자들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이 돌아왔다.
지난 6월 20일 미니 퀴어퍼레이드가 개최되기까지 지속된 이 같은 사이버 불링, 혐오성 게시물은 총 700여개에 달했다. 학부 학생회장 윤영우 씨는 이 같은 혐오정서가 "외부행사인 서울퀴어문화축제를 교내에서 열려고 한다"는 식의 허위사실을 통해 정당성을 강화했다고 설명한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지난 7월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별개의 외부행사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특정 학내 구성원에 대한 사이버 불링, 여기에 일종의 가짜뉴스까지 유통된 셈이지만 이 같은 '폭풍'을 막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2020년 이미 "(에브리타임 내에서) 특정대상을 차별하거나 편견을 조장하는 등의 내용"이 유통되고 있다며 사이트 측에 자율규제 강화를 권고했지만, 권고 이후 3년이 지나도록 대학 커뮤니티 내 '혐오문화'는 줄어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12일 오전, 이들 미디어콘텐츠 학부 학생회를 비롯한 성공회대학교 미니퀴어퍼레이드 조직위원회 학생들은 서울 양천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찾아 그간 수집한 700여 건의 성공회대 에브라팀 내 혐오 게시물들을 방심위 측에 진정했다. 지난 2020년 에브리타임에 대한 방심위 자율규제 권고 의결을 이끌어낸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의 진정 이후 이어진, 대학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대한 학생사회의 두 번째 '방심위 개입 촉구 운동'이다.
'퀴어'라 욕하고 '페미'라 신상 털고 … "에브리타임 속 혐오, 위험수위 넘겨"
이날 방심위를 찾은 학생들은 모두 "에브리타임의 혐오가 이제 위험수위를 넘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대부분의 혐오성 게시물들은 이번 미니 퀴어퍼레이드를 향한 공격처럼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난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집중되는 모습을 보여 더욱 문제적이다. 일부 적극적인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소수자 차별 게시물이 인기를 얻고 '여론'이 되어가면서, 대학 커뮤니티 또한 과거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공격과 혐오를 하나의 커뮤니티 정체성으로 삼았던 극우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처럼 변모해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가령 이번 진정의 주인공인 성공회대 에브리타임의 경우, 미니퀴어퍼레이드 이전에도 지난 2021년 성중립 화장실 설치운동을 겨냥한 혐오성 게시물이 에브리타임을 통해 빠르게 유포된 바 있다. 성공회대 인권위원회 소속 재학생 김태현 씨는 "당시 성중립 화장실 설치운동을 주관한 인권위원회 소속 학생들을 향한 혐오발언 및 사이버 불링이 계속 이어졌고, 이후엔 아예 학내의 모든 문제를 '인권위의 책임'으로 돌리는 식의 혐오담론이 생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소수자 운동 주체들을 대상으로 "이게 다 OOO 때문"이라는 식의 '놀이문화'가 퍼진 셈이다.
소수자 및 소수자 운동을 향한 공격은 성공회대만의 이야기도 아니고, 온라인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같은 해 중앙대학교에서는 학내 성폭력 피해자 지원 창구 등의 역할을 수행해온 중앙대학교 성평등위원회가 '성평위가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어 부적절하다'는 익명의 에브리타임 연서명을 기반으로 9일 만에 폐지됐다. 숭실대학교 총학생회는 '인권위원장이 페미니즘 교수와 연대했다'는 에브리타임 '저격' 글을 근거로 1주일 만에 인권위원장을 해임했다. '페미니즘은 나쁜 것'이라는 커뮤니티 여론이 오프라인까지 확장돼 나온 졸속행정이었다. 학생들은 "일부 과격한 여론이 에브리타임을 통해 과대대표된 결과"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혐오문화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 일종의 테러행위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중앙대학교 페미니스트연합 FOF 소속의 지원 활동가는 2021년 당시 "평소 안티 페미니즘 성향을 보여 왔던 (중앙대) 에브리타임에서 익명의 혐오자들이 페미니스트 학생들의 신상을 털고 '소주병으로 머리 깨고 싶다', '호수에서 물고문을 시켜야 한다'는 등의 혐오발언을 남기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규모가 작고 접촉이 잦은 학생사회 내에서의 '신상털이'는 학교 밖에서의 그것보다 더 큰 피해를 안길 수밖에 없다. 지원 씨는 이 같은 사이버 테러가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방해하고 위축시키는 실질적인 '백래시' 흐름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이 같은 행위가 커뮤니티 내의 놀이문화가 되면서 실제적인 오프라인 테러로 이어진다고 봤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선 교내 가판대에 놓여있던 여성주의 교지 <녹지> 간행물에 누군가 압정을 박아 놓았고, 이를 수거하던 한 편집위원이 부상을 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당시 <녹지> 소속 학생들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압정 사건이 알려지자) 에브리타임에 '정의는 살아있다'는 등의 조롱성 반응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그 시기 에브라타임엔 학내 여성주의 교지를 훼손하고 이를 인증하는 게시물도 여럿 올라왔다. (관련기사 ☞ 인하대 성폭력 사건은 "정말 '개인의 문제'인가?")
