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민간단체의 북한 전단 발송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남북관계발전법 일부 개정안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기존 법률로 대북 전단 살포를 방지할 수 있음에도 추가적인 법률 제한으로 인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이유다.
26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북한 지역으로 전단 등 살포를 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하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2020. 12. 29. 법률 제17763호로 개정된 것) 제24조 제1항 제3호 및 제25조 중 제24조 제1항 제3호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고 밝혔다.
지난 2020년 신설된 제24조 1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하면서 그 구체적인 행위로 3호에 "전단 등 살포"를 명시하고 있다. 또 같은 법 제25조에 따르면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해당 조항에 대해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형두 재판관은 "국가가 표현 내용을 규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중대한 공익의 실현을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 한하여 허용되고, 특히 정치적 표현의 내용 중에서도 특정한 견해, 이념, 관점에 기초한 제한은 과잉금지원칙 준수 여부를 심사할 때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전단 등 살포를 금지‧처벌하지 않더라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전단 등 살포로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나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기하여 행위자에게 경고하고, 위해 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살포를 직접 제지하는 등 상황에 따른 유연한 조치를 할 수 있다"며 해당 조항이 과도하게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심판대상조항은 전단 등 살포를 금지하면서 미수범도 처벌하고 징역형까지 두고 있는데, 이는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행사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바, 심판대상조항은 침해의 최소성을 충족하지 못한다"면서 "심판대상조항으로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이 확보되고, 평화통일의 분위기가 조성될지는 단언하기 어려운 반면, 심판대상조항이 초래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매우 중대하므로,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유남석, 이미선, 정정미 재판관 역시 위헌의견에서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어 "외부로부터의 정보 유입과 내부의 정보 유통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북한의 특성상, 북한을 자극하여 도발을 일으킬 수 있을 만한 표현의 내용은 상당히 포괄적이므로, 심판대상조항에 의해 제한되는 표현 내용이 광범위하고, 그로 인하여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된다"고 평가했다.
이어 "(전단을 살포하는) 행위자로서는 표현행위가 심판대상조항의 구성요건 중 일부인 '전단 등 살포'에 해당되는 것이 확실한 이상, 표현행위로 수사·재판절차에 회부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효과적인 위협 기제"라면서 "심판대상조항이 초래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반대의견을 낸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은 "심판대상조항은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하여 '전단등 살포'라는 방법을 통하여 표현을 하는 것을 금지할 뿐, 표현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을 가하고 있지 않는바, 이는 '전단등 살포'라는 표현 방법에 대한 제한으로 보아야"하지 표현의 자유 자체를 제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전단등 살포' 외의 다른 방법, 예컨대 내‧외신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이나 탈북자들과의 만남 등을 통하여 충분히 (견해가) 표명될 수 있고, 남북 간 긴장완화를 시도하는 국면에서 제한된 표현의 자유도 교류협력이 활성화되는 국면에서 확장될 수 있다는 동적인 관점에서 심판대상조항을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위헌의견을 낸 재판관들이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으로 전단 살포를 막을 수 있다며 이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에 대해 "그러한 방법만으로는 효과적인 대응이 어려워 심판대상조항을 만든 입법연혁에 어긋난다"며 "위헌의견은 살포 전 신고 의무 부과와 그에 기초한 대응을 대안으로 제시하나, 이것이 심판대상조항과 동등한 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심판대상조항에 따른 처벌은 남북합의서의 유효한 존속을 전제로 하므로, '전단등 살포'를 극도로 경계하는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전단등 살포'의 억제를 위해서라도 남북합의서를 준수할 이익이 있고, 북한이 이를 준수하면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은 물론, 한반도 전체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는바, 이러한 공익을 고려하면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해당 법률은 신설되는 과정에서부터 접경지역의 주민 안전과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두고 무엇을 더 중시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왔다.
2020년 당시 통일부는 해당 법률 조항 신설을 준비하면서 2016년 대법원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 제1항과 정당방위 및 긴급피난을 규정하는 민법 제761조 제2항에 따라 국가는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전단 살포에 대해 경찰관 직무 집행법으로 이를 제지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취지가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헌법 37조에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에 한하여 법률로 제한할 수"있다고 명시하고 있어 대북 전단 살포를 막는 법률이 헌법 위반이라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다. 하지만 동 조항에서는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 제한 범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어 해당 조항이 논란이 돼 왔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해당 조항에 대한 개정 및 삭제를 주장해 왔다. 그는 지난 11일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개최한 세미나에 보낸 영상 축사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은 북한 주민의 알 권리와 우리 국민의 표현의 자유 등 헌법적 가치를 침해한다"며 "전단 살포로 인해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면 기존 법률과 행정 수단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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