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력발전소의 90% 가까이가 대기오염 자가측정 결과를 사실상 허위로 작성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상적 측정이 불가능한 장비를 사용하거나 측정 인력이 최소 요구 사항과 다른 등의 사례가 무더기로 확인됐다. 환경부의 솜방망이 처벌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11일 환경부가 윤건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국내 화력발전소 63개소의 대기오염 자가측정 결과 전수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체의 87.3%가 제대로 된 측정 시간을 지키지 않았거나 최소 측정 인력(2인 이상) 기준을 만족하지 못한 허위 기록지를 제출했다.
3시간 만에 오염물질 18개 측정?
화력발전소는 대기오염 물질 배출량과 배출기준에 따라 1~5종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1~3종은 대기오염 물질 자가측정 결과를 신고해야 한다. 1종의 경우 매월 측정해야 하고 2, 3종은 분기, 반기별로 측정해야 한다.
측정은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굴뚝에서 일정 시간 일정 인력이 투입돼 이뤄지며, 각 사업장은 그 결과를 대기측정기록부에 기재해 환경부에 제출해야 한다.
관련해 각 발전소가 제출한 기록지에 따르면 대기오염 자가측정에 걸린 정확한 시간이 얼마인지는 파악조차 하기 힘들었다. 63개소의 58.7%인 37개소는 아예 대기오염 측정 시간을 기재하지 않았다. 오염물질의 배출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측정 시간은 가장 중요한 측정 기준이지만, 이 같은 기초절차가 아예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측정시간을 제출한 나머지 사업장의 측정 시간은 평균 3시간 2분에 불과했다. 이는 사실상 측정이 되지 않은 셈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윤 의원실의 지적이다.
측정시간을 제출한 사업소들은 평균 18.8개의 오염물질 시료를 채취했다고 밝혔다. 3시간의 실 측정시간을 고려하면, 18분당 1개 꼴로 오염물질 시료를 채취한 셈이다.
이 같은 채취는 불가능하다. 수은(60분), 중금속(6종, 100분), 벤젠(20분) 등 주요 대기오염 3항목만 측정하는 데도 3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사업장들이 제출한 측정 항목에는 시료 채취에 4시간이 소요되는 벤조에이피렌, 1시간 40분이 소요되는 이황화탄소, 80분이 필요한 불소도 포함돼 있었다.
이를 고려하면 3시간에 18항목을 측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윤 의원실은 "대기오염 자가 측정 시간이 코로나19 자가진단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라고 일침했다.
윤 의원실은 "측정 인력이 현장에 도착해 장비를 꺼내고 설치, 정비하는데 소요되는 시간만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라며 "장비를 들고 40~50미터 높이 측정구까지 나선형 계산을 올라가는데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3시간 2분 만에 측정을 마치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통상 석탄화력발전소 굴뚝은 높이가 100미터가량 된다. LNG발전소는 70미터 수준이다.
측정관 기준도, 측정 인원 기준도 못 채워
각 발전소가 대기오염 물질 측정에 사용한 장비 역시 기준에 못 미쳤다.
대기오염 물질 시료 채취는 각 굴뚝의 직경에 따라 측정관(프로브)을 다양한 깊이로 찔러 넣어 이뤄진다. 직경에 따라 시료 채취에 적당한 측정관 길이도 달라져야 한다. 대체로 굴뚝 직경이 크면 여러 깊이에서 각각 측정이 이뤄져야 하고, 직경이 작으면 상대적으로 얕은 깊이에서 측정이 이뤄진다.
각 업체가 제출한 기록지에 따르면 대부분 사업장이 굴뚝 깊이와 관계없이 길이 1.2~1.8미터가량의 단일 측정관으로 시료를 채취했다. 기록지를 제출한 업체의 굴뚝 평균 직경 4.4미터를 고려하면 그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 굴뚝 직경이 7미터인 한 업체의 경우, 3.5미터 길이의 흡입관으로 총 다섯 군데에서 오염물질 배출량을 측정했다. 가장 얕은 측정 지점은 1.1미터 지점이었고 가장 깊은 지점은 3.3미터 지점이었다.
즉 3.5미터 측정관으로 깊이 3.3미터 지점까지 측정했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윤 의원실은 "굴뚝 벽체의 두께, 측정관 고정을 위해 굴뚝 밖으로 빼내야 하는 길이 등을 고려하면 3.3미터 지점 측정을 위해서는 최소 4.5미터 길이의 흡입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측정 인력 역시 최소 기준에 못 미쳤다.
시료 채취는 2인 1조로 이뤄진다. 한 명은 굴뚝에 올라가 측정구에서 시료를 채취하고, 다른 한 명은 지상에서 기계를 작동하고 기록지를 정리해야 한다.
그러나 63개 업체 중 15개 업체(23.8%)가 단 한 명의 인력으로 오염물질을 측정했다. 사업장 네 곳 중 한 곳은 최소 인력 기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측정을 진행한 셈이다. 측정 기록 자체가 허위이거나, 둘 중 한 명은 자격요건이 되지 않는 이로 채워 측정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배경이다.
윤 의원실은 "특정 측정대행업체 몇 곳은 모든 사업장의 굴뚝 측정마다 1명만 배치하는 것을 관행적으로 했다"며 "대체로 기록지에 1명만 있는 경우가 시간 등의 기준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였다"고 지적했다.
환경부 솜방망이는 문제… "50만 원 과태료 수준"
사실상 화력발전소가 배출하는 대기오염 물질 기록 자체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대기오염 피해가 큰 한국 상황을 고려하면 더 문제로 해석된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발표한 대기오염 위성지도(2015년)에 따르면 서울의 대기오염 수준은 중국 상하이와 함께 세계 5위다. 2017년 한해에만 1만7000명이 대기오염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연구 논문(2023년 원호연 중앙대 순환기내과교수)도 있다.
기후위기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엄격하게 대기오염 물질 측정을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에 한참 못 미친 측정이 이뤄진 셈이다.
환경부의 솜방망이 처벌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윤 의원실에 따르면 관련 사업장에는 최소 50만 원~최대 300만 원 수준의 과태료 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 행정처분은 위반 수위에 따라 경고에서 영업정지 등이 내려질 수 있다. 영업정지에 이르는 처분도 이뤄졌으나, 윤 의원실은 측정 대행업체를 대상으로 총 51건의 과태료 처분이 50만 원 수준에 그치는 등 대체로 경미한 처벌이 주를 이뤘다고 지적했다.
오염물질 측정을 하는 대기 측정 대행업체 337개사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 역시 한 건도 없었다. 대기오염 물질 배출업체의 경우 아예 처벌조항조차 없었다.
윤 의원은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을 조사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환경부 장관의 역할"이라며 "대기오염 자가측정 대행업체를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현장 사업장 책임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강화하고 실효성 있는 처벌 규정도 마련해야 한다고 윤 의원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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