지원 씨는 "지난 겨울 학교 축제 당시엔 중앙대학교 페미니스트 연합이 축제 부스를 운영했는데, 에브리타임에 실시간으로 (부스를 운영 중인 학생에 대한) 신상유포 및 혐오성 게시물들이 올라오기도 했다"라며 "실제로 부스를 운영하는 기간 동안 주최 측은 10명의 불법촬영 범죄자들을 적발했다. 혐오게시물은 현실에서도 페미니스트 동료들에게 가해지는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
에브리타임 '자율규제'는 어디에? 학생들 "오히려 운영진이 혐오 조장"
2020년 에브리타임 내 혐오 게시물을 모니터링한 유니브페미의 당시 조사에 따르면 그해 4월부터 3개월간 20여개 대학 에브리타임에선 삭제되지 않은 혐오성 게시물이 550개에 이르렀고, 이 중 47%는 여성혐오를 내용으로 담고 있었다.
당시 해당 게시물들에 대한 진정을 접수한 방심위는 "해당 사이트는 대다수 대학생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로서 영향력이 크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및 이용자의 책무를 다할 의무가 있다"면서도 표현의 자유 등을 들어 직접적 개입이 아닌 자율규제 강화 권고만을 의결했다.
하지만 이날 학생들은 성공회대 미니 퀴어퍼레이드를 대상으로 두 달 만에 700개에 달하는 혐오게시물이 해당 사이트에 누적된 일을 대표적 사례로 들며 "(방심위) 권고 이후 에브리타임은 오히려 직간접적으로 대학혐오문화 확산을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브리타임 운영진 측이 '혐오성 게시물은 방관하고, 페미니즘 등 일부 성향에 대해서는 오히려 검열'하며 커뮤니티 내 혐오문화에 힘을 싣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월 에브리타임은 자사 사이트 내에 게시된 '서울여성회 페미니즘 대학생 연합동아리'의 활동 홍보 게시물을 일괄 삭제하고 해당 이용자들을 무더기로 이용정지시키며 '페미니즘 검열'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에브리타임은 "서페대연의 게시글은 에브리타임의 커뮤니티 이용 규칙을 위반"했다고 통보했지만, 이용규칙상의 금지행위(폭력성·잔혹성·혐오성 등이 심각한 행위, 사회통합 및 사회질서를 저해하는 행위 등) 중 어떤 부분을 어떻게 위반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숭실대학교 학내 여성운동활동팀 '적토마' 소속 학생 조혜원 씨는 "비단 연합 동아리뿐만 아니라 학내에서 페미니즘 및 성평등 활동을 하며 모임 홍보글을 게시하기만 하여도 게시물이 삭제되며, 계정의 정지가 이루어지는 일이 (에브리타임에선) 허다하다"라며 "(본인 역시) 페미니즘 소모임 홍보 글을 올렸을 때, 방심위에서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그리고 사회통념을 기준으로 '타 이용자에게 악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계정이 정지되었다고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에브리타임과 방심위에서 이야기하는 사회 통념과 악영향이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는 이 유일하다고도 할 수 있는 대학 내 공장에 입장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다"라며 "혐오표현 규제에 대해 요구할 때마다 방심위에서 그토록 중요시하는 표현의 자유는 왜 혐오하고 차별할 자유에만 한정되는 것인가" 되물었다.
방심위 등이 혐오표현 규제에는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안이한 태도를 보이지만, 페미니즘과 같은 특정 성향에는 '갈등을 유발한다'는 식으로 즉각 규제에 나서는 등 '답을 정해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학 내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로 평가되는 에브리타임의 지위를 고려한다면 이는 공론장의 독점 효과를 낳을 수 있는 문제다. 그러는 사이 "여러 대학 에브리타임 인기 게시판에는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노인, 외국인 등 다양한 사회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거리낌 없이 자행되는" 등 혐오가 더 깊고 다양해졌다고 조 씨는 지적했다.
관련하여 표현의 자유 및 혐오표현에 대해 연구해온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지난해 '방치된 혐오: 온라인 폭력 이대로 둘 것인가' 토론회에서 "혐오 표현을 방치할 경우 오히려 표현의 자유의 총량은 축소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혐오표현이 방치되고 그에 반하는 표현을 규제한다면 결국 사회적 소수자들은 침묵하게 되고, '그들이 점점 발언하지 않게 되면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 "혐오 표현 방치하면, 되레 표현의 자유 총량 축소된다")
김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지난 인터뷰에서 "경청될 기회가 균등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말하면 된다'고 방임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의 총량을 늘린다고 할 수 있는가. 총량이 100에서 1000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이미 100 중 90을 말하던 사람이 1000 중 900을 말하고 있다면 총량이 늘어났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고 본다"라며 "더구나 혐오 표현은 평소에도 말할 기회를 보장 받지 못하던 소수자의 목소리를 더욱 배제하는 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 "정치인과 언론의 '받아쓰기', 혐오 표현에 정당성 부여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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